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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Sep 12. 2022

일본의 굴레[Japan and the Shackles]

태가트 머피

세상을 살다보면 가까운 사람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불행해지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은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나 동료, 선후배, 경계가 붙어 있는 이웃집 그리고 이웃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당한 불행한 식민지배 역사는 깊이 새겨진 상처라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늦은 근대화 과정에서 메이지유신으로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의 생활과 학술 언어에 일본 근대화의 영향이 많이 스며있지만 우리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을 학교, 책, 논문, 강좌 등을 통하여 배웠고, 여러차례 일본 여행과 일본회사와 비지니스 경험을 통하여 나는 비교적 일본이란 이웃을 알고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이라는 가해자 이웃은 속 시원하게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 문제는 앞으로도 거의 답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여옥이 2002년에 출판한 ‘일본은 없다.’ 같은 방식으로 일본의 안좋은 점을 지적한 책은 민족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는 맛이 있다. 나도  당시 재미있게 읽었고 일본이란 나라가 얼마나 어설프고 부족한 나라인지 파악했다고 좋아했지만, 역사적으로 앙금이 남아 있는 이웃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지혜롭게 처신해야 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안되는 책이라고 본다. 우리끼리 만족하는 마약이   있고, 시야를 좁게 가리어  게임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만들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과거에 우리가 힘이 약해서 일본에게 당했고, 지금도 힘이 부족하여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세계 여러나라 중에 일본 민족이 특별히 사악하고 세계시민으로서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모습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개인, 이웃, 국가 모두에 적용되는 본질직인 현상이고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외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쓴 고전중에 ‘국화와 칼’이 있다. 1946년에 미국인 루스 베네딕트가 출간한 ‘국화와 칼’은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은 저자가 일본이 미국에 대하여 벌인 태평양전쟁 막바지 교전 중에 쓴 책이다. 미국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일본인의 독특한 행동과 가치관을 각종 연구자료, 미국 현지의 일본인과 인터뷰 등을 통하여 확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명저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하여 미국인 태가트 머피가   책은 대학 졸업후 일본에서 40년간 살아온 국제정치경제학자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외교 등의 다방면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의 '누구나 알아야 하는 지식' 시리즈  하나로 출판된  책은 영미권의 독자를 대상으로  책으로 한국과 일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고 있어서 한국인인 내가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자신의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웬만큼 알기전에는 겉모습만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인의 내면 속살까지 깊게 경험했고 일본에 대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위치이다. 아무리 일본에 오래 살았어도 결코 일본의 내부자가 될 수 없는 저자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냉정하게 파헤치는 외부자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일본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서구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동의 기원을 찾고 있다. 저자는 일본 역사에서 근대 이전의 무사 정권인 막부와 근대 메이지 정권을 세운 주체가 같은 사무라이라는 것은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점이다라고 서술하였다. 저자는 일본이 봉건 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권력의 주체 세력들의 성격은 사실상 바뀌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패전  일본에서 진행된 미군정의 개혁은 미소냉전으로 인하여 의도한 만큼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군국주의 주체 세력들이 부활하여 여전히 민주주의의 옷을 입고 현대의 일본을 이끌고 있는 모습을 일본의 굴레로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의 일본을 구속하고 있는 과거의 굴레로 매우 독특한 일본의 지배 구조를 들수 있다. 저자는 일본의 지배구조에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천황제와 서양에서 들어온 입헌정치라는 서로 다른 모순이 병존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인 지배구조에서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다. 그 결과, 일본 정치에서는 정치권력의 실질적인 원천이 무엇인지 모호하고, 집권계층이 모호한 사실은 현재도 일본에서 진정한 의미의 혁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고,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의 결과로 일본을 점령했던 미국이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굴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은 점령국인 미국의 강력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나라를 꾸려왔다. 미국을 통해 자신의 국제정세 리스크를 상당부분 해결해온 일본은 약간의 비굴함의 대가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지원을 받아 매우 빠르게 경제를 재건하여 경제 성장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렇지만 혁신이 필요한 지금의 시대에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입김을 벗어나서 일본 스스로 설 수 있는 정치외교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의 독특한 창의성의 기원을 모순과 모호함을 참고 견디는 능력에서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사람들에게 모순을 참지 말라고 말했지만 일본의 철학 사상에는 그런 명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수준의 모순을 관리하면서 공생하는 능력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정신을 얼마쯤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순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점점 덕목이 되어가는 나라는 더 이상 일본만이 아닐 수 있다.

아시아 지역의 일원인 우리나라는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이 서양의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아시아의 단결과 이익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의 경험이 전혀 없는 일본인이 자신은 아시아 국가 조차도 가본적이 없다고 하는 말에 저자가 너무도 황당했다는 내용을 이 책에서 읽고 평균적인 일본인의 속생각을 들여다 본듯하고 그 동안의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내용이 많기도 하지만 영어식 표현을 우리말로 번역한 문장을 읽어 나가면서 자주 문맥을 되짚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그러함에도 마지막 11장 ‘일본과 세계’는 너무도 흥미진진하게 재미가 있다. 일본을 너무도 잘 알지만 결코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의 시각에서 펼치는 일본의 국제정치 위상과 이에 비추어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함께 알 수 있어 배움이 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광복 이후 냉전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건국이후 우리나라는 사실상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질서 안에서 일본이 가는 길을 충실히 뒤따라 간 나라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의 객관적 상황과 현재 위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배움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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