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씨앗 재단과 제천 기적의도서관이 꿈꾸는 어린이작업실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도서문화재단 씨앗(이하 씨앗)은 모두가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을 설립, 운영하고 관련 공간 및 콘텐츠 진흥 사업을 기획, 추진, 지원하고 있습니다. 릴리쿰, 씨프로그램과 어린이작업실 모야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도서관 속 작업실을 꿈꾸게 된 저희의 생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도서관은 누구나 가서 콘텐츠를 접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각종 도서, 출판, 기록물을 모아 두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라고 적혀 있죠. 그동안은 콘텐츠의 주된 표현 수단이 텍스트이다 보니 도서관의 콘텐츠가 대부분 책이었지만, 이제는 책 이외에도 다룰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졌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새로운 도서관들을 가보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훌륭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아쉽기도 합니다. 시설은 좋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콘텐츠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공 공간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촉진하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씨앗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에는 물리적 공간(도서관)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를 함께 염두에 둡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요.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이런 저희 재단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할 근사한 콘텐츠라고 생각한 거죠. 게다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어린이가 모야를 쉽게 드나들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가장 최적이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거 만들어 보고 싶은데?’하면 모야로 가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만들어 보기도 하고, 모야에서 작업을 하다가 궁금하거나 막히는 점이 있다면 책을 찾아서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업의 영역까지 활동 범주를 넓히면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를 통해 도서관이 보다 폭넓은 배움과 성장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낼 수 있길, 이러한 역할을 촉진하는 새로운 모델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불어 어린이작업실 '모야'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길 바랍니다. 도서관을 찾는 이유가 늘어나고 찾는 날도 쌓이다 보면 분명 본인만의 도서관 속 이야기가 풍성해질 테니까요.
이렇게 머릿속으로만 꿈꾸던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실제 도서관 현장에 유의미할 수 있는지 첫 번째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 주신 곳은 바로 제천기적의도서관입니다. 이곳은 순천, 진해와 더불어 기적의도서관 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미래를 이끌어 갈 어린이에게 도서관이 보다 나은 공간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 아래, 우리 사회의 낙후된 도서관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시민사회 운동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도서관 정책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고요. 이러한 뜻깊은 의미를 지닌 기적의도서관에서 도서관의 새로운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천기적의도서관은 좋은 뜻과 뛰어난 역량을 가진 민간 위탁 운영자가 지방정부를 대신해 운영을 잘 이끌어 왔기 때문에 도서관 속 작업실이라는 생소하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실험, 어린이작업실 '모야'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수락해 주신 강정아 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가장 먼저 선보일 제천기적의도서관입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됐는지, 도서관 속에서 모야가 어떻게 자리 잡길 바라는지에 대한 저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우와~ 진짜~?’라며 연발된 설렘과 기대에 넘쳤습니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누군가의 창의적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도서관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작업’과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지요.
해외도서관 탐방을 갔을 때 그곳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레고나 블록 등 놀잇감이 가득한 자료실에서 종알종알 떠들며 조립하며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책뿐만이 아니라, 여러 재료와 놀잇감들을 스스럼없이 만지며 자라는 환경이 일상생활이 될 수 있다면,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고치고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작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외국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커다란 차고지나 창고 같은 곳에서 여러 장비로 뚝딱뚝딱 무언가를 함께 만들거나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목재를 활용해 의자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와 진지하게 차를 고치면서 설명해주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은 아주 오래 그 집 어딘가에 존재하면서 계속 지난 시간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기도 합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엔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방 한쪽 벽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낮은 계단이 몇 개, 또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잡동사니 살림들이 마구 들어있는 그런 다락방에서 동생과 라디오를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고 했던 기억들, 달걀 몇 판을 다 써가며 만들어 봤던 카스텔라, 그 맛과 상관없이 동생들과의 그 추억은 오랫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추억이 늘 손놀림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공간을 갖는 것에 대한 동경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요.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종이와 연필, 가위, 풀을 가지고 놀 때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보입니다. 아이들은 문자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고 하잖아요. 어렸을 적에 작은 재료 하나로 겁 없이 덤벼본 손작업의 경험이 나중에는 더 큰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기억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따뜻함이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모야가 분명, 아이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도서관을 만나는 통로가 되어 줄 거라 기대합니다. 도서관에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몇몇 아이들은 “책만 보는 건 심심해요.”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작업실이 책 읽기 이외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거리가 많은 공간이 되어줬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꼭 무언가 특별한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살짝 들여다보고, 누군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다가 나도 해 보고 싶어 들어가는,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인 걸 아이들이 알고 언제나 자신들의 공간으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책 속의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지체 없이 작업실로 가 꼼지락거려보고,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서 다른 영감을 찾아낼 수도 있고. 그렇게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고 그것을 직접 해보면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해 보는 공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가보고 싶고, 재미난 거리가 많은 곳으로 자리 잡을 거예요. 우리의 작업실을 내 방 드나들 듯이 스스로 편안하게 드나들고, 놀이를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들에게 행복한 호기심, 변화를 주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무언가 특별한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살짝 들여다보고, 누군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다가 나도 해 보고 싶어 들어가는,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인 걸 아이들이 알고 언제나 자신들의 공간으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그 관심을 스스로의 탐구로 확장하고, 그 탐구의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을 아이들과 공감하고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간을 즐긴 아이들이 적어도 몰라서 못해보는 것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런 것도 재밌을 수 있다고 느껴보는 기회를 늘려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쏟고 싶어요.
더불어 이러한 과정의 기회를 통해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기억과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얻게 될 성취감이나 자신감을 토대로 많은 일에 두려움 없이 해결해보고자 하는 긍정성을 담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글: 씨앗재단, 제천기적의도서관
편집: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릴리쿰, 씨앗재단, 씨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로 집이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일상에서 창작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야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