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C Program X 아르떼365]에서는 SEE SAW 뉴스레터가 1달에 1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뉴스레터 아르떼365를 통해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3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넘나들며 배울 수 있는 성장과 자극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과학관의 사례와 함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모두가 잘 아는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원작 <The night at the museum> 그림책을 읽어본 적 있는가? 깜깜한 밤이 되면, 박제된 줄만 알았던 공룡, 코끼리, 고릴라 등 전시물이 깨어나 박물관 안팎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한창 소란을 피우던 전시물들은 박물관을 지키는 야간 경비원에게 잡혀(?!) 제 자리를 찾아가고, 개관 시간이 다돼서야 가까스로 언제 그랬냐는 듯 본모습을 갖춘다. 공간 전체가 움직임 없이 고요하기만 할 것 같던 박물관에 엉뚱한 상상이 더해져 아이들은 박물관에 갈 때마다 ‘살아 움직이면 어떡하지?’라는 호기심 가득한 설렘을 느낀다.
이처럼 딱딱한 박물관을 말랑말랑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박물관과 전시물에 '숨겨진 스토리'에서 나온다. 전시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친근한 박물관, 전시물을 만드는 과정과 사람을 비추는 박물관, 박물관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여지를 주는 박물관.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과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소개한다.
1910년에 개관한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광물, 식물, 화석 등 무려 1억 4500만 종의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곤충 표본만 3천만 종에 이를 만큼 방대한 컬렉션을 가진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은 전시물마다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장치 또한 세심하게 갖추고 있다.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전시물마다 큐레이터, 연구자(Researcher)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룡 뼈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에는 왜 진짜 화석이 아니라 모형(Cast)으로 전시되어 있는지 큐레이터의 설명을 확인할 수 있고, ‘공룡이 쫓아온다면 과연 우리는 도망갈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에 대한 과학자의 답변도 읽어볼 수 있다. 이처럼 관람객들은 전시물에 숨겨진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며 학교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배움의 기회를 마주한다.
또한 전시장 곳곳에서는 자원봉사자, 아티스트, 연구자 등 각자의 자리에서 박물관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초창기 인간의 모습을 구현한 전시물 옆에는 최신 포렌식 기술을 사용해 전시물을 만든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함께 전시한다거나, 고대 해양생물 화석 옆에는 이를 복원하기 위해 고생물학자와 아티스트가 어떻게 협업했는지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박물관 전체가 누군가의 노력으로 인해 매 순간 변화하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란 느낌을 받는다.
화석 랩 (Fossil Lab)의 경우, 오픈 키친처럼 자원봉사자와 연구자들이 화석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관람객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화석 전시물이 어떤 고생물인지 설명하는 것을 넘어,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은 어떤 직업의 사람들인지, 누구와 협업하는지, 지금 이 순간 박물관에서는 화석을 어떻게 관리, 연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시물 하나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의 씨앗을 촘촘히 전달하고 관람객 각자가 저마다의 호기심 싹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6,000여개의 컬렉션을 직접 만져보고 연구자가 사용하는 현미경과 동일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Q?rius'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Q?rius 에는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탐험가 복장의 스태프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공간 곳곳에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는지, 어떤 발견을 했는지 전시하고 있어서 마치 연구자, 탐험가가 된 듯 각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해볼 수 있다.
전시물 하나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의 씨앗을 촘촘히 전달하고 관람객 각자가 저마다의 호기심 싹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조성된 어린이 전용 체험학습형 박물관인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연간 5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C Program에서는 놀이,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대화를 만들어가고자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소다미술관과 함께 새로운 전시 '다 같이 놀자 동네 세 바퀴'를 기획했다. 지난 6월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했던 '놀세권: 플레이넷 PLAYNET' 전시에서 한 발짝 나아가 2019년을 사는 어린이들이 놀이, 놀이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실제 경기도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어린이자문단’의 목소리를 담아 준비했던 이번 전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C Program,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소다미술관 세 주체는 이번 전시를 통해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놀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초기 기획부터 전시물 제작까지 경기도 내 초등학교 3~5학년 어린이 30명으로 구성된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어린이자문단의 의견을 담아 준비했다.
