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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Oct 13. 2019

'글쓰기'라는 비밀 도구를 만나는 공간, 스토리 작업실

어린이들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은 무엇일까?

[C Program X 아르떼365]에서는 SEE SAW 뉴스레터가 1달에 1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뉴스레터 아르떼365를 통해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3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넘나들며 배울 수 있는 성장과 자극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과학관의 사례와 함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826 National 인스타그램



어린시절 글쓰기의 기억


어릴 적의 글쓰기를 떠올려보자. 방학숙제 일기를 쓰는 것,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던 것, 학원 논술 수업에서 쓰던 것, 이처럼 검사를 받거나 학습과 연계된 글쓰기만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내 이야기를 꺼내 쓰는 글쓰기라고 하면 눈앞이 아득해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는 작가라고 하면 소수를 위한 직업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문해력(Literacy)을 키우는 관점에서 글쓰기를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기처럼 글쓰기도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글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출처: 826 내셔널 인스타그램)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글쓰기라는 도구를 즐기고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공간, 집과 학교 안팎에서 글쓰기를 마음껏 즐기도록 도와주는 제3의 공간, 826 내셔널(826 National)과 스토리 팩토리(Story Factory)를 소개한다. 친구 집에 가듯 방과 후에 들러 어떤 이야기든 안전하게 꺼내쓸 수 있는 공간, 부모나 선생님은 아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집중해주는 다양한 어른이 있는 공간, 혼자 또는 함께 이야기를 쓰며 책까지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자.



모두가 '글쓰기' 도구를 즐길 때까지, Lifelong writer를 키우는 공간


826 내셔널은 2002년 Dave Eggers라는 작가와 Ninive Calegari라는 교육자가 의기투합하여 6~18세의 청소년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도록 설립한 비영리 조직이다. 미국 내 가장 큰 '청소년 글쓰기 네트워크'로서 미국 내 9개 도시(챕터), 해외 50여 개의 조직에 영감을 주며 글쓰기 기반의 826 무브먼트를 확산하고 있다.  

826 내셔널의 목표와 의미 (이미지 출처: 826 내셔널 홈페이지)
826 내셔널의 9개 챕터. 도시별로 교육적 지원이 부족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826 내셔널이 글쓰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글쓰기가 학업 성취는 물론,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혹은 학교에서 충분한 케어(One on one attention)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826 내셔널은 각 도시마다 자원이 부족한 공립학교가 밀집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챕터(지부)를 늘려가고 있다. 9개 챕터 중, 지난 6월 직접 방문했던 워싱턴 DC의 826 DC와 Play Fund의 뉴욕 특파원 안선희 님이 방문했던 브루클린의 826 NYC 이야기를 소개한다. 


>> 공동창업자 Dave Eggers가 이야기하는 826 내셔널의 탄생 스토리:  


Writing is agency. It’s a tool for telling your story, processing experiences, building community, and bringing imagination to life.



이야기가 시작되는 무대이자 안전한 비밀 실험실


826 내셔널의 9개 챕터 모두 비현실적일 만큼 엉뚱한 테마의 가게(Store)와 비밀 공간(Secret library)이 함께 붙어 있다. 예를 들어 826 DC에는 '티볼리의 놀라운 마술 가게(Tivoli's Astounding Magic Supply Company)'라는 마술사를 위한 모든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에는 흰 장갑, 막대기, 카드, 동전, 마술을 보조하는 토끼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826 NYC는 슈퍼 히어로를 위한 이마트, '브루클린 슈퍼 히어로 서플라이(Brooklyn Superhero Supply)'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곳에서는 망토, 가면, 장갑, 부츠는 물론 정의감, 용기 등 슈퍼 파워를 한 번에 충전할 수 있는 캔 모양 컨테이너도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테마를 가진 가게는 글쓰기를 위해 찾아온 아이들이 얼마든지 엉뚱해져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는 중요한 장치이자 동네 사람 누구든지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아가 구매(기부)할 수 있는 가벼운 연결고리를 만든다. 이는 826 센터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유지, 지속할 수 있는 수익의 원천이기도 하다. 


826 DC의 '티볼리의 놀라운 마술 가게'
826 NYC의 '브루클린 슈퍼 히어로 서플라이' (출처: 안선희 님)


가게를 둘러보다 보면 그 어느 곳에도 글쓰기를 하는 공간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비밀 공간으로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저 단단해 보이던 벽장을 밀어보면 스르륵 문이 되듯 아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전환' 과정을 거쳐 글쓰기 공간에 들어선다. 이처럼 가게와 비밀 공간은 아이들의 심리적인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부터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재밌는 환경, 마음껏 엉뚱해져도 되는 안전한 환경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형을 누르면 비밀문이 나오는 826 DC / 벽장 뒤 숨어 있는 826 NYC 라이브러리



기초 문해력(Literacy)부터 스토리 메이킹까지


826 내셔널에서 제공하는 글쓰기 활동은 크게 4가지이다. 


