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 SAW May 06. 2020

영화 '유월' BEFF 감독님과의 온라인 GV 이야기

[스토리스튜디오] 감독님의 어린 시절, 그리고 촬영 비하인드스토리



스토리스튜디오가 스스로넷과 함께 진행했던 행사, 영화 '유월' BEFF 감독님과의 온라인 GV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영화 '유월'을 만들게 된 계기, 준비과정, 촬영 방법부터 BEFF 감독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90여 분간 쉴 틈 없이 오고 갔던 생생한 대화를 지금 만나보세요.


영화 '유월'을 보셨나요?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춤추는 소년 유월은 어느 날 사립초등학교에 발발한 집단무용증(a.k.a. 댄스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당하며, 질서에 목매는 담임선생 혜림과 옆반 선생들에게 추격당하기 시작하는데… (출처: Team Yuwol 유튜브)


조회수 220만 뷰에 좋아요 11만 개, 댓글 6천 개를 돌파한 화제의 단편 영화 '유월'은 한예종 영화과 BEFF 감독님의 졸업작품인데요. 댄스 바이러스(집단 무용증)라는 신선한 소재와 배우들의 짜릿한 '춤' 연기, 눈을 뗄 수 없는 연출과 신나는 음악이 더해진 매력적인 작품인 만큼 스토리스튜디오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사심과 팬심을 가득 담아,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 '스스로넷'과 함께 BEFF 감독님과의 온라인 GV를 준비했습니다.


영화에 관심 많은 14~19세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한 온라인 행사로 준비했는데요. 짧은 모집기간에도 불구하고 서울, 경기는 물론, 전주, 순천, 대전, 강릉. 밀양, 구미 등 전국에서 70명이 넘는 친구들이 신청해주었고, 총 55명이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BEFF 감독님과의 대화가 궁금했던 모든 분들을 위해 자세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행사 시작 5분 전, 마지막으로  마이크 체크, 화면 체크, 토크 시나리오 체크중!
오프라인으로 초대하고 싶은 마음을 듬뿍 담아 '온라인 영상'으로 소개했던 스토리스튜디오


BEFF 감독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Part 1. 영화 유월에 대하여



Q. 영화 '유월'의 시작이 궁금해요!

영화 학교를 다니다 보니 졸업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그때 제가 춤에 빠져 있었어요. 발레, 탭댄스, 재즈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해봤거든요. 그리고 제가 원래부터 빌리 엘리어트란 영화를 좋아했던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를 녹화해서 여러 번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왜 빌리가 되면 안 되지?"

뮤지컬 속 빌리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유월'을 보셨다면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에게 춤이라는 건 자유와 기쁨을 상징해요. 묶여 있는 느낌이 많았는데 실제로 춤을 추기 시작하니까 자유로워지고 치유가 많이 되었어요. 춤에게 고맙고 빚진 마음이라 졸업 영화를 찍을 때도 춤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를 녹화해서 여러 번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왜 빌리가 되면 안 되지?"


2017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4명 (출처: KBS 뉴스)


Q. 준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제가 일단 춤을 좋아하니까 춤 영상을 정말 많이 봤어요. 유튜브에 보면 유명한 안무감독들이 찍은 영상이 많거든요. 보다 보니까 유명한 댄서들이 찍는 특이한 촬영 방식이 있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춤추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적나라하게(?!) 찍는 게 보편적이진 않았거든요.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고 셋팅해서 끊김 없이 쭉 보여주는 게 흔치 않았어요.