어린이 자문단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하며 노는지, 더 즐겁게 자주 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동네의 놀이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전시장 곳곳에 담았다. 또한 전시 서문까지도 어린이자문단 친구들이 직접 작성하면 좋겠다는 김지나 학예사(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의견에 따라 대청초등학교 5학년 김연담 친구의 편지를 담았다. 이로써 어른이 어린이의 말투를 따라 하며, 혹은 어린이가 된 듯 빙의하여 썼다면 절대 느껴지지 않을 진심이 느껴지는 생생한 전시 그래픽이 완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 야외 공터 '꿈자람터'에서 관람객들이 진짜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 도감'과 '내 손 안의 놀이터'라는 전시물을 기획했는데, 도감의 원고를 비롯한 세부 콘텐츠는 어린이 자문단과 함께 만들었다. 수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놀이 30가지를 골라 놀이 도감 ‘뭐하고 놀지?-요즘 어린이들이 추천하는 바깥놀이 30-‘에 담고 공, 천, 막대기 등 구조성 낮은 놀잇감으로 빈 공터를 나만의 놀이터로 만들 수 있는 '내 손 안의 놀이터' 전시물을 완성했다. 전시 오프닝에 찾아온 어린이 자문단 친구들은 전시장, 전시물 곳곳에 쓰여있는 자신의 이름을 찾는 재미에 흠뻑 빠졌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렇게 전시로 반영할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기하고 내가 기획한 전시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갑자기 놀고 싶어 졌다.
Q. 이번 <다 같이 놀자 동네 세 바퀴> 전시 기획 의도가 궁금해요.
김지나 학예사: 이번 전시는 어린이들이 놀이로 인해 더욱 행복해질 권리(놀 권리) 증진을 위해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놀이와 놀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고 전시장 안팎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전시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이 충분히 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9~12세 어린이들은 1주일 동안 운동이나 야외 신체 활동을 4시간밖에 못 하고, 그 중 25.4%는 1주일에 1분도 운동이나 야외 신체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이 조사 결과는 들을 때마다 ‘정말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어린이와 가족들이 놀이, 놀이환경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그리고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서 함께 뛰어노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랐습니다.
Q. 이번 전시에 어린이자문단이 함께한 배경이 있다면요?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놀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는 정말 놀이를 자신들의 삶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할까?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뛰어노는 것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하지는 않을까? 어른들의 생각처럼 어린이들도 안전하고 재미있는 놀 장소가 부족해서, 놀 시간이 없어서, 놀 친구가 없어서 정말 못 논다고 생각할까? 사실은 혼자서 편하게 뒹굴면서 놀고 싶은 거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기관의 든든한 지원군, 어린이자문단 친구들에게 놀이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것으로부터 전시 기획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린이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친구들과 함께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이며,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안전하게 가서 놀 곳이 없다’ , ‘초등학생이 놀 곳이 없다’ 등 정말로 놀이 환경의 한계로 인해 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기반이 된 <동네 놀이 환경 진단 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주요 내용들이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 번 더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Q. 참여했던 어린이자문단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까지 전시로 표현될지는 몰랐다는 것이 주요한 반응이었어요. 전시와 놀이 도감 안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제가 실수로 ‘박종수’라고 오타를 낸 박중수 어린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전시물 너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거나 스토리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관람객과 친밀하게 호흡하는 박물관,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과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만나보았다.
박물관에서의 배움은 진열된 전시물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두 박물관의 사례처럼 아이들은 큐레이터, 연구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제3의 어른으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움을 경험하기도 하고 전시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간다.
박물관이 '두꺼운 백과사전' 같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위인전 같은 공간, 누군가에겐 엉뚱한 상상이 가득한 그림책 같은 공간처럼 아이들 저마다의 스토리를 담은 '살아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길 바란다.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이번 글은 아르떼365 뉴스레터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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