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 SAW Jul 02. 2019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동네

<놀세권: PLAYNET> 전시 작가: 엄마 아빠 건축가 이승환, 전보림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는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놀이 환경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전시는 2019년을 사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기 위해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를 토대로, 엄마 아빠 건축가 5팀이 만든 11곳의 놀이 장소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친구들과 뛰어놀기 좋은 동네를 소개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브릭 Brick으로 놀이 장소 작품을 만든 엄마 아빠 건축가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전시에 참여했을까요?


전보림, 이승환 건축가님은 어떤 마음으로 산지형 공원과 체육관을 만들었을까요?



Part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IDR 사무실에서 만난 전보림 건축가와 이승환 건축가


Q. 두 건축가님, 그리고 IDR이 궁금해요.


이승환 건축가: 저희는 천천히 가는 건축가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남들이 개소할만한 나이에 영국으로 갑자기 유학을 떠나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하며 지내다가 늦게 사무실을 열기도 했고 작품 수도 많지 않아요. (웃음) 지금은 건축관을 어딘가에 얽매이고 싶진 않은 마음이라 방향을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보림 건축가: 저는 천천히 살고 있는 이유가 아이가 어릴 때 충분히 시간을 보내면서 사는 삶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첫 아이를 낳고 1년 후에 복직하면서 승환님이 아이를 키우셨고, 둘째는 3년 정도 키우다가 함께 유학을 가서 1년씩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보면서 공부했거든요. 돌아와서는 셋째를 낳고 아이를 데리고 키우면서 일을 했죠. 일 측면에서는 효율이 날 수가 없는 구조예요. (웃음) 그만큼 저희는 가정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선택한 거고, 결과적으로 천천히 가게 되었어요. 천천히 가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저희 가정,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균형점을 찾다 보니 천천히 가게 된 거죠. 저희 사무실도 아이들, 가정, 사무실이 거의 하나로 묶여 있는 그런 사무실이에요. 


Q.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IDR의 뜻은 무엇인가요?!


이승환 건축가:  아이디어, 아이디얼, 그런 어감 자체가 좋아서 그것과 유사한 것을 알파벳으로 찾았어요(웃음). 모든 디자인은 아이디어가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IDR을 굳이 설명하자면 Interdisciplinary & Integrated Design Research의 줄임말이에요. 



Part 2.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


Q. 엄마, 아빠 건축가로서 이번 전시의 주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전보림 건축가: '길'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때부터 우리나라 길에 이렇게 턱이 많은지 몰랐거든요. 그리고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가로 이사 오니까 인도가 없는 길이라는 게 얼마나 한심(?)한지 새삼 느꼈어요. 인도도 없이 주차장과 주차된 차 사이로 걸어 다녀야 하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되는거죠. 그래서 놀이 공간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놀이터로 가는 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승환 건축가: 여기에 더하자면, 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안전을 어떻게 성취하는가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파트 단지, 학교 근처에 보면 펜스를 높게 친 곳들이 많은데 안전제일이라고 답답한 펜스를 설치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차들이 더욱 쌩쌩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이에요. 똑같은 수준으로 안전을 달성하더라도, 볼라드처럼 도시의 흐름을 끊지 않는 방법들도 많은데 지금은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Q.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놀이 장소의 위계, 관계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보림 건축가: 저희 동네 같은 경우에 작은 놀이터들이 공원을 겸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는 멀리 있는 큰 놀이터보다 가까운데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공원과 놀이터가 겸하는 형식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산지형의 공간이 단순히 등산로, 산책로로 활용되거나 그냥 두는 경우가 많은데 지형 그대로, 경사지 그대로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한, 산지를 개발한다고 하면 나무를 굉장히 쉽게 베는데 기존의 나무들을 유지하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산의 지형을 오롯이 활용한 놀이 공간의 나무 사이사이에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산지형의 공간이 지형 그대로, 경사지 그대로, 기존의 나무를 그대로 두면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Part 3. 작품, 기획 의도, 디테일


Q. 작품 곳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전보림 건축가: 산지형 공원은 경사를 이용해서 미끄럼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두막에 들어가기도 하고 평평한 정글짐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한 정글짐 같은 것을 통해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놀이를 떠올렸어요. 매달리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는 모습들을 상상했죠. 다만 브릭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디테일을 표현할 수 없었던 점이 조금 아쉬워요. 