저에겐 롱테이크 영상이 보여주는 '끊어지지 않는 에너지'가 힘이 되었어요. 롱테이크 영상의 팬이 되면서 어떤 식으로 춤을 담았을 때 그 호흡이, 그 끊어지지 않는 에너지가 전달되는지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달까요? 영화 '유월'도 처음부터 롱테이크로 찍자고 완전히 정하고 찍은 건 아닌데 찍다 보니 연습한 게 아깝기도 하고, 에너지가 편집으로 끊어지는 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영화가 자유, 에너지에 대한 열망인데 이런 부분이 잘 살기를 바라다보니 현장에서 롱테이크로 결정했어요. '굳이 끊지 말고 가보자', '끊을지 말지는 편집 때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찍었거든요. 그래서 무용에서 조금이라도 아쉬운 게 있으면 전체를 다시 찍다보니 배우들이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다 같이 납득이 가는 선에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가져가면서 찍다 보니 지금의 '유월'이 나왔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영화 줄거리,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댄스 바이러스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결과론적으로 미화하기보다 그때 제가 느꼈던 의식의 흐름대로 말씀드릴게요. 당시엔 한창 춤을 추던 때라 당연히 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획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여러분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의미, 애정을 달라는 의미에서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춤을 영화에 담고 싶어서 소재로 가져가면서 고민했던 것은 춤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스토리 분량이 적어지는 거예요. 스펙타클이 많아지면 내러티브가 적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춤과 이야기를 동시에 가져갈까?”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결과 ‘댄스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원 없이 춤을 추면서도 내용이 댄스 바이러스니까('집단무용증’) 균형이 맞더라고요. 춤도 원 없이, 이야기도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했던 선택이었어요.

'유월'의 롤모델로 삼았던 영화들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감독의 영화예요. 무성영화라거나 성룡의 코미디 영화처럼 대사 하나도 없이 진행되는 영화들을 보며 어떻게 움직임 자체로 이야기를 진행시킬까를 고민했어요. 계속 고민하다 보니 결국 '춤이란 나에게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죠. 유월이 캐릭터엔 작가인 저의 이야기가 많이 담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유월이처럼 춤을 추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20대 후반부터 춤을 췄거든요.) 원숭이처럼 생각 없이 바로 저지르는 타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유월이처럼 자주 혼났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획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거든요



Q. 어린시절에 주로 어떤 짓을 하셨나요?

(웃음) 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복도에 어떤 아이가 장난치다가 넘어지면 다들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 타이밍에 교실에서 복도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인사를 했어요. 지금 보면 생각의 결이 남들과는 다른 아이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 입장에선 얘가 왜 이 타이밍에 인사를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시기도 하고, 저희 어머니께 문제가 있는 아이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시기도 했어요. 엉뚱한 면이 많은 만큼 이상하고 창의적인 구석도 있었죠.

어쨌든 계속 혼나다 보니 꺾였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기보다는 “그들도 나였을 때가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들도 각자 자신이 원하던 것을 꺾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수 있으니까 무조건적으로 비판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선생님들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영화를 만들 때 꼭 지키고 싶은 3가지 결심을 했어요.


BEFF 감독님의 3가지 결심

"첫 번째. 솔직한 영화를 찍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학생 때 그런 욕심이 있거든요. 무언가 잘 찍고 싶다. 그래서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찍기 쉬워요. 저도 그런 실수를 좀 했었고요. 지금도 그 영화가 무슨 의미를 하는지 모르거든요(웃음).

두 번째. 정말 초등학생이 썼을 법하고 초등학생이 봐도 이해가 될 법한 이야기를 써보자. 사실적인 이야기. 현학적이지 않고 솔직한 이야기를 쓰자고 다짐했어요.

세 번째. 전략적으로 액션 연출, 댄스 연출에 대한 것은 확실히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결론적으로 "솔직하고 단순한 이야기로 내가 좋아하는 댄스를 잘 찍자."라는 결심을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제일 꺼내기 쉬웠던 이야기가 저 자신의 이야기더라고요. 어렸을 때 어땠는지 돌이켜보게 되고.. 어릴 때 유감스러웠던, 슬펐던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들을 영화로 풀어내고 지금의 시점에서 시각을 풀어내니까 굉장히 많이 해소되고 치유되었습니다."


Q.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 같기도 해요.

오, 맞아요. 반가운 이야기네요. 보통 영화를 공부할 때는 주인공이 누구냐고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성장한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터미네이터 2'가 있는데 어렸을 땐 존 코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터미네이터가 주인공이더라고요. 태어나서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가장 많이 성장한 인물이 터미네이터잖아요. 주인공 '유월'을 보면 캐릭터가 전혀 성장하지 않아요. 오히려 가장 많이 성장한 건 혜림 선생님이죠.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알고는 있었는데 스스로 도전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성장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화 속 누군가의 마음속에 불만 지르는 사람이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혜림 선생님의 시점으로 영화를 봤다고 하면 반가워요.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성장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화 속 누군가의 마음속에 불만 지르는 사람이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Q. 이 영화의 제목은 '유월'이라고 정하고 시작하셨나요? 혹은 찍으면서 정하셨나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월'이라는 키워드가 너무 중요했고 이건 기획 단계에서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에버노트에 스크랩해뒀던 기사 중에 헌팅턴 무도증(Huntington's disease)이라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괴로운 병에 걸린 분의 실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가족인지 본인인지 정확하게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용을 가르치기로 했고, 그 결과 움직이는 걸 통제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남도 기쁘게 하고, 본인도 기쁘게 되었다는 기사였어요. 읽고 감동받아서 스크랩해뒀거든요.

