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7, dir. Lynne Ramsay

by Werther

앤드류 헤이그와 안드레아 아놀드와 함께 영국의 선두를 달리는 감독, 린 램지의 신작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89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영화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우리에게 남긴다. <케빈에 대하여>(2011)에서처럼, 그녀는 색채를 이용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꾸리며 우리는 그런 만큼 스크린에서 절대로 눈을 뗄 수가 없다.


조(호아킨 피닉스)는 살인청부업자로서의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내면의 어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린 램지 감독은 회상과 같은 뻔한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고, 현재의 사건들을 진행시켜 가는 도중 특수한 어떤 상황을 트리거로 삼아 그의 기억 편린을 매우 짧게 소비에트 몽타주의 형식을 빌어 등장시킨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데, 칼을 입에 집어넣거나, 비닐 등에 얼굴을 집어넣고 본인을 질식사시키려는 등의 시도를 반복한다. 그 쇼트들 사이에는 어린 조로 여겨지는 아이가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는 쇼트가 교묘히 껴있고, 집중하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 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그리고 매우 닮은 미장센으로써 연출되어 있다.


문제는 어린 조가 등장할 때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다투고, 어머니로 여겨지는 피 묻은 여성이 탁자 밑에 숨어 있고, 아버지로 여겨지는 남성이 의자에서 무언가에 취하여 곯아떨어진 장면 등에서 그가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음을 겨우 인지할 수 있으나, 철창과 초콜릿 그리고 총살의 이미지, 모래 위에 쓰러진 사람의 형상, 영화 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어떤 소년의 이미지, 집단 학살을 일삼은 트레일러의 흔적 등에서는 억지 해석을 들이밀지 않는 이상 영화로써만은 그 의미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의 능력 부족일 수도 있으나, 린 램지 감독의 이러한 소설을 읽지 않은 자들을 향한 의도적인 불친절은 관객에 무한한 혼란을 준다. 그리고 그 의도적 불친절의 까닭을 찾는 게 모든 관객이 떠맡은 임무이다.


조는 사무실에 누워서 젤리빈을 먹으며 빨간 젤리보다 초록 젤리가 더 좋다고 속삭인다. 그녀의 영화는 <케빈에 대하여>부터 빨간 색채로 칠갑되어있다. 니나를 안고 도망간 호텔에서 종업원이 사살당하면서부터 <너는 여기에 없었다>도 흥건한 피로 뒤덮이게 되는데, 그에겐 그런 물고 물리는 폭력과 살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그 매서운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곳이 집이었다.


그의 침실 베개의 색깔은 보란듯이 푸른색이었고, 바깥에 있는 조와 집 안에 있는 그의 어머니 가운데 위치한 대문 또한 지나치게 푸른색이었다. 붉음의 보색인 청록색을 파랑과 초록은 사이에 두고 있다. 조에게 있어 그의 어머니와 집은 초록과 닮은 색이었다. 잠깐의 도피처를 제공할지라도 영원한 안식은 얻을 수 없는 것, 그것이 푸름이 상징하는 바가 아닐까.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시신을 묻으러 가는 곳 또한 푸르기 그지없는 호숫가 혹은 강가이다. 돌멩이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같이 푸름의 심연으로 내려가려던 그는, 그와중에도 숫자 세기로 대변되는 그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고, 푸름이 더이상 그의 영원한 안식을 주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런 그에게 영원한 구원은 니나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니나를 처음 구하여 데려간 호텔의 벽지는 보란듯이 초록색이었다. 그녀와 함께 갔던 마지막 시퀀스의 식당에서 그는 자살을 했을까 혹은 니나와 정처 없는 로드무비를 찍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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