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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Dec 13. 2023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정지음

나는 이 책을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 몇달 전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평균적인 일상을 사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모습과는 한참 벗어 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25살에 성인 ADHD라고 진단을 받은 30대 초반의 신인 작가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첫번째 책 <젊은 ADHD의 슬픔>으로 2021년에 제 8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전업 작가가 된 저자는 1년 후에 같은 ADHD를 테마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저자의 타고난 글 솜씨는 매우 감각적이다. 자신의 생각을 작가다운 문장과 어휘로 재치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내가 글에서 느끼는 저자의 세계관은 전반적으로 냉소적이고, 부정적이고, 날 서있는 칼같고, 주변 사람에게 당하고, 부딧히는 시선을 피하고, 원만하면 꾹 참고, 받아주는 사람에게는 폭발하고, 정서가 통하는  다른 ADHD로 부터는 위로 받고, 결코 살아가기 쉽지 않은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어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의 저자가 이 책의 부제로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를 선택한 것은 너무도 적절하다. 굳이 ADHD가 아니더라도 사회 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편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게 생각하는 저자 입장에서 좋은 관계라는 목표는 ‘넘어 서기 어려운 벽’이고, 저자를 대하는 타인은 ‘넘고 싶지 않은 벽’일 수도 있다.


자신이 ADHD라는 사실로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진 저자의 시각을 통하여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부러워하며 사는 독자와 저자의 모습을 동시에 읽는 것은 우리 삶의 속살을 보는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젊은 ADHD의 슬픔>의 출간 후엔 갑자기 여기저기서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독자들의 고민 상담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분들 중 상당수가 작가님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동된 SNS 계정을 눌러보면 이미 나보다 휼륭히 살고 계시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어떤 분들께는 오히려 내가 인생에서 알차게 사는 꿀팁을 여쭙고 싶어질 정도였다.


저자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마음을 솔직히 내 보인다. 특히 저자는 ‘회사’라는 조직과 사장에 대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한다. 사업 목표를 위하여 조직과 규정으로 움직이는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저자에게는 끔찍했다고 보인다.


인간은 고작 수십명이 모인 곳에서도 기어이 서로를 착취했다.
이제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정해진 모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아직도 악한 개인이 모였던 것인지, 회사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을 망쳐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를 괴롭힌 이들도 인스타그램 속에서는 이보다 선할 수 없는 소시민들이었고, 그들의 태평한 피드를 구경하다 보면 내가 격은 일들이 거짓말 같아졌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때의 악몽을 꾼다. 음, 이젠 별로 끔찍하지 않은걸? 나도 강해졌나 봐, 생각하면서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동기의 ADHD는 어릴 때부터 너무 활발하거나 까다로울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에너지가 넘친다’, ‘ 남자답다’, ‘모터가 달린 것 같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와 같은 성격으로 치부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게된다. 약하게는, 팔다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흔들어 대고, 학교에서 자리를 자주 이탈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내는 등의 과잉 행동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ADHD는 꼼지락거리기, 계속 무언가를 만지기 등 작은 움직임으로 바뀔 수 있다. 주의 산만하여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끝맺음을 잘하지 못하는 고, 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하지 않고, 시작한 일을 끝내지도 않고 다른 일을 벌이는 것 등의 행동을 한다.

ADHD 성향을 물려받은 아이가 말썽부리고 사고를 친다면 흔히 부모는 이 아이가 더는 사고를 치지 못하게 강력한 통제를 하게 된다. ADHD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드럽게 양육하려던 부모가 더 강압적으로 바뀌게 되는 모습도 있다.


자녀가 ADHD인 경우 “부모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자녀의 양육 환경과 형질 유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ADHD인 부모의 자녀가 ADHD일 확률은 60~7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ADHD 기질이 상당한 수준으로 유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녀가 ADHD로 진단된 경우 그 부모가 ADHD 성향을 가진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ADHD로 의심되는 부모는 성격이 급하고, 사소한 일에도 욱하고, 가정에서 강압적인 양육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사이에서도 일방적이거나, 배려와 존중이 부족한 편으로, 의사소통에서도 자기 주장이 강해서 자녀가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할 말이 있어도 꾹 참고, 외면하고, 문제가 있어도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부모 중 누구라도 ADHD 성향이 있었다면, 그 부모의 결혼생활과 자녀를 키우는 모습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가정의 자녀가 잦은 부부싸움, 언어폭력, 신체적 학대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본다면 ADHD인 부모가 잘못 키워서 아이가 ADHD가 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ADHD가 상당한 수준으로 유전되는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부모도 그 형질을 조부모로 부터 타고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나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령대별 ADHD 유병율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다행히도 나이를 먹는 것도 ADHD를 극복하는 좋은 처방으로 보인다.


“너도 이제 00살인데 정신 차려야지.”
나는 또래보다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 말을 매년 들으면서 자랐다. 20, 25, 27, 28 … 사실 29세까지도 큰 타격은 없었다. 정신차리는 것보단 정신 차리란 말이 주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게 쉬운 탓이었다.
그러나 30은 달랐다. “너도 이제 서른인데 정신 차려야지”는 “너도 이제 스물아홉인데 정신 차려야지”보다 훨씬 타격감이 컸다.


나는 유전된다고 하는 ADHD라는 질병이 우리 사회에 오래 전 부터 있었지만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던 시절이기에 인식을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워라벨을 추구할 만큼 풍족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가난해진 결과 문화적으로 결핍되고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면서 부각된 사회적 산물인지 솔직히 구별이 잘 안된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과잉 보호와 지나친 간섭도 ADHD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것과 관련 있는 것 같다. 또한 ADHD를 장애인 약자로 보고 자기 책임의 댓가없이 사회에서 받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면 이것도 수긍이 안간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엄연한 30대 대한민국 여성의 일부이고, 우리 사회가 떠안을 수 밖에 없는 단면의 하나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 시스템으로 볼 때 시간이 지날 수록 가끔은 미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APPENDIX(1)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장애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연령 또는 발달 수준에 비하여 과잉행동, 충동성, 주의산만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만성질환을 말한다. 부수적으로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 유지의 어려움, 학습 수행능력 저하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ADHD는 초기 아동기에 발병하며, 소아청소년 ADHD가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것이 성인 ADHD이다. 19세 이상 성인의 연령대별 ADHD 유병율은 20대가 7.7%, 30대 3.1%, 40대 1.3%, 50대 1.0%, 60세 이상 1.1%로 조사되었다.


APPENDIX(2)

사춘기 자녀중에서 특히 남자 아이들의 행동은 ADHD라고 생각할 만큼 감당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만함, 끊임없는 장난질, 큰 몸동작, 식당에서 가만히 못 앉아 있음,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온갖 위험한 행동 등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초등학교 부터 중학교 기간의 중의 남자 아이들에 대한 꼬리표이다.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지지 않고 천방지축이다.

이 시기는 사람의 일생에서 전두엽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라고 한다. 사람의 뇌에서 논리적 사고, 언어 기능, 기억력, 사고력, 창조력과 같은 고등 행동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인간에게 현저하게 발달해 있다. 이 부분의 발달이 어느정도 완성되는 고등학생 쯤이면 천방지축인 아이들도 철든 행동을 한다. 부모가 이러한 뇌 발달의 특징을 인식하고 아이들을 지혜롭게 양육한다면 극히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아들을 섣부르게 ADHD로 진단하고 약물로 다스리려는 잘못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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