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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May 28. 2022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최재천

2011년에 출간되었고 2022년에 리커버판이 나온 이 책은 1백쪽이 약간 넘는 작은 분량으로 한손아귀에 들어오는 작은 책이다. 경영자독서모임(MBS) 올해 추천한  목록중에서 눈에 들어와서 구입하였다. 주로 잠들기 전에  책을 읽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내용임에도 몇쪽 읽다 보면 잠이 쏟아지다보니 어이없게도  읽는데 거의 2주가 걸렸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생물학자의 시각으로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해  지식인이다.

46억년 전에 개교한 지구라는 학교의 첫 학생은 35억년 전에 입학한 미생물이었다. 지금 지구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생물종)은 약 190만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 완벽하게 압도적인 1등은 약 10만년 전에 입학한 인간(종)이다. 이 학교에서 2등인 학생은 1등인 인간과는 너무나도 큰 실력 차이가 나기에 누구라고 구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제 부터인가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낸 문자, 악기, 자동차, TV, 컴퓨터, 우주선 같은 사물을 볼 때, 이러한 사물의 정교함과 최첨단 과학기술에 감탄하기 보다는 이러한 사물을 고안하여 만들어낸 인간 자체가 더 신비롭고 경이롭다. 어떻게 다세포 동물의 집합체인 인간 생명체가 물질구성의 기본인 원자와 표준모형을 만들어 내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수학적 언어를 고안하여 초미립자의 작은 세계와 광대한 우주의 탄생과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종이 되었는지 너무도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 차라리 더 자연스럽다.

지구 학교에서 너무나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인간은 부를 쌓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제도까지 만들어 같은 인간종끼리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려는 탐욕을 부린 나머진 학교 환경을 극도로 피폐화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간이 망가뜨린 지구환경문제로 전체 학생(생물종)의 약 30%인 60만 종이 앞으로 30년 안에 멸종될 예정이다. 이미 곤충(종)의 약 50%은 학교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벌(종)이 지난 겨울을 지나면서 약 80억 마리가 죽었고, 이는 우리나라 땅에서 살아온 꿀벌의 약 15%이다. 벌리 꽃가루를 옮겨주어서 번식해 온 식물(종)도 함께 사라질 위기를 알아 챈 인간은 급기야 2018년에 UN이 나서서 매년 5월20일을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많이 늦었다.

인간은 지구 생명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인공적으로 암 유발물질을 만들어 내는 종이다. 지구 학교에 인간의 입학(출현)은 지구 생태계를 크게 바꾸어 놓은 대형 사건이었다. 현재 지구에서 한 생물종으로서 인간과 경쟁할 수 있는 종은 없다.

나는 어마어마한 넘사벽인 인간(종)이 초래한 이러한 환경 파괴를 고스란히 옆에서 함께 당하고 있는 말 못하는 지구 학교의 새, 곤충, 물고기, 고양이, 개, 말, 원숭이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살충제, 제초제로 인한 환경파괴와 대기중에 끊임없이 방출되는 오염물질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심각한 문제는 기업에게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본질을 벋어나지 못하는 정치가와 기업가는 ESG 경영 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포장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 및 사회적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경영을 기업의 비재무적평가 요소로 중시하는 것도 결국은 지구 학교를 지키고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려는 시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성경의 창세기 1장 28절에서 인간에게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을 명확하게 부여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비극적 결과는 인간 자신에게 이미 돌아왔다. 자본주의 이전의 시절로 지구 시계를 되돌리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포기하는 것 만큼이나 까마득하다. 우주물리학 과학자를 앞세운 극소수의 자본가는 화성에 지구피난 기지를 구축하거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노아의 우주선으로 인간(종)의 영생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종 중에서도 힘있고 강한 1% 미만은 이 상황을 피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의 시계가 흐를수록 결국 가난해지는 99%의 인간종이 이러한 파괴적인 상황에서 피해나 갈 방법은 없다. 모든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혜택과 환경 파괴로 인한 비극은 전적으로 지구안에서 일어지는 사건이다.

저자는 놀랍게도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종이 언젠가는 반듯이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종말론을 말하는 사이비 교주라서가 아니라 지구상에 한번이라도 존재했다가 살아진 생물이 최대 99%에 달한다는 고생물학자의 통계에 비추어 내린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라는 뜻이다. 약 10만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Homo Sapiens)의 나이는 46억년인 지구의 나이와 35억년의 생명의 역사에 비하여 눈 깜작할 순간이기에, 저자는 “인간은 어리석게도 스스로 갈길을 재촉한 나머지 '짧고 굵게 살다가 간 동물'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학술명칭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지혜롭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영리하기는 하지만 현명하지는 못하다고 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으로 공존하는 인간(Homo Symbious)을 주장한다. 저자는 2003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신세기문명포럼'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강연하였고, 호모 심비우스는 저자가 이 포럼에서 제시한 용어이고 강연 제목의 일부이다.

저자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더불어 비겁함이 우리를 평화롭게 한다."는 문구를 인용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의 다음 문장은 생물학에서 배우는 깊이 있는 삶의 철학이다.

「 힘의 우위가 뚜렷한 사회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든지 상대의 약한 틈이 보이면 공격하려는 분노의 용암이 들끓고 있다.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가 오히려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자연으로 부터 배울 게 있다면, 나는 이 약간의 비겁함을 제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 사람들은 '자연' 하면 흔히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 등의 표현을 떠올린다. 이 표현은 생명현상에 대해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한 다윈의 진화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남보다 월등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 세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다원은 이 표현을 그리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윈의 이론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그의 '성전'을 끼고 세상으로 뛰쳐나간 '전도사'들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20세기 후반의 남성 생태학자들의 거의 95%가 자연계의 치열한 경쟁을 연구주제로 삼았던 반면에, 그 당시 여성 생태학자들의 거의 절반은 공생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21세기 초반의 생태학 연구 추세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자연계의 생물들에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무조건 남을 제거하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란 것을 발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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