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저항하는 인간"
관공서에서 들어오는 수업 의뢰는, 거리가 멀든 가깝든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수업 후 처리해야 할 일지나 평가서 작성 등 번거로움이 따르긴 해도,
솔직히 시간 대비 페이가 꽤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기관 강의 제안이 들어오면, 나는 늘 무리해서라도 일정을 끼워 넣으려 애썼다.
강의를 돈의 논리로만 셈하던 나의 가치관은,
그러나 아주 작은 한 경험 앞에서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2020년 여름,
서울의 한 청소년 센터로부터 에세이 강의를 의뢰받았다.
그곳은 다양한 사정으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이 모여 지내는 공간이었다.
나이도, 성격도, 살아온 사연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에세이 쓰기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여느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강단에 섰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은 확실히 다른 또래와는 달랐다.
그들의 눈빛, 말투, 온몸의 긴장감이 남달랐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짙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마치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세상의 낙오자 혹은 비주류라 여기는 듯했다.
나는 몇 주 동안 그 아이들을 만나며 '선생'이기보다 먼저 '친구'가 되려 노력했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깊은 고민을 듣고, 하루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함께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점차 아이들은 내게 글을 써내기 시작했다.
입시나 평가를 위한 글이 아닌, 오직 자기 감정을 위한 글.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진솔한 기록이었다.
놀랍게도, 오히려 내가 그들의 글에서 깊은 힐링을 얻었다.
나조차도 오래전에 잊고 지낸 순수한 어떤 감정을,
이 작은 아이들의 언어 속에서 다시 만나는 기분.
매번 입시니, 성과 같은 것에 시달리는 글만 쓰다가 정말 순수한 글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
말도 다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작은 아이들이 세상보다 훨씬 거대하게 보였다.
그러면서 문득, 알베르 카뮈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저항하고자 하는 인간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학교’라는 단 하나의 질서에,
이 아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가장 강력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 아이들을 잠시 세상을 등진 ‘반항아’라고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이 아이들은, 나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근원적인 질문을 온몸으로 던진 아이들이었다.
“학교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표로 살아야 하는가.”
나는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일관성 있고 치열한 철학적인 인간들로 보게 되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세상이 당신이 머무는 곳을 ‘비주류’라 낙인찍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아무 의심 없이 굴러가는
주류라는 거대한 바퀴에 돌연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근원적인 질문을 잃지 않는 한, 당신이 쓰는 단 한 줄의 문장은 이미 당신만의 철학이 된다.
[작법 노트] 비주류 인물과 철학적 서사를 다루는 법
정의의 전환: 비주류의 시선은 곧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다. 스스로를 ‘질문을 던진 사람’으로 정의하고 글을 시작하자.
서사의 뼈대: 그 질문을 따라 에피소드를 배치하면 글의 서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 인용구의 활용: 알베르 카뮈의 문장처럼, 인용구는 글의 앞이 아닌 마지막에 ‘성찰의 거울’처럼 붙이자. 내 이야기가 먼저 공감을 얻고, 인용은 그 메시지에 무게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