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C Program X 아르떼365]에서는 SEE SAW 뉴스레터가 1달에 1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뉴스레터 아르떼365를 통해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3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넘나들며 배울 수 있는 성장과 자극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과학관의 사례와 함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트윈세대를 아는가? 트윈세대는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단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정확한 나이로 정의하진 않지만, 미국 나이로 8세에서 13세, 한국 나이로치면 10세~15세 또래 집단(10대 초반)을 의미하며, 어림잡아 초등학생(3,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를 의미한다. 어린이라 보기에도, 완벽한 청소년이라 보기에도 어려워 ‘낀세대’라고 하지만, 이 시기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신체적인 변화가 빨라지고, 유행에 민감해지며, 또래가 중요해지는 시기로 나와 내 주위의 다양한 자극과 정보에 민감해지고 빠르게 반응하고 흡수한다. 동시에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하고, 상황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원하는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전환점(Transition)에 서 있는 시기이다.
전환점에 서서 새로운 시작을 마주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영감과 자극을 주고, 이런 자극을 받아들여 맘껏 시작해볼 기회를 주는 도서관이 있다. 노르웨이의 비블로퇴이엔(Biblo Tøyen) 도서관과 개관을 앞두고 준비 중인 전주시립도서관 트윈세대 공간의 기획 과정을 소개한다.
비블로퇴이엔은 노르웨이 오슬로 퇴이엔 지역에 위치한 트윈세대 전용 공공 도서관이다. 퇴이엔 지역은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친근하고 안전하게 느껴 쉽게 도서관에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트윈세대 전용 공간인 만큼 10세에서 15세의 친구들만 이용할 수 있다. ‘비블로’라는 이름은 비블로텍(BibloTek)이라는 도서관 명칭을 아이들이 ‘비블로’라고 줄여 부르는 습관에서 기인하여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이지만,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상과는 다른 장면들이 펼쳐진다. 공공 도서관이지만, 작정하고 새로운 세상과 경험을 트윈세대의 일상으로 가져오려고 노력한 공간, 일상에서의 제약을 잊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고 손짓하는 도서관이다.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곳은 신발을 벗는 곳, 아이들은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는다. 신발을 벗고 공간으로 들어가는 건 이 공간을 집처럼 편안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는 신호가 된다.
공간을 둘러보면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다양한 자세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가구들이 있는데 독특하면서 친근하다. 공간 곳곳을 구성하고 있는 시설들은 영화 소품 제작사의 협조로 구성된 재활용 시설이다. 영화 소품의 특성상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설들이라 흥미롭지만, 재활용이라는 특성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영화의 소품이었던 만큼 그 자체로 가구가 규모가 있어 아이들이 그 시설에 기대어, 혹은 그 안에서 다양한 자세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설 자체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덤이다.
이 공간은 도서관이지만, 책 외에 트윈세대가 관심 있는 주제를 직접 시작해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환경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ToyTRYKK’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을 가지고 열 프레스기로 의류에 붙여 특별한 나만의 옷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공간 중앙에는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시설에도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춰둔 곳이 제법 많아졌지만, 기존 공간과 분리되어 있어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 관리상 어쩔 수 없이 특정 시간대만 열어두게 된다. 비블로퇴이엔의 공간은 이질적이지 않게 구성되어 있고, 언제든 요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두고, 가볍게라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이 언제든 멋진 무대를 만들어볼 수 있는 환경도 있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라 강요하진 않지만, 트윈세대들이 흥미로울 만한 주제별로 책을 분류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미문학, 만화, 스포츠, 판타지, 드라마, 로맨틱 등이다. 이민자들이 많은 만큼 노르웨이어로 된 책에 대한 장벽을 낮추려고 더 재미있는 주제를 뽑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든 필요한 공간에서 책을 둘러볼 수 있도록 움직이는 레일 서가로 구성해 두기도 했다.
미타셀 관장은 우선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도서관에 놀러 오게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환경, 그리고 책의 컬렉션까지 친구들이 흥미를 갖고 시작해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이 공간에 가득하다.
이 공간의 운영자 모두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 교사 출신 사운드 아트 전문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다. 또한 이 운영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왔던 어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나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 기회를 갖게 된다. 더불어 한 번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이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 된다.
또한 이 공간의 운영자들은 아래와 같은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간을 운영한다.
1)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2) 아이들과 관계를 잘 맺는 것
3)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
4)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며 재미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
5)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것
아이들이 경험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은 결국 이 공간의 운영자가 어떤 마음으로 공간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환경을 만드는 가에 달려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재밌는 경험을 주려는 운영자들이 아이들을 만날 때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용기를 내고, 그 경험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프로그램과 컬렉션을 만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경험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환대하고 도와주는 어른들을 만날 때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에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이런 공간은 전환기의 트윈세대들이 직접,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프로그램과 컬렉션,
환대하고 도와주는 어른들을 만날 때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에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공공 도서관에 트윈세대를 위한 전용공간이 생긴다. 2019년 12월에 새롭게 신축되는 전주시립도서관(중화산동) 내 3층 공간이다. 이 공간을 기획하기 전, 전주시 트윈세대(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3학년) 408명의 친구를 설문 조사하여 일상을 보내는 유형을 도출해보았다.
트윈세대 친구들은 전환기에 접어든 시기임을 증명하듯, 두세 가지 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원하는 활동에 대한 니즈도 다양했다. 다만 편안한 휴식 및 재미있는 경험, 창작 및 감상 활동 등 일상에서 충족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한 니즈가 대체로 높았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트윈세대가 각자 흥미로운 주제로 원하는 경험을 시작하고 일상에서 자주 해 볼 수 있도록 물리적 공간, 경험을 촉진하는 콘텐츠, 운영자 측면으로 나누어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설계팀(EUS+건축)에서는 물리적 공간을 기획할 때 트윈세대의 다양한 특징을 고려함과 동시에 편안하고 친근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의자에 앉는 형태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편안하게 공간을 누릴 수 있는 자세를 고민하고 그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고 가구를 디자인했다.
또한 트윈세대의 니즈가 다양한 만큼, 다양한 경험을 혼자, 또는 여럿이 할 수 있도록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경험에 따라 존(Zone)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관심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의 경험을 지켜보다가도 슬쩍 시작해볼 수 있도록, 넘나들며 경험할 수 있도록 각 존을 문으로 막아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구성했다.
트윈세대를 위한 공간은 그 나이 때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경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런 공간이 도서관이어서 더 매력적인 이유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들이 이미 풍부한 곳이라는 점, 그리고 늘 이용자를 환대하는 운영자가 있다는 점에서다.
전주시립도서관에 처음 만들어질 트윈세대를 위한 공간은 12월에 개관한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비블로퇴이엔의 공간처럼 친근하게 이 공간을 자주 드나들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될지, 나아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탐험을 시작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공간에서 아이들을 환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운영자 분들이 있지만, 트윈세대들의 구체화된 경험을 도와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필요하다. 전주시립도서관에서 만들어갈 실험에 마음이 움직이는 문화예술 전문가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비블로퇴이엔에 대한 글과 사진은 전주시립도서관 트윈세대 공간을 준비하고 있는 사서 송지은 주무관님이 공간에 방문하여 기록한 자료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글: C Program Play Fund 신혜미 매니저
이번 글은 아르떼 365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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