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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Jul 10. 2019

오며 가며 자연스레 친구를 만나는 동네

<놀세권: PLAYNET> 전시 작가: 아빠 건축가 고기웅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는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놀이 환경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전시는 2019년을 사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기 위해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를 토대로, 엄마 아빠 건축가 5팀이 만든 11곳의 놀이 장소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친구들과 뛰어놀기 좋은 동네를 소개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브릭 Brick으로 놀이 장소 작품을 만든 엄마 아빠 건축가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전시에 참여했을까요?


고기웅 건축가님은 어떤 마음으로 모래 놀이터, 미술관, 근린공원을 만들었을까요?



Part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Q. 건축가님, 그리고 건축사사무소 53427이 궁금해요.

건축사사무소 53427은 저를 포함해서 5~6명이 함께 일하는 소규모 건축사 사무소입니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놀이터를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특히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어요.

 

지난 12월 C Program과 함께 했던 군산시 '조촌동 놀이터 삼각지대' 개장식


>> 놀이터 삼각지대 자세히 보기: https://brunch.co.kr/@weseesaw/33


Q. 그간 놀이터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혹은 놀이 장소를 만드시면서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요?

군산시 놀이터 프로젝트, 공주시 로보카폴리 안전체험공원 등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User)과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크게 와닿았어요. 이를테면 개인이 건축을 의뢰했다면 '우리 집 방은 이렇게, 거실은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직접 얘기할 수 있지만, 어린이 대상 프로젝트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이기도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별도로 찾아야 해요.

그래서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담은 브리프를 받는 대신, 참여 설계 워크샵이라는 것을 통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의견을 듣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면에 진짜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워크샵을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각자 본인이 설계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의견 차를 조율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Part 2.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


Q. 아빠 건축가가 된 이후에 건축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시각이 달라졌다기보다 아빠가 되고 난 후에 어린이 시설 프로젝트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관찰할 기회도 많이 생기니까요. 딸과 같이 동네에서 생활하다 보면 환경 자체가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그리고 딸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놀이터, 어떤 공공 공간이 좋은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좋아하는 공간을 보면 놀이기구가 많은 곳보다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놀이터란 장소는 도시 환경이 아이들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거고, 결국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는거죠. 예전과는 달리, 요새는 집에 나와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 주택가에 사는 친구들은 엄마들끼리 연락해서 만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회가 매우 적어요.


고기웅 건축가님과 7살 딸의 모습 (출처: 엄마 아빠 건축가 인터뷰 영상)


Q.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신다면요?

아이들이 동네에서 친구들을 쉽게 마주칠 수 없는 이유는 동네 친구들이 밖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리, 길 자체가 어린이를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불편하게 되어 있거든요. 이면 도로에 보차 구분도 없고 보행친화적이지도 않죠. 공원 같은 오픈스페이스도 부자연스러운 곳에 많아요. 집에서 학교 가는 사이에, 학원에서 학교 가는 사이에 군데군데 있어야 하는데 굳이 찾아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경우,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서 녹지 비율이 높은 편임에도 한강변, 남산, 북한산 등에 녹지가 집중되어 있다 보니 소규모 공원이 적어요. 다른 오픈 스페이스도 매일 지나치기 좋은, 입지 좋은 곳이 아니라 개발하고 남은 땅에 남겨지는 경우가 많죠. 이런 도시 구조 자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뛰어놀기 좋은 동네의 세 가지 기준: 놀이 장소의 다양성, "연결성/접근성", 그리고 질



Part 3. 작품, 기획 의도, 디테일


Q. 작품 곳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궁금해요.

먼저 파도 놀이터 같은 경우에는 파도 가운데 파란색 두 줄이 트랙이에요. 스케이트 파크처럼 파도 모양의 지형을 이용한 공원을 상상했어요. 인라인을 타든 자전거를 타든 탈 것을 자유롭게 타며 뛰노는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한된 면적에서 다양한 경사를 느낄 수 있는 다이내믹한 파도 놀이터.

 

Q. 실내 공간이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맞아요. 파도라는 것 자체가 물과 바람이 만나서 생긴 형태라 표면의 경사도가 다양하거든요. 제가 놀이기구를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경사, '중력과의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은 재밌게 놀 수 있거든요. 바퀴 달린 탈 것은 물론, 매달릴 수도 있고 그늘이 될 수도 있어요.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경사 덕분에 놀이가 계속 이어진다.


Q. 모래 놀이터는 어떤가요?

아이들이 모래 놀이터에서 어떻게 노는지를 상상하고 만들었다기보다 개념적으로 모래놀이터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더 어려웠어요. 고민하다 보니 모래 놀이터라는 게 결국 이전의 누군가가 놀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놀이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놀이의 기억'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해봤습니다.