거기서 차용해서 '전염성이 있는 집단무용증'이란 아이디어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유월'이라는 캐릭터가 마치 좀비처럼, 아포칼립스처럼 어느 순간 떨어진 바이러스 하나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재난, 재앙의 형태를 더했어요. 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두려움으로 시작한 댄스 바이러스가 결국 여러 가지 희로애락을 담은 '기쁨'이라는 춤의 형태로 나아가게 하는 이야기로 발전했어요.


출처: 매경헬스


Q. 집단무용증이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생각의 출발은 마구잡이로 춤추는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춤이 가진 상징성이 기쁨과 자유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쁨과 자유로 나아가는 형태면서도 '전염성'을 더하고 싶었는데 좀비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처음엔 어설픈 춤의 형태에서 온전한 춤의 형태로 나아가는 형태에서도 무용증, 바이러스, 댄스 바이러스를 떠올렸어요.


Q. 영화 '유월'이 많은 조회수를 얻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튜브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애초에 찍을 때부터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찍기로 마음먹었어요. 졸업작품이나 단편 독립영화는 이래야 한다라든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 영화만 하고 영화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스태프들에게도 영화를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다 찍고 영화를 편집하면서 보니 영화가 생각보다 정갈하게 잘 나온 것(!?) 같아서 서울무용영화제에만 출품했어요. 거기서 수상하면서 배급사가 붙으면서 배급사가 생긴 거예요.

배급사에도 처음부터 유튜브에 먼저 올려서 선플, 악플을 받으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통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처음부터 유튜브에 올리는 조건으로 계약했죠. 1년 안 되게 배급하고 유튜브에 올렸어요. 유튜브에 올리고 나서 첫날 조회수가 6천이더라고요. 저는 10만 명만 봐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5일째 되니까 10만 뷰가 된 거예요. 그러더니 하루에 10만 뷰를 찍기 시작했어요. 예상 밖이어서 지금도 얼떨떨해요. 댓글을 읽어보면 그동안 이런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2020.5.6 기준) 조회수가 무려 222만 회를 넘긴 화제의 영화 '유월'


졸업작품이나 단편 독립영화는 이래야 한다라든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 영화만 하고 영화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Q. 영화 속 노래의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I'm Coming Out (Integer Bootleg Remix), I Will Be Here, Clearly까지 3곡의 저작권이 있었는데요. 애초에 원작자들에게 직접 소통했어요. 국내 곡이었다면 레이블로 물어봤을 텐데 외국곡은 레이블로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원작자들에게 인스타 DM을 직접 보내서 졸업 단편영화에 사용하고 싶은데 되는지 물어봤더니 흔쾌히 쓰라고 허락해줬어요. 그 외 나머지 곡들은 직접 작곡하거나 해서 채워 넣었고요.


영화 '유월'에 쓰였던 음악들 (출처: 영화 '유월' 유튜브)


Q. 배우들에게 어떻게 연기를 지도하셨나요?

준비과정을 말씀드리면 오디션을 2018년 6월 25일에, 크랭크인을 8월에 했어요. 약 1달 반 동안 거의 매일 모여서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12시간을 춤을 짜면서 동시에 안무, 연기 지도를 병행했어요. 안무로 모인 날짜만 20일 이상 되는 것 같아요. 거의 연극 무대 하나 올리듯이 했죠.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 익숙하고 그래서 팀워크가 잘 맞아 보이는 것 같아요. 사전 준비가 확실했다 보니 호흡이 잘 맞았어요.