이승환 건축가: 체육관을 만들면서 '수직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수직적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완만한 경사부터 중간 경사, 가파른 경사, 수직까지 모두 혼재된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3개의 정육면체 박스가 어우러지면서 커다란 볼륨감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여러 가지의 수직 동선을 만드는 거죠. 아, 벽면의 크리스탈 바인을 암벽 등반하듯 타고 가기도 하며 놀 수도 있어요.   


액션! 체육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디테일 '크리스탈바인'


Q. '체육관'이란 공간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이승환 건축가: 보통 체육관을 떠올리면 텅 빈 공간에 농구대 정도가 있는 '시설 중심의 체육관'이 떠오르죠. 일반적인 체육관은 규격이 있고 균질적이란 느낌이 들어요. 물론 정해진 구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이즈가 필요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농구를 하기 위해 꼭 그 크기여야 하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트리트 농구는 더 작은 데서도 하는데 말이죠 (웃음).

그래서 비어 있는 공간은 공놀이가 가능한 공간으로 하되, 실내가 주는 공간감이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감이 되도록 노력했어요. 높이가 다른 박스들이 다양한 수직 동선을 만들고 높이가 변화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 실내에 있지만 야외에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일부는 비어 있어서 간단한 구기도 할 수 있고 안전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드론 같은 것을 해볼 수도 있는 공간.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대로 운동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감을 선사하는 실내 공터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실내에 있지만 야외에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대로 운동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감을 선사하는 실내 공터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Q. 만드신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관객이 봐줬으면 하는 작품의 디테일이 있나요?


이승환 건축가: 면마다 느낌이 달라서 코를 박고(?!) 디테일을 봐야 해요 (웃음). 레벨이 다른 판들을 이어주는 다른 높이의 경사로라든지, 계단, 밧줄, 경사로와 같은 수직 동선을 찾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요새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서 놀기 힘든 환경인 데다가 놀이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높이가 제한적이다 보니 스케일을 건물 단위로 키우면서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체육관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보림 건축가: 산지형 공원의 경우에는 놀이시설이 나무를 피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예요. 그리고 공원에 빨간색 브릭으로 큰 스케일의 동물을 만들어 심었는데, 놀이기구이기도 하지만 숲이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작품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전보림 건축가: 산지형 공원의 이름은 놀이·동·산은 동산인데 놀 수 있는 동산을 의미해요. 놀이동산이라는 표현은 어린이대공원이나 에버랜드 같은 공간을 부르는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데, 놀이 공간의 의미를 이어가면서 동시에 자연으로서 '동산'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한 놀이·동·산에서의 '동'은 움직임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이 '동'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승환 건축가: 체육관의 이름은 액션! 체육관이에요. 영화를 찍을 때 '레디, 액션!'을 하는 것처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아 달려온 아이들이 체육관에 와서 '자 이제, 액션! 시작! 와아!' 하면서 놀기 시작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름을 지었어요. 온갖 종류의 액션,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표현이죠. 


영화를 찍을 때 '레디, 액션!'을 하는 것처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아 달려온 아이들이 체육관에 와서 '자 이제, 액션! 시작! 와아!' 하면서 놀기 시작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름을 지었어요.



