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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Oct 11. 202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이 책의 초판은 23년전인 1999년 6월에 출간되었다. 결혼 후 30년 넘게 살아온 천안을 떠나서 작년에 분당으로 이사온 후 책장에 쌓여 있던 오래된 책들을 아내가 최근에 정리하였다. 내가 미술관련 책을 가끔씩 읽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아내가 이 책을 챙겨 주었고, 고흐를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에 관심있게 읽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네덜란드에서 목사인 부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흐는 1872년 8월(19세)부터 자살로 죽기 직전인 1890년 7월(37세)까지 18년 동안 친동생 테오에게 688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책은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6세(1879년) 이후의 편지 80여통으로 역은 서간문이다. 이 책에는 편지와 함께 보낸 고흐의 그림이 함께 실려있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고흐는 20세 무렵부터 화랑직원, 견습교사, 서점점원으로 일하다가 늦게 신학을 시작했지만 학업을 중도에 마치고 탄광지역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였다. 한 집안의 맏아들로서 이렇다 할 사회적인 지위가 없어 부친의 눈밖에 난 고흐는 26세 여름에 그림에 관심을 갖고서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못했던 고흐는 동생 태오로 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약속받고 1881년 12월(28세)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흐는 죽기까지 879점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이 중에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희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

고흐는 풍경, 정물, 인물을 그리면서 구도와 색채 이미지로 연상되는 그림에 영혼을 담고 싶어했다. 그래서 고흐는 '영혼의 작가'로 알려져 있고, 이 책의 제목도 '영혼의 편지' 이다.

「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

나는 워낙 유명한 화가인 고흐의 그림을 좋게 보려고 해도 그의 작품의 특징인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붓터치가 여전히 낮설고, 생경한 색감의 그림이 주는 정서가 솔직히 불편하다. 고흐의 그림을 사람들이 명화로 인정하는 것은 작품 자체만의 가치라기 보다는 동생에게 그림과 함께 보낸 고흐의 편지가 잘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고흐가 생전에 작품을 팔지 못하여 빈곤한 삶이라서 훌륭한 화가로 평가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고흐보다 더 가난해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름없는 예술가는 당연히 더 있다. 그에 비하면 가정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서 그림에 자리잡은 부족한 형을 마지막까지 믿고 경제적으로 돌보아 준 동생이 있었기에서 고흐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화가이었다고도 생각된다.

1980년대초 운동권의 치열한 이념논쟁과 함께 헤게모니 쟁탈전에 넌더리가  나는 대학교 3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다. 군을 제대한 이후로 대학 4학년에 복할할 때까지 나는 이렇다  수입이 었다. 당시 은행에 근무했던 남동생에   돈을 부탁했던 나는 유화물감이 떨어질 때마다 미안해하면서 동생 테오에게 돈을 부쳐달라는 편지를 썼던  고흐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해바라기’ 작품으로 잘 알수 있듯이 그림에 유난히 노란색 물감을 많이 사용한 고흐는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너무나도 친근하고 인간적인 편지를 쓴다.

「 나도 물감값이 비싸다는 건 알아. 그런데 자꾸만 덧칠하고 싶어져. 이미 노란 들판이 완성되었는데도 자꾸만 덧칠해야 할 것 같고 덧칠하면 기분이 좋아. 나도 알아. 물감값이 비싸다는건.... 」

고흐가 죽기 1년전에 테오에게 보낸 아래의 편지는 가까운 가족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이다. 자신의 작품이 팔리지 못하여 생활은 항상 궁핍하였고, 간질발작으로 육신은 피폐해져 갔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그림을 계속 그리려는 고흐의 안타까운 삶이 절절히 느껴진다. 스스로도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는 것을 잘 알면서도 빌린 돈을 못 갚으면 영혼을 주겠다는 형의 편지를 받은 동생 테오의 마음에 고흐의 마음이 겹쳐진다. 고흐보다 4살 아래인 동생 테오는 고흐가 죽은지 약 1년 후, 마비성 치매를 앓다가 죽었다.

「 아직 한겨울이니 제발 조용히 작업할 수 있게 내버려다오. 그 결과가 미친 사람이 그린 그림에 불과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참을 수 없는 환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니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 다오. 내가 잘못 했다면 나를 가둔다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

[ 1889년 1월 ]


이 책에 실린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고흐가 생각하는 그림 세계를 설명하는 내용 일부를 발췌하였다.

「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좋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었이 들어 있는지 보여 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샤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걸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

[ 1882년 7월 ]

「 무엇보다 내가 돈 버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그 목적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니. 참되고 가치 있는 작품을 그리는 게 가장 기본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되려면 작품이 팔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할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정말 훌륭한 어떤 것이 들어있어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정직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 반듯이 그 댓가를 치를 것이다. 」

[ 1882년 8월 ]

「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간다고 할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 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화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

[ 1888년 7월 ]

「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

[ 1888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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