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씨프로그램이 꿈꾸는 어린이작업실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초등학교 앞에 아이들이 편하게 드나들며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초등학교 앞에 아이들이 편하게 드나들며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2017년 아이들의 작업실 이문238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간의 기획팀이자 운영팀인 리마크프레스에서 이문초등학교 바로 앞 1층짜리 상가 건물을 아이들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 주셨죠. 머리를 맞대어 아이들이 무엇이든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인 작업실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작업실 속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하나의 문이 아닌 238가지의 문으로 나가는 길로 이어지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모아 리마크프레스에서 '이문238 (Different Door 238)'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씨프로그램은 2017년, 2018년 2년간 아이들의 작업실에 투자하며 공간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쌓여가는 아이들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2014년부터 꾸준히 미술관, 박물관 등의 공간에 아이들이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면서 여러 공간 중에서 특히 '매일, 일상적으로 갈 수 있는 공간' 중에 학교나 집이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뛰어놀 수 있는 동네 놀이터에서의 경험과는 다른 경험,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실에 아이들의 작업이 쌓였고, 그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나타난 재미있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지금은 리마크프레스가 운영하는 이문238은 공간을 옮겨 새로운 단계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문238에서 매일 아이들을 만났던 운영자 서가은 매니저와 김다은 매니저에게 ‘작업'은 무엇인지 질문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작업은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을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과정이에요. 아이들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보이고 싶은 작업의 씨앗들이 있거든요. 이 씨앗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채울 싹과 열매들을 맺어가는 일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은 아이들이 각자의 경험을 확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되고, 작업실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작업실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작업의 모습은 저마다의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작업을 지속하는 원동력도 모두 달랐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창작'이라는 작업 원형의 경험에 몰두해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게 필요한 재료를 탐색하고, 계획에 따라 작업하면서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결과물을 내기까지 몰입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떤 친구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알리기 위해 조금 더 용기 낸 작업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친구들끼리 합작하여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내가 혼자 만들었을 때 보다 더 나은 것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받아 한 단계 성장한 아이디어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문238에서 아이들은 작업이라는 경험을 통해 매일 꾸준히 퍼즐 조각을 만들어갔고 그 조각들이 모여 아이들의 일상에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한 큰 퍼즐로 맞춰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마다 만드는 퍼즐의 조각들도, 그 퍼즐로 완성된 경험도 모두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이니까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작업으로 각자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작업실이 심리적 안정감(Emotional Safety)을 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실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되기 위해 공간, 콘텐츠, 운영자 관점에서 세심하게 기획되고 운영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공간 관점에서 언제든 하굣길에 들를 수 있는 입지(접근성)는 물론, 가방과 옷을 내려두고 이름과 입장 시간을 적고 바구니를 들어 재료를 골라 테이블로 가기까지의 동선 계획(시퀀스), 아이들의 키를 고려한 가구 높이에 혼자 작업해도 편안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작업해도 좋은 테이블 크기 등 다양한 자세로 작업하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콘텐츠 관점에서는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없다는 것이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시도해보게 하는, 스스로 작업의 주제를 발견하고 과정을 이끌어가는데 가장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가르치지 않되, 아이들 누구든지 상상하는 작업을 스스로 실체화해볼 수 있도록 변형과 조합이 용이하고 어떤 이야기든 입히기 좋은 중성적이고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공간 곳곳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는 장치와 다른 친구들의 작업을 늘 곁눈질로 볼 수 있었던 환경 또한 아이들 스스로 작업을 하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로 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운영자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 운영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의 작업에 지지의 눈빛을 보내는 운영자. 답을 주지 않되 질문하고 보여주고 기다려주는 운영자. 모두의 작업이 존중받을 수 있는 룰을 정하고 서로가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운영자. 생각지 못한 부분이더라도 아이들을 우선으로 배려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에게 직접 사과도 할 줄 아는 문화를 만드는 운영자. 그리고 경험이 활짝 열려있는 만큼 아이들의 매일매일을 기록하고 남기고 곱씹어서 작업실의 환경 세팅에 반영하려고 하는 운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씨프로그램에서는 리마크프레스팀이 세심하게 운영해오던 이문238에서의 아이들의 변화, 이러한 변화들을 만들어낸 환경 요소들을 잘 정리해서 이 경험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확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왔습니다. 고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작업실을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 없이 늘 열려있는 공간으로서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리고 늘어나는 공간 하나하나를 함께 만들어갈 좋은 운영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도서관'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의 일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누구든 갈 수 있고 늘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열려있는 곳. 도서관을 지지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노력으로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 마지막으로, 늘 아이들을 환대하는 ‘사서' 운영자들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때마침 저희가 만난 도서관 분들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머물며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도서관이든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책과 이야기'도 아이들의 작업의 좋은 재료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가 작업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또 작업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도서관 속 작업실'에 대한 기획이 시작되었고, 실체화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의 새로운 변화를 후원하는 도서문화재단 씨앗, 릴리쿰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부터 어린이도서관,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으로 '어린이작업실 모야'를 확산해 갈 예정입니다.
