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dir. Sebastian Lelio
2018 아카데미에는 이름을 주로 삼는 영화가 많다. 당장 <판타스틱 우먼>에서만 해도 다니엘에서 마리나로 이름을 바꾸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레이디버드, 2018>에서 또한 크리스틴이 본인의 이름을 주체적으로 바꾸어 부르는 한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에서는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름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정의하기에 딱 좋은 기표다. 그렇기에 <판타스틱 우먼>에서 마리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녀의 이름을 헷갈려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잘만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녀를 보는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리나의 영화이며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에 관한 영화다. 그 수단으로써 수많은 거울을 영화 구석구석에 직설적으로 등장시킨다. 올랜도라는 노년 남성과 사랑을 나눴던 MTF 트랜스젠더 마리나는 그 자체로 누구이며, 그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마리나는 항상 올랜도에 잠식되어 살아왔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녀를 “그녀”로서 인정해주고 그녀로서 사랑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올랜도였다. 어쩌면 올랜도는 그녀에게 각박한 인생의 도피처이자 그녀를 옭아매는 사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동맥류로 인해 죽고 나서도 그녀의 환상 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며 그리움과 위로, 그리고 집착이 섞인 형상으로써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그녀의 차 앞을 막은 모습이 그녀의 선글라스를 거울삼아 스크린에 비추어진다. 그녀를 마리나로 불러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올랜도로써 그녀는 그녀로 규정되어 왔다.
그리하여 초반부 시퀀스부터 마리나와 올랜도는 대부분 스크린 정중앙에 위치해왔으며, 주변 배경은 언제나 아웃포커싱되어 흐렸다. 클럽에서 벌건 조명 아래 서로에게 키스하며 진득하게 춤추는 두 인물을 중앙에 두고 배경이 역시나 흐려지는 쇼트는 가히 올해 가장 환상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는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 확립 과정을 거치는 것 혹은 그녀에게만 집중하라는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언의 지시일 수도 있다.
그런 그녀의 자아 투영은 거울로써 확연히 드러난다. 올랜도가 사망한 병원 화장실에서부터 거울 속의 그녀와 실재의 그녀를 화면 중앙을 기준으로 대칭하여 보여주고, 전신 거울이 있는 그녀의 집을 포함하여 엘리베이터나 사우나 입구 등 수많은 장소에 일부러 거울을 설정한다. 뚜렷한 상이 맺혀있는 화장실 거울에서와는 달리, 서사가 진행할수록 등장하는 거울의 층위는 복잡해져, 엘리베이터나 사우나에 있는 거울은 난반사를 일으켜 상이 일그러진다. 올랜도 아들 일행에게 납치당하여 테이프를 얼굴에 휘감은 채 자동차 유리에 자신을 비출 때는 거울 대신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으며, 지나가던 유리 기사가 갖고 있던 얇은 대형 유리에 비친 그녀의 상은 아지랑이처럼 녹아내릴 듯했다.
올랜도의 장례식에 찾아가서 그의 시체를 찾는 과정에서, 또다시 그녀 환상 속 올랜도의 상과 마주하게 된다. 매번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피하기만 했던 그녀는 이번에는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는 듯 그에게 다가가 키스를 나눈다. 난로를 매개로 시나브로 스며드는 새빨간 조명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초반부 클럽 시퀀스를 상기시킨다. 올랜도의 상은 마치 혼이 마리나를 유인하듯 본인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마지막 눈물로써 작별을 고하는 듯하다.
다음 시퀀스에서 그녀는 침대에 나체로 누워있다. 보란 듯이 우리의 감독님은 화장용 손거울을 그녀의 음부에 위치시키는데, 비치는 것은 다름 아닐까 마리나의 얼굴이다. 이제는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성별이 아닌 그녀 자신의 오롯한 자아에 의해 본인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결의임이 분명하다. 또다시 거울로 가득한 방에서 그녀의 꿈 혹은 직업이자 그녀의 자아인 오페라 가수로서 무대에 서기를 준비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 그 여성성을 더욱 소비하기 위하여 항상 늘어트린 머리칼을 갖고, 여성에게만 규정된 복장을 하고 다녔던 그녀가, 드디어 머리를 묶고, 말끔한 정장 바지를 입은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판타스틱 우먼>은 명명백백히 성장 영화다.
그런 거대한 장식 아래 세바스쳔 렐리오 감독은 관객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경고하고 있다. 마리나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은 영화 시작부터 당차게 공개되지 않고, 어느 정도 서사가 전개된 뒤, 형사가 신체검사라는 명목하에 그녀로 하여금 옷을 전부 벗게 만듦으로써 드러난다. 첫째로, 그녀가 옷을 하나씩 벗음에 우리는 그녀의 가슴이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평가하지 않았나, 그리고 음부를 가린 수건을 치울 때를 찍지 않는 카메라에, 진위를 궁금해하지 않았나. 둘째로, 그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과 후에 우리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후반부에 그녀가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는 시퀀스는 더욱 노골적이다. 첫 시퀀스에서는 올랜도가 사우나에서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그 시퀀스를 대하는 태도와, 수미상관을 이루는 마리나가 나체로 누워있는 시퀀스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관객은 손거울로 가려져 있는 음부를 끊임없이 밝히고 싶어한다. 보란 듯이 가리고 있는 손거울에는 그녀의 얼굴이 담겨 있는데, 거울을 정면으로 찍는 카메라는 다시 그녀의 시선이 담기고,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결국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이다. 관객은 마리나의 눈을 마주침으로써 마음 속에 어떤 경계심이 생기지 않을까.
거울은 마리나를 비추는 한편 관객을 비춘다. 우리는 퀴어 영화를 감상한다는 말 아래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소비하고 있었나. 우리 머릿속에 있는 퀴어에 대한 일련의 환상을 편견으로써 그들에게 부러지지 않는 잣대를 들이밀고 있지는 않았나. <판타스틱 우먼>은 ‘우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판타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연인으로서의 트랜스젠더 다니엘라 베가가 이 연기에 나서겠다고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