Part 4. 제작 과정, 브릭 Brick, 메시지


Q. 창작자로서 느낀 브릭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이승환 건축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 완성품과는 달리, 기본 재료를 가지고 형태를 자유로이 만들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상상을 끌어내고 구현하는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놀이터의 놀이기구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스케일상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이 적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Q.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셨던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이승환 건축가: 첫째, 둘째가 참여한 부분이 달라요. 첫째는 3D 프린팅 달인이거든요. 예전에 다른 전시를 준비하면서 3D 프린터를 샀는데 전시가 끝나고 첫째에게 줬더니 이것저것 전부 만들더라고요. 기술 컨설팅을 해준 거죠(웃음). 작품에 들어가는 나무, 그물 등 디테일을 첫째가 직접 모델링해서 만들어줬어요. 둘째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큰 틀에서 세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공간을 구성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마인크래프트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보도록 했어요. 간단하게 스케치를 보여줬더니 일반 모델링 방식으로 오래 걸리는 작업을 마인크래프트로 1~2시간 만에 만들더라고요. 정말 순조롭게 각자의 강점을 살려 마치 하나의 '가족 건축사무소'처럼 작업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전보림 건축가: 놀이·동·산의 경우, 둘째는 지형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고 놀이 기구나 이런 것은 다 같이 만들었어요. 브릭을 가지고 놀다가 튀어나온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유롭게 만들면서 따로 또 같이 만든 아이디어를 큰 공원에 어우러지도록 적용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브릭 작품을 만드는 모습 


Q.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여운을 이어가도록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전보림 건축가: 놀이·동·산을 보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리고 우리 동네의 환경, 예를 들면 땅의 모양이나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했으면 좋겠어요.

이승환 건축가: 저는 아이와 부모가 와서 액션! 체육관을 보고 '아 저기서 이런 거 하면서 놀면 정말 신나겠다'라는 들뜸, 설렘만 가져가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정책입안자나 의사결정권을 가진 분들은 요즘 동네에 인구가 감소하면서 생겨나는 폐교와 같은 건물들을 액션! 체육관처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개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Q.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란 어떤 동네일까요?


동네 골목길이 아이들에게도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동네예요. 


전보림 건축가: 무엇보다 놀이 공간까지 가는 길이 아이들에게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길이 되는 것이 첫 번째예요. 우리 동네가 아이들이 놀이 공간까지 가기에 안전한지, 아이들이 놀기에 어떤 환경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놀이터에 대한 개념, 형식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를 고민하다 보니 도시에 너무 빈 공간이 없고, 놀이터가 표준화된 형식으로 유형화가 되어 있는 데다가, 인증 문제로 새로운 놀이 기구를 하나 설치해서 사용하기까지 굉장히 제약이 많더라고요. 놀이 기구도 좋지만 경사 있는 땅만 있어도 재밌게 놀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제약이 많고 빈 땅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놀 수 있을만한 여지가 있으려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어린이 놀이터는 이래야 한다'라는 형식,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놀이터를 놀이 기구가 있는 평지가 아니라 지형적으로 아이들이 몸 놀이,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입체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많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놀이터를 놀이 기구가 있는 평지가 아니라 지형적으로 아이들이 몸 놀이,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입체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많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사진: 노기훈


 건축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 안내


│전시 제목: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 기간:  2019. 6. 3 (월) – 2019. 7. 14 (일)

│참여 건축가:  고기웅, 권형표, 서민우·지정우, 이승환·전보림, 홍경숙·

│전시 장소:  교보아트스페이스 (광화문 교보문고 내 F코너)


>>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bit.ly/놀세권전시

>> 전시 소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5X_O7p3NyA

>>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AsvtfUvZg&t=2s


우리 동네 놀세권을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포스터 다운로드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동네> 이승환, 전보림 건축가님 인터뷰 어떠셨나요?


아이들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제3의 공간들을 소개하는 뉴스레터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mailchi.mp/6e0303845190/newsletter_registration

>> 우리 동네 놀세권 확인하기: https://brunch.co.kr/magazine/playnet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한 가능성을 담은 '열린 놀이 풍경'을 가진 동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