제천기적의도서관에 첫 번째 작업실이 만들어졌습니다. 작년부터 꽤 오랜 기간 준비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오픈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2020년 7월 1일부터 조심스럽게 소규모로 예약을 받아 한시적으로 운영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어떤 작업을 쌓아나갈지 기대가 됩니다.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은 메이커 그룹 릴리쿰에서 기획했습니다. 작업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기획하고, 영감과 자극이 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를 비치했습니다. 가장 공을 들인 건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작업하는 작업자'로서의 정체성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작업을 이어가게 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장치들을 마련하고 운영자가 이 작업실의 철학답게 운영할 수 있도록 가이드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작업실의 이름은 모야 MOYA 입니다. 아이들이 작업실 앞에 서면 늘 여긴 모야? 이 재료는 모야? 오늘 만든 건 모야?라고 질문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네가 만든 건 모야? 우리가 함께 만들건 모야?라고 질문하기 시작하죠. 작업을 시작할 땐 늘 모야?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실의 이름은 ‘모야'가 되었습니다. (물론 표준어 아님에 주의하셔야 하지만, 귀여움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공간의 이름을 ‘뭐야?’라고 하기엔 귀여움을 포기해야 했어요.)
공간을 아주 살짝 소개합니다. 공간을 기획한 의도, 진화한 과정 등은 이후 릴리쿰에서 상세히 확인하실 수 있을 테니 맛보기로 조금만 공개할게요.
[작업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
어린이작업실 모야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듯, 필요한 재료들을 고를 수 있는 재료바 '모야 수레', 작업하는 자세에 따라 높이를 선택할 수 있고 작업형태에 따라 위에 얹힌 상판을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작업 테이블', 그리고 사용하기 다소 위험한 도구들이 놓여있는 빨간색 '작업반장 테이블'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재료를 적재해둘 수 있는 '재료 창고', 어떤 걸 만들어보고 싶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보게 하는 '검색대'가 함께 있습니다.
[작업을 부르는 재미있는 요소들]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재료를 바구니에 담아 적정한 무게를 넘지 않을 만큼만 가져다가 쓸 수 있도록 저울을 비치해두었습니다. 또한 쓰고 남은 재료들을 모아두는 '숙련자의 상자'를 마련하고, 난이도 높은 재료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작업자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세심한 배려]
또한 작업실 입구엔 간판을 무심히 걸어두는 대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공간으로의 진입하는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치들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게이트를 만들고, 다녀간 친구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모야 전시대, 그리고 어떤 작업을 할지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해 미션지 등 다양한 작업의 힌트가 가득한 수수께끼 서랍을 준비했습니다.
제천기적의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 모야에서는 또 어떤 친구들이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작업을 그려갈지 기대됩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속 작업실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만나 그 경험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요?
더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머물면서 독서와 작업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가길 기대해봅니다. 이 공간 안에서 작업을 진지하게 이어가는 작업자,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작업자, 친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며 작업을 확장하게 되는 작업자, 그리고 또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더 많은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에서는 작업자를 ‘작은손'이라고 부릅니다.
작은손이 떠나는 모험을 함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글: C Program Play Fund 신혜미 매니저
편집: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릴리쿰, 씨앗재단, 씨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로 집이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일상에서 창작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야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