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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Jan 01. 2024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 글 / 유희 그림

이 책은 올해 어느 날 라디오 북클럽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너무나 웃기고 재밋었다는 소개에 구입했다. 정확히 10년 전인 2013년 겨울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이후로 만화로는 처음 구입해서 읽은 책이다. 나름 책 좀 읽는다는 만화속의 주인공들은 자만심에 가까운 독서 취향을 각자 펼친다. 만화 특유의 개그가 주는 맛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만화책은 <책과 세계 (강유원 저)>의 지극히 냉소적이고 자극적인 서문의 일부로 시작한다. 책을 자연에 빗대면서 극적으로 인간을 비꼰다. 저자는 인문학자인 강유원 선생에게 들은 강의가 이 책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감으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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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띁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책과 세계 (강유원)


이 책에 등장하는 독서 중독자들 모임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아니면 적어도 역사서 정도 읽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저자가 이 만화책 중간에 인용한 책들과 인용구는 저자의 독서 내공일 수도 있고,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 중독자들의 유난한 취향을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리스트’가 약 100권 들어 있다.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지적 수준이 높은 제목의 책들이 대부분이라 거의 읽지 못했고, 일부는 곁을 스쳐 지나간 책들이다.

이 책 주인공들의 독서 취향이 유별나고 재미있다. 실제 현실에서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러한지는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

 - 자기개발서는 책으로 취급도 안한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은 가차없이 모임에서 추방한다.

 - 번역서의 경우,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재고의 여지없이 무시한다.

-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으로 얻은 지식은 반납과 동시에 사라진다. 그러니 책은 무조건 사서 읽는다.

 - 품절이나 절판된 책은 도서관에서 읽는다. 근처에 도서관이 없으면 인간이 살곳이 아니니 이사 간다.

 -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 어쩌다 읽은 책이 훗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불명예로 여긴다.

 - 책의 주석은 웬만하면 무시한다. 누가 강제로 읽으라고 하지 않으니 고지식하게 다 읽지 않는다.

 - 완독에 대한 집착을 안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20%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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