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이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C Program X 아르떼365]에서는 SEE SAW 뉴스레터가 1달에 1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뉴스레터 아르떼365를 통해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3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넘나들며 배울 수 있는 성장과 자극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과학관의 사례와 함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비비타 홈페이지
내가 좋아서 꾸준히 하는 ’ 작업’이 있는가? 작업(作業)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용한 목적 없이 지금 당장은 쓸데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궁금해서, 한번 해보고 싶어서, 재밌을 것 같아서, 떠오르는 영감이나 호기심을 손으로 시도하고 표현해보는 작업을 해본 적 있는가? 만약 그런 작업을 일상에서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작업실이 있다면 어떨까?
집, 학교 외에 아이들이 자율적인 주체로서 하고 싶은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제3의 공간, VIVISTOP과 826 National을 소개한다. 이기거나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나 재미, 자신감을 느끼며 활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무료이기 때문에 누구든 와서 자신만의 작업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작업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경험의 주인’이 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자.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VIVISTOP(비비스톱)은 VIVITA(비비타)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To fuel kids’ curiosity) 만든 공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라면 누구나 간단한 가입 절차를 거치면 무료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비비스톱을 만든 비비타를 먼저 살펴보자. 비비타는 비비스톱을 운영하는 조직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호기심과 영감을 다음 단계로 구체화하고 실제로 구현해보기까지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 전문가 커뮤니티이다. 또한 비비타는 ‘비비웨어(VIVIWARE)’라는 아이들을 위한 오픈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플랫폼을 만드는 조직이기도 하다. 물리적 공간(비비스톱), 사람(전문가 커뮤니티), 콘텐츠(비비웨어)를 통해 비비타가 아이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은 ‘모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완성해보는 경험’이다. 과연 비비스톱은 이런 경험을 어떻게 제공하고 있을까?
비비스톱이 아이들의 호기심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To fuel kids’ curiosity) 하고 있는 다양한 노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비비스톱에는 호기심을 마음껏 표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가 있다. ‘70가지 종류, 200여 개 도구’라는 수치도 놀랍지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작업 반경을 확장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연결하기 /자르기/측정하기 등 활동별로 도구를 분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언가를 연결할 때 글루건, 납땜인두, 접착제, 스카치테이프 등 수십 가지의 도구 리스트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도구를 선택해가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새로 알게 된 도구를 쓰고 싶어서 이에 맞는 아이디어를 더하거나 빼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이 ‘풍성한 재료와 도구’라는 연료를 만나 새로운 힘을 얻는다.
두 번째로 비비스톱에는 아날로그 재료와 도구뿐 아니라 ‘첨단 기술’이라는 연료가 있다. 비비스톱에서 기술은 ‘잘하기 위한 훈련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가 자기 자신의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 도구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비비웨어는 아이들 누구나 본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플랫폼으로, 비비타의 개발자, 디자이너가 비비스톱을 찾아오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비비웨어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프로그래밍, 프로토타이핑부터 (VIVIPROGRAMMER)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VIVIDESIGNER), 스토리텔링과 프레젠테이션 (VIVISTOPMOTION)까지 본인의 작업에 맞게 도구를 골라 쓰며 작업의 반경을 넓혀간다.
마지막으로 비비스톱에서 만날 수 있는 연료는 가르치지 않는 ‘전문가 어른들’이다. 비비스톱에는 호기심을 아이디어로, 아이디어를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구현할 때 곁에서 도와주는 전문가 어른들이 있다. 비비타 팀의 개발자, 디자이너 등은 물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원봉사자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비비스톱을 찾아온다.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와주거나 팀을 이루어 협업하는 파트너(Crew)로서 함께할 뿐이다. 이로서 아이들은 집,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배경과 나이의 어른들과 동등하게 협업하면서 작업의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세상을 만나는 반경을 넓혀간다.
작업실의 두 번째 사례로 미국에서 가장 큰 ‘청소년 글쓰기 네트워크 (Youth writing network)’ 826 National(826 내셔널)을 소개하려고 한다. 826 내셔널은 6~18세의 아이들 누구든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기답게 표현하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학교 안팎에서 무료로 도움을 주는 비영리 조직이다. 뉴욕, LA, 워싱턴 DC 등 미국 8개 도시에 826 글쓰기센터(예: 826DC)가 있다. 센터별로 지역 내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방과 후 글쓰기 수업을 운영하면서 누구든지 센터에 와서 일상적으로 글쓰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글쓰기가 몇 번의 작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센터 내 소규모 바인딩 스튜디오에서 아이들이 쓴 글을 정기적으로 책으로 만들고 출판한다. 본인이 쓴 글이 책이 되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글쓰기에 대한 즐거움, 자신감을 느끼며 작업을 이어간다.
826 내셔널의 826 글쓰기 센터에서 강조하는 경험은 집,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제3의 공간 고유의 ‘창조적인 문화(Culture of creativity)’이다. 자유로운 글쓰기의 핵심인 ‘독창성’을 북돋아주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인종, 언어 등 다양성을 존중하고 엉뚱한 생각을 환영하는 것(‘Whimsy is welcome’)은 물론, 다양한 제3의 어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826 내셔널은 아이들이 집, 학교에서 만나기 어려운 어른들, 예를 들면 작가나 대학생, 변호사, 아티스트 등을 자원봉사자로서 만나 글쓰기를 매개로 동등하게 소통하고, 창조하는 행위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받으면서 정서적 안정감(Emotional Safety)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이 모든 경험이 글쓰기의 자신감과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826 내셔널에서는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학교 수업의 연장선’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창조하는 기쁨을 알아갈 수 있도록 제3의 공간,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비비스톱과 826 내셔널의 사례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을 살펴보았다. 작업실은 다채로운 재료, 도구를 가지고 집,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이나 선생님 외에 평소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제3의 어른’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의 소통은 전문가 어른이 비전문가 아이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려는 작업에 도움이 필요할 때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다음 단계로의 물꼬를 터주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Sense of no limit)과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 아이들이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하고 창조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Emotional Safety)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서 작업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도구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영감과 안정감, 자신감이라는 연료를 공급해주는 ‘제3의 어른’이 아닐까?
[참고자료]
826 National 홈페이지 및 Annual report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이번 글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아르떼365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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