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0. 들어가며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는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최이명 박사가 연구를 통해 수집한 94명 아이들의 GPS 데이터(동선)를 추가 분석하며 발견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합니다. 관찰기 시리즈가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이해하고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점으로 찍힌 아이들의 발자취가 지도 위에 겹쳐지는 순간, 어두웠던 동네 곳곳에 불이 켜진다.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과 가지 않는 길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놀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GPS와 통행 일지에 기록된 일상생활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은 동네 환경과 도시형태를 사용자 관점에서 읽어내는 가장 역동적인 방법, 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9년 박사학위논문을 위해 동네 생활의 주역인 3,40대 주부들의 보행동선을 수집,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가장 자주 방문하는 목적지는 시장도, 카페도, 공원도, 학원도 아닌 초등학교・유치원・어린이집이었다. 하루가 온통 아이들을 위한 마중과 배웅으로 채워진 엄마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그들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갔다. 곧바로 머릿속에 “어른들이 걷기 좋은 동네가 과연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지만 여기에 얼마간이라도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벤처기부펀드 C Program의 지원은 아이들의 동네 놀이 행태를 실증자료로서 더 깊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2017년 3월부터 2018년 5월까지 15개월 동안 조경과 도시설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놀동’ 연구진*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네”의 개념과 조건을 도출하고, 이를 실제로 측정까지 할 수 있는 진단도구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고군분투했다. 연구진과 지원자 모두가, 적은 수의 샘플을 밀도 있게 관찰하는 것이 다량의 샘플에 대한 통계분석보다 연구에 직접적인 통찰을 더 많이 줄 것이라 믿고 있었으며, 현실에서 작동하는 도구 개발을 위해서 먼저 아이들의 동네 생활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에 공감하였다. 대상지 선정을 위해 20여 곳에 달하는 예비 후보군을 검토하고, 현장에서 연구에 참여해줄 아이와 부모들을 찾아 헤맨 끝에, 최종적으로 4개 동네에서 초등학교 1-4학년 94명 아이들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진단도구 개발을 위한 결정적 단서들을 많이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1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7일간 일상”이라는 데이터 자체의 무게감으로 이 속에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때로는 연구결과를 접한 분들께서 먼저 갈증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이들 경로를 직접 들여다보셨다면서, 아이들의 놀이 행태에 대한 내용은 이게 다인가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등에 땀이 맺혔다. 진단도구와는 별개로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이 남긴 기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요즘 아이들은 동네에서 어떻게 놀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론이 길었다. 진단 도구 속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던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아이들의 시간-공간 사용 관점에서 좀 더 보편적인 언어로 정리해내고자 하는 것이 이 기획의 근본 취지이다. 그와 더불어 아이들의 정직한 동선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 늘 접하는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몇 가지 흔한 오해들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최이명 도시계획학 박사
본 에세이는 2018년 최이명, 김연금 외 2인의 연구자가 씨프로그램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동네놀이환경진단도구개발' 연구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결과물입니다. 본 자료를 무단 도용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놀동' 연구진: C program의 지원으로 수행한 연구과제의 정식 명칭은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연구”이며, 김연금(빅바이스몰 대표)이 연구 책임을 맡아 최이명, 강현미, 민혜경과 함께 진행하였다. ‘놀동’은 ‘놀기좋은 동네’의 줄임말로, 연구진이 과제를 부르는 애칭이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첫번째 에세이 보기
1. GPS와 통행일지가 말해주는 것들: https://brunch.co.kr/@weseesaw/148
아이들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제3의 공간과 놀이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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