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éro Deux>

1975 / dir. Jean-Luc Godard

by Werther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하는 2018년 5월 프로그램은 장-뤽 고다르의 68혁명 50주년 특별전이다. 고다르 영화 중에서도 그의 정치노선을 함께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상영하기에, 평소에 익히 알던 <비브르 사 비, 1962>나 <국외자들, 1964>, <네 멋대로 해라, 1960> 혹은 이번 칸 영화제 포스터에 등장한 <미치광이 피에로, 1965>와 같은 그의 대표작은 없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는 68혁명의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더불어 영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함께하여 두 거대한 물결의 선을 함께하려 한다. <넘버 투>는 TV 혹은 비디오를 하나 혹은 둘, 아니면 세 개나 스크린 내에 가져옴으로써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이미지에 대한 그의 관념을 엮어낸다.


<넘버 투>의 첫 시퀀스의 왼쪽에는 백색 소음이 나는 TV 화면에 붉은 프레임을 덧씌운 듯한 화면, 가운데에는 “mon ton son image”라는 문구, 그리고 오른쪽에는 한 남성과 여성의 얼굴이 등장하는 화면이 있다. 인물이 있는 화면은 면적이 늘어나면서 “image”를 가렸다가, 줄어들면서 “image” 옆에, 영어의 Sound를 의미하는 “son”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놓는 등의 의미 변동을 일으킨다.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사운드 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그리고 장-뤽 고다르만의 방식으로 보여준 프리퀄에 해당한다.


이 영화에 플롯이 있다면 그것은 아들과 딸, 그리고 그들의 부모로 이루어진 한 가정의 정적이고도 먹먹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이야기는 까만 스크린 속에 하나 혹은 둘, 어쩌면 셋의 TV 화면이 미학적 배치를 이루며 보여진다. 그리고 서사 진행의 바깥, 영화의 가장 앞과 가장 뒤에는 고다르가 직접 얼굴을 내비쳐 영사기와 TV 근처에 서서 자신의 영화에 대하여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거나, 작업이 끝난 뒤 지쳐 잠든 모습을 보인다. 이 부분에서 더욱 집중하기 수월한 부분은 고다르 자체가 아니라, 그에 섞여 나오는 어느 여성의 내래이션이다. 그는 묻는다, 이 영화는 포르노인가, 혹은(Où) 정치인가? 그리곤 또 묻는다, 포르노이고(Et) 정치이면 안 되는가?


<넘버 투>의 서사는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 또는 어떤 것을 관통하는가? 가족을 다루면서 가부장제를 말하고, 권력을 말하면서 아이의 고독을 말한다. 동시에 성교육을 말하고 페미니즘 또한 부르짖는다. 아나키즘을 말하고 노동을 말하며, 체위를 말하며 심지어는 변비를 말한다. 이 서사는 무엇인가? 비디오 가운데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녹색 디지털 텍스트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보이는 것들끼리, 서로 대당하기 곤란한 것들끼리 묶여 앞엣것의 알파벳을 변형하여 뒤엣것을 이룬다. 그리고 확정적 진술(Est)이 등장하면 항상 그리고(Et)라는 접속사가 붙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마도(Peut-etre)가 그 풍채를 뽐낸다. 고다르 영화는 무엇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의 제재는 언제나 “Et”로 옭아매여 짝지을 수 없는 것들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질문들에 대하여 재고해보아야 한다. <비브르 사 비>가 성판매 여성 영화인가? <중국 여인, 1967>이 마오주의 영화인가? <동풍, 1969>이 서부극인가?


“넘버 투”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가 편집 과정에서 종종 마주치는 V(video)1과 V2, 그리고 A(audio)1과 A2, 여러 비디오와 여러 음향이 난무하는 스크린, 그 중 하나는 포르노일 수도, 하나는 정치일 수도 있다. 허나 과연 두 번째 비디오가, 두 번째 오디오가 넘버 투인가? <동풍>에서는, 스탈린 초상화 이미지에 집중해야 하는가, 혹은 이미지 뒤의 이미지에 집중해야 하는가? 그러면 두 TV의 이미지, 그 뒤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이 해답은 고다르 감독의 바로 다음 해 작품, 제목부터 “Et”로 묶여있는 <Ici et Ailleurs, 1976>과도 결을 함께한다.


장-뤽 고다르는 어떤 면에서는 쇤베르크 같고 어떤 면에서는 루쉰 같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 유희와 정치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포르노이면서 정치이다. 68혁명 이후의 시기에 있어서 그의 역할은 혁명의 일환으로써 영화에 혁명을 담아내는 것, 혹은 혁명에 영화를 담아내는 것, 혁명 영화와 영화 혁명, 두 가지 모두에 흠뻑 젖는다. 혁명은 실패를 전제로 하여, 영원히 실행해나가야 하는 것, 고다르 영화를 현재 감상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 것을 해나가야 하나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행해야 할 숙제이며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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