Q. 탭댄스를 할 때, 유월의 신발에 채소가 붙어 탭댄스의 탁 탁 탁 소리가 나게 했던 장면은 어쩌다 만들어진 아이디어였나요? (진짜 대박이에요!)

제가 항상 탭댄스를 출 때마다 타격감을 살려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화 '유월'에서 집단 무용증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리듬감 있으면서 즉흥적이고 확장성 있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탭댄스가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예산의 제약 때문에 요리로 한정해서 요리 재료들이 땅에 떨어져서 밟았을 때 탭댄스가 된다는 시나리오를 풀어봤는데 다른 다양한 재료를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탭댄스 씬을 다시 찾아보니 BEFF 감독님이!!
탭댄스 장면에 BEFF 감독님이 출연했다는 사실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GV 참석자들



Part 2. BEFF 감독님에 대하여


Q. 감독님께서 영화를 처음에 선택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제가 자랐던 세대가 특목고 바람이 불 때였거든요. 당시엔 어떻게 해야 영화감독이 되는지 몰라서 제 꿈과 무관하게 일단 부모님 말씀을 듣고 특목고 열풍을 타서 외고에 갔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 살았거든요. 가보니 주변에 워낙 진지하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공부를 죽어라 안 하고.. 서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겠다면서 영화감독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맨날 카메라 들고 찍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주변 친구들이 입시를 열심히 준비할 때 저만 혼자 만화공모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하고, 홈페이지 만들기 대회에 출품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공부와 무관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입시를 떨어지고 재수를 하면서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는데, 1년 다니다가 자퇴하고 한예종으로 넘어갔어요. 영화 쪽으로 가게 된 경위는 영화감독이 뭘 하는 사람인지, 왜 하고 싶은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창작을 한다는 게 좋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창작을 끊임없이 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뭔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끝까지 도전했어요.  



Q.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스토리텔러란 어떤 사람인가요?

이 질문의 전제는 저를 좋은 스토리텔러로 봐주신 것 같은데요 (웃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봐주신 이유가 아마도 제 이야기가 솔직해서 그렇지 않았나라고 생각해요.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발이 저로부터 했기 때문에, 그런 진실성 같은 것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얘기는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님 영화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밌게 본 게 영화 '기생충'이거든요. 영화 '기생충'을 칸에서도 인정하고 관객들도 인정하는 게 이야기도 재밌고 잘 찍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감독님의 솔직함, 진실된 관심,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이야기의 진실성, 그리고 감독님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저런 지향점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아직 아니지만 이 세상 최고의 스토리텔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정말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해야 전달이 잘 된다고 믿어요.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발이 저로부터 했기 때문에, 그런 진실성 같은 것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정말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해야 전달이 잘 된다고 믿어요.



Q. 영화 만들기를 꿈꾸는 미래의 스토리텔러들을 위해 추천해주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실적인 답변과 개인적인 답변을 드릴게요. 많은 영화과 학생들이 하는 얘긴데 영화 서적으로 '세이브 더 캣'이라는 시나리오 작법 책을 꼽아요. 청소년들이 읽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번역본으로 출판되어 있어요. 그 책 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이에요.

제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재밌게 보는 이유는 개연성이 완벽하게 이래서 이렇고 그렇진 않지만, 주인공이 구르고 달리고 맞닥뜨리고 하다 보면 끊임없이 쫓아가는 구조와 형태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예측할 수 없는 그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영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실사 영화로 추천드리자면 당연히 저의 페이보릿 '빌리 엘리어트'가 있어요. 드라마 자체로도 굉장히 훌륭해서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탄광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옥토버 스카이'라는 제이크 질렌할이 나오는 조 존스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요. 냉전시대에 탄광, 광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미국의 청소년들이 로켓을 쏘아 올리기까지의 이야기인데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그 영화랑 빌리 엘리어트, 천공의 성 라퓨타를 추천합니다. 세 영화 모두 탄광에서 시작했네요.


스토리스튜디오에 오시면 SAVE THE CAT 책을 만날 수 있어요!


