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국의 저항 시인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현직 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2013년 봄에 출간한 이 책 제목의 아이디어를 윤동주 시집에서 빌려왔다.
저자는 2018년에 출간한 ‘떨림과 울림’을 포함한 과학분야 베스트 셀러를 내면서 TV 매체 등을 통하여 대중과 할발히 소통하는 과학자이다. 양자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지만 인문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예술을 사랑하고, 미술관을 즐겨 찾는 따뜻한 과학자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이 책은 5년전 전작인 ‘떨림과 울림’에서 다룬 내용을 기반으로 새롭게 보강하여 쓴 책이다. 과학자로서 물리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원자에서 인간까지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하여 이 책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자답게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인 원자를 1장에서 설명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원자, 분자, 화학반응, 지구, 별, 최초 생명체, 다세포 생물, 생명의 진화, 마지막으로 인간에 이르기 까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인간을 해석하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대중 과학서로서 가능한 쉽게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교적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 조차도 이 책의 초반부터 시작하는 원자, 분자, 화학반응, 생명체 DNA 등에 대한 설명을 읽어 나가기가 만만하지 않다. 원자의 구조에서 전자를 원자호텔의 투숙객으로 설명한 것은 아주 참신하다. 그러나 원자호텔의 어떤 3층이 4층 보다 더 높은 데 있는 이상한 경우는 더 깊은 이론이 필요하니 양자역학을 따로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을 피해간다.
저자도 이 책에서 여러차례 설명했듯이 원자에서 출발해서 마지막으로 인간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의 변화는 사람의 상식과 직관으로 이해될 수 없다. 저자는 매우 상이한 각 단계의 변화를 창발(創發)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창발은 어떤 단계의 변화가 그 전 단계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전 단계에 있었던 요인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성질이나 특성이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과학은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을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학, 진화론, 우주론 등의 객관적인 시각과 이론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물질이 왜 존재했는지는 물리학자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미 저절로 존재해 있는 물질과 이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을 과학적 인식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물질과 공간은 저절로 생성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 존재에 의미 따위는 없다. 이 물질로 부터 인간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138억년 전의 빅뱅(Big Bang) 사건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에 의식은 없다. 이러한 물질로 채워진 공간은 차갑고 공허하다. 이 책의 후반에서 차가운 공허함을 사람이 등장하는 인문학으로 채우려는 저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해석하는 세상에서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에 물질로서 존재하여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외의 모든 것은 ‘허구’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말하는 허구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모든 것을 말한다. 언어, 종교, 음악, 예술, 용기, 사랑, 미움, 생각, 의식, 도덕성, 자선, 희생정신, 유머감각, 창의성, .. 이러한 비물질적인 것은 물리학자인 저자의 세계관에서는 허구이다.
“물리학자가 보기에 인간이 만든 허구의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과 돼지 가운데 하나를 죽여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돼지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왜 인간이 돼지보다 중요한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이유가 없다면, 돼지도 비슷한 논리로 인간보다 돼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거다.”
“의식이 무엇인지, 생각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의식과 생각이 존재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의미는 필요없다. 정보 과학이 알아낸 놀라운 결론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중에서>
저자가 말하는 정보과학은 첨단 컴퓨터 기술과 현대 뇌과학으로 볼 수 있다. 현대 뇌과학은 인간의 ‘생각’에 대하여 뇌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와 분자의 끊임없는 물리적인 현상의 결과로 창발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따로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초월적인 존재가 있어서 생각이 만들어졌어도 저자의 입장에서 그 존재는 허구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도 허구이다.
저자가 보기에 우주의 모든 것은 물질 세계로 통합되어 있고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도 끝없이 변화하는 물질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로서 과학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한 브라이언 그린은 인문학 분야의 지식을 세련되게 표현한 최근의 저술에서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생각을 보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유일한 허구인 ‘시’가 물질인 ‘인간’으로 바뀌면서 이 책은 100%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