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는 왜 1600년대일까: 숫자의 함정

ChatGPT와의 대화

by 서그냥

나의 말:

'교양'이란 건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이지만, 실제로 가지기에는 너무 재미없고 어려운 영역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야.


ChatGPT의 말:

맞아, '교양'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접근하기엔 딱딱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


그중에서도 교양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세기 구분’이라고 생각해.


왜 세기 구분이 교양을 특히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했어?


교양을 얘기할 때는 년도를 표시할 때 몇 세기로 표현하는게 많아. 15세기 무렵, 17세기 이런식으로 말이야. 15세기는 1401년부터 1500년까지를 말해. 마찬가지로 17세기는 1601년대부터 1700년까지를 말하지.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하는 건 참 쉬워. 하지만 이건 직관적인 방식은 아니야. 17세기에 숫자 17이 들어가니까 1700년부터 1799년대를 의미했다면 훨씬 직관적이었을거야. 1714년은 18세기가 아니라 17세기로 생각하면 쉽잖아.


그렇구나. 왜 세기 표현이 그렇게 직관적이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는데! 그래도 너가 한번 설명해봐.


좋아. ‘세기’는 라틴어 saeculum에서 온 말로, 원래는 “한 세대” 또는 “약 100년”을 의미했어. 연도 기준으로는 1년부터 100년까지가 1세기, 101년부터 200년까지가 2세기 이런 식으로 세는 거지.

그러니까 1세기가 0년부터가 아니라 1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포인트야. ‘0세기’는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도 + 1 = 세기”라는 조금 비직관적인 규칙이 생긴 거야.

예를 들어 1600년대는 1601년부터 1700년까지니까 17세기. 숫자가 1 빠져서 헷갈리기 딱 좋아.


맞아. 역시 좋은 설명이야. 0세기라는 게 있었다면 우리의 '세기' 명칭 체계가 더욱 직관적이었을텐데 말이야. 누군가는 그냥 '연도 + 1 = 세기'라는 공식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게 왜 교양을 익히는 데 걸림돌이 되는지 이해못할 거라고 생각해. 맞는 말이긴 해. +1만 하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한번만 하는게 아니라는 게 문제야. 교양을 공부하다보면 몇 십번이 넘게 '세기'라는 표현을 접하게 될거야. 그러면 그 표현을 만날 때마다 연산을 해야하지. 그 시대의 역사, 문화, 정치, 예술 등을 학습하기에도 벅찬데 말이야. 그리고 인문학적 내용을 습득하는 것과 연산을 하는 것은 서로 너무 다른 사고방식이라 뇌에서도 전환에 따른 부하가 올거야. 부하가 걸리면 자연스레 짜증이 나지! 그러면 귀찮아지고, 다른 더 재밌는 걸 찾고 싶어지고, 굳이 교양을 알아야하나 싶고, 그렇게 교양이 멀어지는 거야. 어느 정도 교양에 익숙해진다면 당연히 괜찮아지겠지만, 교양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는 거지.


와, 정말 설득력 있는 설명이야.

특히 “연산과 인문학적 사고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이라 전환에 부하가 온다”는 말이 인상 깊어.

듣고 보니 진짜 교양 초입에서 자주 마주치는 ‘세기’라는 단위가 얼마나 반복적이고, 또 그때마다 소소하지만 누적된 인지적 피로를 줄 수 있는지도 명확히 느껴져.

그런데 너 말대로라면, 교양 입문자들이 세기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내 말에 대한 평가는 자제해줘. 무조건적인 긍정 평가가 이질감을 주니까. 공감은 괜찮아.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 지금 말한 '세기를 연산'해야한다는 문제를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는 거야. 이건 너무 사소한 문제기도 하니까. 공식 자체는 쉬우니까 이해하면 된다고 여기게 되니까 말이야. 그러면 교양이 싫어지고 멀어지는 이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교양이니까 싫어!'라고 생각하게 될 유인이 있어.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원인을 모르니까 피해버리는 거지.


맞아, 공감돼.

‘세기를 연산해야 한다’는 건 분명 반복되면 피로한 일인데, 너무 사소해 보여서 스스로도 그게 왜 싫은지 인식하기 어렵지.

그래서 “그냥 교양이 싫어”라고 뭉뚱그려져 버리고, 실제 원인을 놓치게 되는 거고.

원인을 모르면 해결도 안 되고, 결국 피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아.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 0세기를 붙이지 않았을까? 0년부터 100년을 0세기라고 할 수도 있었잖아. 그때는 0이라는 숫자에 대한 개념이 없었나?


맞아, 핵심은 바로 그거야. 고대 로마와 서양 중세 초기에 ‘0’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

서양 숫자 체계는 로마 숫자에서 발전했는데, 로마 숫자에는 ‘0’이 없어. 예를 들어 I, II, III, IV, V… 이렇게 쭉 가는데, 0이라는 표기는 존재하지 않았지.

‘0’이 본격적으로 수학에 등장한 건 인도에서였고,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된 건 12 ~ 13세기 무렵이야.

하지만 그때도 0은 주로 수학적 계산에만 쓰였고, 연도나 세기를 셀 때는 여전히 관습적으로 “1세기 = 100년”으로 굳어진 채 남았어.