글쓰기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방과 후 활동'(After school writing lab)

평소 교실에서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글쓰기를 만나는 '학교 연계 활동'(In school)

직접 책을 만들어보는 필드 트립과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와 친해질 수 있는 워크샵


모든 활동은 짜여진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챕터마다 해당 커뮤니티의 특징, 자원봉사자의 구성에 따라 유연하고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먼저 방과 후 활동은 학업과 관련하여 지원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학기 중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센터로 방문하여 숙제나 글쓰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숙제를 통해 아이들이 문해력을 키우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 연계 활동교실 안에서 작가, 스토리텔러 등 전문가 자원봉사자와 함께 새로운 글쓰기 수업을 하기도 하고,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학업 지원을 받기도 한다. 이로써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글쓰기의 기본기를 다지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기회를 만난다. 


방과 후 활동은 자원봉사자와 아이가 1:1로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된다. (이미지 출처: 826 DC 인스타그램)


학교 클래스 단위로 신청을 받는 필드 트립은 자원봉사자 스토리텔러,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2시간 동안 1권의 책을 만드는 형태로 진행된다. 앞부분의 이야기는 모두 함께 만들고 결말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성하며, 마지막에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이야기에 맞춰 그려낸 일러스트로 만든 책을 만든다. 나만의 책을 손에 집는 순간 아이들 모두 작가가 되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글쓰기의 매력에 빠진다. 워크샵은 로봇, 만화책, 환경 보호 등 자원봉사자가 본인의 관심사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테마를 제안하고 826 스태프와 함께 글쓰기와 연계하여 기획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826 센터에서 일상적으로, 때로는 특별하게 글쓰기를 만나고 즐긴다. 


826 NYC의 워크샵 중 하나로, 레고 로보틱스 키트를 활용하여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쓰는 활동이다.



믿고 북돋아주는 제3의 어른


826 내셔널의 원동력은 대학생부터 아티스트, 작가, 스토리텔러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다. 누구든 여유 시간이 2시간만 있으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유연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처음부터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리소스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 사례: 826 LA의 자원봉사자를 위한 가이드북


826 내셔널이 지역과 관계없이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강조하는 점은 아이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든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다. 직업, 나이와 관계없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질문을 해주는 어른, 열린 마음과 열린 귀를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강조한다. 만약 글쓰기를 '가르치는' 조직이었다면 글쓰기 기술, 글쓰기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을 선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826 내셔널은 아이들이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영감과 자극을 주는 어른'이면서도 집이나 학교처럼 '정서적으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존재'로서의 역할, 제3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요구한다. 이는 글쓰기의 원동력인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무엇이든 쓰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키우는 환경에 대한 826의 신념을 보여준다. 



826 내셔널과 함께 미래의 작가를 키워가는 사람들


826 내셔널은 '글쓰기'라는 도구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호주, 스웨덴, 영국,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지원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안팎에서 글쓰기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 튜터링 센터이자 글쓰기, 출판 센터를 운영하면서 지역 내 자원봉사자 커뮤니티와 함께 활동하는 비영리 조직 50개와 힘을 합쳐 15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도우며 국경을 넘는 글쓰기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국제 연합에서 만든 "A Collective Belief Statement"  


>> 826 내셔널이 만든 국제 연합(The International Alliances of Youth Writing Centers'):



국제 연합의 시드니 지부, 스토리 팩토리와의 만남


글로벌 커뮤니티 중 하나인 스토리 팩토리는 창립자 Cath Keenan과 Tim Dick이 826 Valencia에서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시작했다. 826 모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은 시드니로 돌아와 로컬 커뮤니티와 함께 스토리 팩토리를 만들었다. 매주 900명의 아이들과 글쓰기를 가깝게 이어주는 스토리 팩토리에서 Jayne, Matt과 나눈 대화의 일부를 전한다.

 


Q. 왜 자원봉사자가 중요한가요?  

스토리 팩토리에게 영감을 준 826은 창립자가 교사에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826 창립자가 학생들로부터 창의성을 끌어내는 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냐고 교사들에게 물었을 때, 교실 안에 더 많은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대답을 들었죠. 아이들이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격려해 줄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창의적인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할 때 “그거 좋은 생각이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라고 말해 주는 것을 자원봉사자의 역할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즘 창의적인 회사들이 작업하다가 안 풀릴 때 동료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문화를 가진 것처럼 스토리 팩토리의 자원봉사자들도 아이들의 '동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자원봉사자들에게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나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 그 외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겐 자원봉사자들이 옆에서 계속 도와주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작업할 때 중요한 것은 인내심과 유머, 그리고 그 아이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아이들 개개인의 아이디어가 존중받고 환영받는, 따뜻하고 안전한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해력(Literacy)은 물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신감(Confidence)과 자유롭게 표현하는 즐거움(Creativity)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으로서 826 내셔널과 스토리 팩토리를 만나보았다. 


두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개개인의 미래를 바꾸는 비밀 병기와도 같다. 글쓰기라는 도구를 만나 아이들은 나이, 언어, 인종과 관계없이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모두가 작가가 되는 미래, 누구든지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미래야말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글쓰기'라는 비밀 도구를 만나는 제3의 공간> 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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