1997 / dir. 贾樟柯
<소무>는 상실과 소외의 시대 속에서 자본의 구렁텅이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샤오우와, 그의 고독을 어루만져주는 인물로서 메이메이가 등장한다. 메이메이는 전형적인 三陪小姐적인 여성 인물이다. 남성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며, 음주와 노래, 그리고 춤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서비스를 동반한다는 의미에서 탄생한 이름이며, 물론 대부분의 경우 동침까지 따라붙는다.
음악은 예로부터 항상 남성들에 의해 여성에게 따라붙는다. ‘창(娼)’이라는 글자는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수록되어 있지않고, 대신에 ‘창(倡)’ 자가 들어있는데 이는 ‘창(唱)’자와 통용되었다. 이로써 고대의 창녀는 음악과 관계가 있으며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여자를 가리켰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춤과 음악과 동시에 남성에게 있어 유희의 대상이었으며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그것이 전근대 봉건 사회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든 음악과 춤이 인간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하고, 거기에 여성이 문제적 요소로서 걸쳐져 있다는 것도 자명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고부터 중국 정부는 매춘을 없애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갖은 노력을 해왔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구 사회의 잔재를 일소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창녀와의 결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공창과 유곽은 폐지되고 창녀들은 교화되어 사회로 수용되었다. 공공연한 매춘 행위가 사라지고 음지의 성매매 근절을 위하여 수 차례 매춘과의 전쟁이 선포되었으나, 법률과 제도로써 악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매춘은 여전히 잔존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三陪小姐 혹은 노래방 도우미로서의 메이메이 또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노래방 도우미들은 출근시간에 맞추어 분주히 화장을 하고 노골적인 의상을 찾아 입는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의 기준에 규합하기 위하여 코르셋을 입고 있는데, 남성에게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 혹은 촉각적 매개로써 성적으로 봉사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여성의 규범적 외모를 정한 가부장적 체계 안으로 밀어넣고 있다. 자본에 의해 생겨난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그 현실과 타협하게 된 전형적인 현대의 “창녀”에 해당한다.
아픈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위하여 맏이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베이징으로 왔으나, 살아남기 위한 만큼의 재정적 여유를 갖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써 노래방 도우미를 선택한 메이메이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학교를 다녀 공부해 의젓한 직장을 얻는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길을 생각하던 어머니의 기대와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어쩌면 전근대에 천민이었던 창녀의 신분과도 같이, 어디에서도 내세울 수 없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창녀는 혐오의 대상이다. 몸을 파는 행위 혹은 성을 파는 행위는 더러운 것에 해당되는데, 여성은 언제나 순결한 존재로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본인에게 순종적인 대상이었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아줌마 혹은 창녀에 불과하다. 섹슈얼리티를 통하여 남성에게 봉사하길 원하면서 창녀를 혐오하는 남성 중심 사회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메이메이의 업소에 샤오우가 찾아오고, 카운터 근무자를 통하여 둘은 우연히 같은 방에 배정된다. 둘의 관계는 사회 일반적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지위를 극복한 수평적 관계에 도달하는데, 이 관계의 변동 가운데 사회맥락적 상징으로서의 음악이 장치로써 작용한다. 음악은 공공연한 장소에서는 대중예술로서 존재하는데, 길거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샤오우가 흥얼거리고, 대중이 공개적인 노래 기계에서 듀엣을 부른다. 이 음악은 가라오케라는 퇴폐적 공간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 성질이 변한다. 공공연한 장소나 길거리 등이 가식적 평등의 공간이라면, 가라오케는 가림막이 제거당하여 가부장제라는 근원적 이데올로기가 발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에서의 음악은 남성을 위한 쾌의 수단으로서 행동한다.
업소에 처음 방문한 샤오우와 메이메이의 관계는 권력자로서의 남성과 창녀로서의 여성의 관계이다. 샤오우는 노래방 도우미의 역할을 기대하고 가라오케로 들어갔으며 메이메이에 대한 태도도 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 것을 기대하며 본인은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하며,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대가를 서비스로써 받아야만 하는, 메이메이를 창녀적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견지한다. 메이메이는 반면 창녀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에 반대되는 태도를 보인다. 가라오케의 음악을 거리의 음악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창녀로서의 대상화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한다. 샤오우에게 끊임없이 노래를 함께할 것을 종용하며 거부하자 본인도 파업을 선언한다. 가부장적 현실에 편승하면서도 내면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에, 자본주의적 세계에서 인간 소외에 지친 샤오우는 감응하기 시작한다.
업소 바깥 공간에서 두 인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울어진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를 형성해간다. 샤오우는 메이메이의 집으로 병문안을 가고, 그녀의 침대에 나란히 앉는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로서가 아닌, 그저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노래를 불러주고, 본인의 주체적 행위로서의 노래는 일체 보이지 않던 샤오우는 라이터 멜로디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가라오케 내에서 여성과 함께 쾌의 대상이었던 그에게 있어서의 음악이 이제는 주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문제적 공간이었던 붉은 가라오케 내까지 이어지는데, 둘은 마이크를 나란히 잡고 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더 이상 ‘창(倡)’으로 매개되는 음악과 창녀의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순수한 대중예술로서의 음악이 두 인물 사이에 작용한다. 이는 두 인물이 더 이상 가부장제의 권위자와 피권위자로서의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이룩했음을 의미한다.
메이메이는 자본가에게 돈에 의하여 팔려간다. 자본에 의하여 소무와의 관계라는 메커니즘에서 제명당하는 그녀는 영화 속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메이메이에서, 자본에 잠식당하는 대상 혹은 창녀로서의 메이메이로 사회적 지위가 다시 전락한다. 지아장커는 <소무>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여성 역할에 잠식당하던 두 인물이,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수평적 관계를 이루려는 찰나, 자본주의에 의하여 또다시 괴리가 일어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결국 <소무>는, 자본이라는 "악"에 대항하여 소매치기를 하던 주인공 샤오우는, 중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자본주의라는 개념적 산물이 개입하여 삐걱거림을 내보이는 현현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