Q. 혹시 탄광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라도 있으신가요?

전혀 없어요. 옥토버 스카이, 빌리 엘리어트, 천공의 성 라퓨타, 3개 영화를 항상 좋아했는데 공통점이 탄광이라는 점을 나중에 발견했어요. 시커멓고 어두운 지하에 있다가 올라온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모두 탄광 배경인 BEFF 감독님의 최애 영화들: 옥토버 스카이(왼쪽), 빌리 엘리어트 (오른쪽)


Q. 듣고 보니 유월의 색감, 분위기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으셨구나란 생각도 들어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촬영적으로 참고했던 레퍼런스를 말씀드릴게요. 요즘 체벌이 있는 학교는 없지만 '유월'에 나오는 학교가 오늘날의 학교면서 어딘가에 있을법한 학교로 연출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러시아 감독이 실제로 북한에 가서 찍은 '태양 아래'라는 다큐멘터리를 참고했어요. 감독이 사전에 허가를 받고 갔기 때문에 북한이 씬들을 다 꾸며놓고 보여줬고 촬영이 끝나면 마치 무대가 끝난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대요. 오히려 그 모습이 되게 충격적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감독이 촬영을 중단하는 척하면서 몰래 녹화를 계속하는 식으로 무대 뒷면의 진실된 북한의 모습, 통제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찍어서 보여줬어요. 그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학교가 오늘날 실제로 존재하는 학교임에도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촬영감독이랑 이 룩을 레퍼런스로 해서 처음에는 물이 빠져있는 느낌에서 나중에는 각자의 색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연출했어요. 처음엔 포크레인의 색깔, 그다음엔 야채의 색깔, 짐벌의 색깔들.. 점점 교복을 벗고 각자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형식적인 것도 촬영감독과 이야기 나눴어요.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에 나온 학교의 모습 (출처: DAUM 영화)


Q. 한예종 입시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오늘 참여해주신 분들이 중, 고등학생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입시를 봤을 때랑 시대가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만약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한예종에 가지 않을 것 같아요. 대신 영화를 바로 만들든, 아니면 세상의 경험을 다양하게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영화는 표현의 방식이지 저는 영화보다 춤이 더 좋거든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막말로 영화라는 매체가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웃음). 영화 그 자체 혹은 영화 학교에 대해 집착하기보다 창작이 좋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왜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게 시간을 절약하는 것일 거예요. 돌이켜보면 한예종에서는 영화하는 동반자들을 얻었던 것 같은데요. 동반자를 만드는 건 현장을 바로 경험하면서 가능하니까 학교를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그 자체 혹은 영화 학교에 대해 집착하기보다 창작이 좋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왜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Q. 시나리오 쓸 때 중요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의 관심사와 맞는지, 이 이야기를 왜 내가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가 왜 이 이야기를 봐야 하는지 고려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Q. 창작자가 작품이나 주인공에게 이입했을 때의 효과는 무엇인가요? 그것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일단 저는 창작자가 주인공에게 이입했을 때 나쁜 점은 없는 것 같아요. 창작자가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건 좋은데 창작자가 창작자나 제작자로 이입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아요. 어떤 메시지를 강요한다거나 이념을 강요한다거나 이런 건 우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캐릭터에 집중하는 게 더 순수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시는 작품이 있나요?

짧게 홍보 하나만 할게요(웃음). 제가 최근에 참여했던 작품이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거든요. 크리스마스 즈음 개봉할 예정이에요. 제가 안무감독을 맡았는데 상업 영화를 경험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앞으로 작품 활동은 일단 춤을 좋아하니까 춤과 이야기가 어떻게 함께 갈지, 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또 한 번 학교를 배경으로 한 댄스 뮤지컬이에요. 아, 현서랑 혜림 선생님이랑 메이킹도 찍었는데 Team Yuwol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앞으로도 계속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온라인 GV라는 새로운 시도였음에도 오프라인 GV 이상으로 활발하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덕분에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BEFF 감독님과의 대화가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많은 10대 창작자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었길 바랍니다.


앞으로 스토리스튜디오가 다양한 스토리텔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갈 만남과 대화의 자리도 기대해주세요.



BEFF 감독님과의 온라인 GV를 준비한 '스토리스튜디오'가 궁금하다면?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감독님의 어린 시절처럼, 이야기에 관심 있는 12~19세 친구들이라면 누구든지 무료로 쓸 수 있는 작업실, 스토리스튜디오에 꼭 한번 놀러오세요!


>> 스토리스튜디오 방문 신청하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0/bizes/816548/items/4769352


스토리스튜디오를 지키는 만 매니저, 민 매니저, 그리고 BEFF 감독님

>>스토리스튜디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 스토리스튜디오 자세히 알아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4월에는 스토리스튜디오와 함께: <온라인 프로그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