내가 오기 전, 누군가가 놀고 간 흔적을 보며 놀이를 시작하는 모래 놀이터


Q. 모래 놀이터가 필요하다, 아니다라는 의견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렸을 때 물이든 모래든 혹은 흙이나 나무 같은 '자연' 소재를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래는 여러 자연 소재 중에서도 특히나 어린 아이들도 안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소재이자 물과 혼합했을 때 시너지를 내며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 좋은 놀잇감이라고 보거든요.

제 딸의 경우에도 처음 바닷가에 데려갔을 때 모래를 손으로 집었다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한 시간 내내 놀았어요. 그렇게 일상에서 자연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다양하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요새 위생상의 문제로 많은 분들이 탄성고무매트 같은 것을 원한다고 하지만, 모래가 안전하게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래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물이든 모래든 혹은 흙이나 나무 같은 '자연' 소재를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래는 여러 자연 소재 중에서도 모래는 어린 아이들도 안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소재이자 물과 혼합했을 때 시너지를 내며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 좋은 놀잇감이라고 보거든요.


야외 공간을 걷다 보면 실내가 나오고, 작품을 보다 보면 하늘을 만나는 무한연결 놀이터, 미술관.


Q. 미술관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는 놀이와 예술 체험을 무 자르듯 분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여기까지가 미술관, 여기까지가 놀이터라고 구분하기도 어렵죠. 그래서 '무한연결 놀이터'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구조물 자체가 건물을 나타낸다거나 놀이 기구를 나타낸다기보다는, 계속 반복적이지만 새로운 연결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상상했어요. 그 구조물 자체가 미술관일 수도 있고, 놀이 기구일 수도 있고, 미술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무한연결 놀이터를 딸에게 보여주면서 '아빠가 만든 놀이터인데 어떻게 놀래?'라고 물으니까 바로 이렇게, 저렇게 놀 거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기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본능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군산시 놀이터도 정자를 희한하게 만들었더니, 아이들이 기어올라가고 매달리면서 완전히 매달리기 놀이터가 되어 버렸더라고요.  


놀이 기구가 되어버린 군산시 놀이터의 정자 (출처: '1세대 벤처 5인방이 선물한 '꿈의 놀이터' (조선일보)


아이들에게는 놀이와 예술 체험을 무 자르듯 분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여기까지가 미술관, 여기까지가 놀이터라고 구분하기도 어렵죠. 그래서 구조물 자체가 미술관일 수도 있고, 놀이 기구일 수도 있고,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 '무한연결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Q. 미술관 같은 공간은 뛰어놀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도서관 같은 경우엔 동네 주민들의 공공의 거실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꼭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놀기도 하고 어른들은 서로 만나서 다양한 문화, 예술, 사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새는 도서관이 독서실처럼 변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미술관, 도서관과 같은 공공 공간에 적절한 야외 공간이 있어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고 만나고 무언가를 해야 커뮤니티가 형성되는데 지금은 학교 갔다가 집에 가고, 일상이 점적인 공간으로 채워지는 것 같아요. 미술관 앞에 공터가 있으면 작은 장터가 열릴 수도 있고 주변 상업시설과 연결될 수도 있는데 점점 그런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아이들도 보호자 없이 마음껏 나가 놀기엔 위험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Part 4. 제작 과정, 브릭 Brick, 메시지


Q. 창작자로서 느낀 브릭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브릭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7살 아이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재료가 브릭이었기 때문이죠. 아마 브릭이 아니었다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의견을 주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다만 브릭은 디테일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서 작품을 추상적으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7세 딸과 함께 놀이를 상상하며 만든 제작 과정


Q.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란 어떤 동네일까요?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동네예요.


최근 계속해서 머릿속에 ‘왜 요새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가?’ 혹은 ‘우리 동네는 왜 아이들이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인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땐 집과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 해질녘까지 뛰어놀던 환경이었지만, 2019년을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은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부족해서 놀이 활동 프로그램 등의 놀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커뮤니티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동네가 아이들이 특정 보호자 없이 마음껏 나가 놀기엔 위험한 공간,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이웃 어른이 아니라 모르는 어른들로 인식되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죠. 커뮤니티 혹은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도시환경과 함께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네 어른이 가득한 동네가 뛰어놀기 좋은 동네가 아닐까요?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사진: 노기훈



고기웅 건축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 안내


│전시 제목: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 기간:  2019. 6. 3 (월) – 2019. 7. 14 (일)

│참여 건축가:  고기웅, 권형표, 서민우·지정우, 이승환·전보림, 홍경숙·

│전시 장소:  교보아트스페이스 (광화문 교보문고 내 F코너)


>>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bit.ly/놀세권전시

>> 전시 소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5X_O7p3NyA

>>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AsvtfUvZg&t=2s


우리 동네 놀세권을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포스터 다운로드



<오며 가며 자연스레 친구를 만나는 동네> 고기웅 건축가님 인터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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