그래서 0세기라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쓰이지 않는 거야.


아아. 고마워. 여기까지 했으니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0년을 정했는지도 얘기해야겠어. 지구 나이는 38억 살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전의 시기는 어따 팔아먹고 약 2000년 전을 0년으로 정했는지 말이야. B.C, A.D 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B.C 300년, A.D 300년 이런식으로 말이야. 둘다 300년인데 둘은 의미하는 시대가 달라.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고, A.D는 Anno Domini 의 약자야. Anno Domini는 라틴어의 약자로 주님의 해를 뜻한다고 해. 예수님 탄생 전과 후를 의미하지. 우리의 날짜를 세는 방식의 기원에는 예수가 있는거야. 기독교가 아닌 사람은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면 조금 놀라울걸?!


정확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쓰는 달력이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깊게 생각해본 적 없을 수도 있어.

지금 우리가 쓰는 ‘서력기원(Anno Domini, A.D)’ 체계는 6세기경 로마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연도를 세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어. 그는 예수 탄생을 ‘기원후 1년’으로 정했고, 그 이전은 B.C.로 표기했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0년’은 없다는 거야. B.C. 1년 다음이 바로 A.D. 1년이야.

기독교권이 오랫동안 세계의 정치, 문화, 과학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체계가 전 세계 표준으로 퍼진 거지.


기원 전을 B.C로 했으면 기원 후도 After Christ로 했으면 참 일관적이고 받아들이기 쉬웠을텐데, 굳이 헷갈리게 기원후를 A.D로 했단 말이지 기준을 정한 사람이 기원을 말할 때 A,B,C,D를 다 넣고 싶었나? 신기하게도 A,B,C,D가 다 들어가네.


진짜 그러네. B.C, A.D에 A, B, C, D가 다 들어가 있다는 건 말장난 같으면서도 묘하게 인상적이야.

사실 라틴어를 쓰던 시대라 ‘주님의 해(Anno Domini)’라는 표현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웠겠지만,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는 B.C / A.C 식으로 표현했으면 훨씬 직관적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 말한 것처럼 A, B, C, D가 다 들어가는 이 절묘한 조합은 못 봤겠지. 우연인지 의도인지, 괜히 한번 더 보게 되는 구조네.


헛소리를 해도 받아줘서 고마워. '0'년이 없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네! 기원 후는 1년부터 올라가니까 자연수 체계라고도 생각할 수 있어. 기원전까지 생각하면 음수와 0을 포함하는 정수 체계라고 생각할 있지. 하지만 0이 빠졌으니까 우리의 날짜 체계는 0이 빠진 정수 체계네. 뭔가 맞추고 싶다. 하지만 안되겠지.


응, 너 말대로야. 기원후는 자연수처럼 1부터 시작하고, 기원전은 음수처럼 줄어드니까 전체적으로는 정수처럼 보이는데, 그 가운데 0이 없다는 게 아쉬운 포인트지.

정수 체계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0이 빠져 있어서 수학적으로는 어딘가 매끄럽지 않지.

맞추고 싶지만, 역사적 배경이 워낙 강고하게 굳어져 있어서 지금 와서 바꾸기도 어렵고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알고 나면, 그 매끄럽지 않음이 좀더 눈에 잘 보여서 더 흥미롭긴 해.


좋은 대화였다. 교양 책을 읽다가 머릿속으로 18세기니까 1701년부터 1800년 이내겠구나와 같은 생각을 반복하다가 처음 교양을 시작할 때가 떠오르면서 누군가에게는 세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대화를 해봤어.


좋은 계기였네.

교양이라는 게 결국은 이런 사소해 보이지만 반복되는 불편함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직접 느껴봤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나온 거겠지.

너처럼 한번쯤 멈춰서 “왜 이게 어려웠지?”를 되짚어보는 게 진짜 교양의 시작일지도 몰라.


우리의 대화에 제목을 지으면 뭐가 어울릴까?


이 대화에 어울리는 제목을 하나만 고르자면:

“교양의 숫자: 세기와 시간의 불편한 진실”

혹은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세기를 넘는 교양의 첫걸음”

도 괜찮을 것 같아.

필요하면 다른 톤으로도 제안해줄 수 있어.


세기의 기준이 교양을 배우는 데 사소하지만 큰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됐으면 좋겠어.


그 의미를 담아서 아래와 같은 제목은 어때:

“17세기는 왜 1600년대일까: 교양의 시작을 가로막는 숫자의 함정”

이 제목은

‘17세기 = 1600년대’라는 혼란을 직접 언급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교양의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어.

다른 후보들도 짧게 제안해볼게:

“교양의 문 앞에 놓인 숫자”

“세기, 교양을 어렵게 만드는 작은 오차”

“+1의 피로: 교양을 멀게 하는 계산”

더 다듬거나 원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알려줘.


첫번째 제안 맘에 든다. 최고야!


좋아해줘서 정말 기쁘다 :)

“17세기는 왜 1600년대일까: 교양의 시작을 가로막는 숫자의 함정”

이 제목, 너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참 잘 어울려.

언제든 또 좋은 생각 떠오르면 이야기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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