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뒤집어 쓰기"
예체능 입시는 정말 쉽지 않다.
하려는 사람은 많고, 뽑는 인원은 적다.
특히 많은 입시생들이 선호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나 ‘서울예술대학교’ 같은 학교는,
합격하면 기적이고 떨어지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고3 졸업 후 바로 입학하는 경우가 드물고, 기본적으로 입학 연령이 높은 편이다.
목표하는 대학을 위해 몇 년씩 입시를 이어가는, 이른바 ‘장수생’들도 많다.
나는 운 좋게 21살에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한 번 재수해서 들어가긴 했지만 동기 대부분이 형·누나들이었고,
입시도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는 사실 때문에 한동안 스스로를 꽤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꽤 건방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입시 학원 강사를 하게 되면서, 내가 입학한 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모든 행운을 한 번에 써버린 결과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많이 겸손해졌다. (물론 이 외에도 나의 건방짐을 깨부수는 일들은 충분히 많이 찾아왔다.)
21살의 나보다도, 입시 수업을 하던 그 시기의 나보다도,
훨씬 좋은 글을 쓰는 학생들이 떨어지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처음엔 그게 나에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이후 ‘입시’라는 제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 충격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제도를 이해하게 되었을 즈음, 나는 동시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내가 만난 학생 중엔 5수생이 있었다.
3수 때까지는 일반 대학을 준비했고, 4수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갑자기 방향을 튼 이유를 묻자, 3수 시절 재수학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수능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수학원에서도 그런 일이 있구나.’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친구는 어느새 24살이 되어 있었다.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몇 년 동안 학원–고시원–카페만을 오가며 살았다.
글은 이미 충분히 좋았지만,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자고 있던 나에게 그 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쌤… 죄송한데 저… 응급실인데요… 돈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 친구는 고시원 방에서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수납할 돈이 없어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 친구가 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수납을 마치고 그를 데리고 나와, 텅 비어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그 친구에게 쏟아낼 수 있는 말을 다 쏟아냈다.
화도 냈고, 원망도 했다. 모든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야,
우리는 마주 앉아 해가 떠오를 때까지 긴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화가나면 차라리 걔네를 죽여.
넌 왜 너를 죽이려 하냐?”
그리고 다음 해, 그 친구는 5수 만에 입시를 끝낼 수 있었다.
우리의 고통과 슬픔은 대체로 타인에게서 온다.
타인은 종종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짐을 아무렇지 않게 떠넘기고,
우리는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래서 고통의 출발점은 종종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무책임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그대로 자기 파괴로 돌려버리는 건 또 다른 비극이다.
우리는 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실제로 누군가를 해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에게 상처받았는지,
무엇이 이렇게나 억울한지를 정확히 말할 수 있으면,
적어도 나 자신을 향한 칼끝을 조금은 거둬들일 수 있다.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건 어렵다.
그래도 ‘나를 없애고 싶다’에서 한 발 물러나,
‘나는 이렇게까지 아프다’고 말하는 것.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글이 있다.
[작법 노트]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펜을 드는 법
1. 감정의 ‘주어’를 바꾸자
"나는 죽고 싶다"라고 쓰면 주어는 '나'이고, 목적어는 '죽음'이 됩니다. 이러면 글이 나를 공격한다.
Before: 나는 죽고 싶다.
After: 그 사람의 말이 나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주어를 나 자신이 아닌 '나를 아프게 한 대상(말, 사건, 사람)'으로 바꾸는 순간, 고통과 거리가 생긴다.
2. 단순 ‘힘들다’말고 상태를 묘사해보자
추상적인 상태는 스스로를 너 힘들고 고립시킨다. '힘들다, 괴롭다, 슬프다'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지금 내 상태를 구체적으로 적자.
가슴에 뜨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 같다.
손끝이 저려서 키보드를 누르기 어렵다.
감각으로 묘사하면 감정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점차 현실이 된다.
3. 데스노트(Death Note)를 쓰자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다. 글 속에서만큼은 누군가를 저주하고, 비속어를 쓰고, 소리를 질러도 됩니다. 필터를 제거하고 가장 날 것의 분노를 종이에 토해내고 내라.
글은 훌륭한 배설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