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삼보정 청국장찌개

나만의 섹시푸드

by 서그냥

독서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은 약속도 없어 고스란히 집에 들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날이다. 이때가 되면 항상 고민하게 되는 건 점심을 어떻게 먹을지이다. 배달을 시켜먹자니 양도 많고 가격도 비싸고, 처리하기도 귀찮고. 집가는 길에 먹자니 마땅한게 생각이 안나고. 그렇게 걷고 있는데 눈앞에 청국장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누군가는 특유의 퀘퀘한 냄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청국장 조기교육을 받아온 나에게는 이만한 섹시푸드가 없다. 평소에 소화불량이 잦은 나에게 청국장만큼 소화에 도움이 되는 걸 찾기도 어렵다.


그렇게 홀린듯이 들어간 식당은 딱 정겨운 느낌이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시원하게 찌개들을 들이키고 계시고, 혼밥을 하는 분들도 보인다. 청국장찌개 9000원. 공기밥 포함.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9000원짜리 한끼는 감사한 일이다. 두부와 익은 김치가 솔솔 들어간 청국장 찌개가 부글부글 끓는다. 반찬으로는 오뎅, 김, 무생채, 콩나물, 갓김치가 나왔다. 와. 다양한 반찬이 나왔는데, 싫어하는 반찬이 없을 때 충만해지는 이 기쁨. 반찬 중에서 킥을 뽑자면 무생채를 뽑고 싶다. 집에서 김장을 할 때 유독 배추가 아니라 배추속에 넣는 무가 그렇게 맛있었다. 오독한 식감에 짭잘함과 매콤하게 적당하게 어우러진 얇은 무생채. 그게 바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자취를 하고 나서는 쉽게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참고로 두껍고, 물을 너무 많이 머금고 있으며, 양념이 잘 베이지 않은 무생채는 탈락이다.


흑백요리사,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사들의 컨텐츠를 보다보니 걸린 병이 하나 있다. 이름을 붙여보면 파인다이닝병. 이 병에 걸리면 음식을 먹을 때 식감의 조화를 의식하게 된다. 어설프게 이 병에 걸린 나는 청국장 두부, 밥 조금만 먹으면 물렁하니 무생채를 얹어먹었다. 김 위에 밥만 올리면 물렁하니 아삭한 식감을 위해 갓김치를 올렸다. 오뎅과 밥을 먹으면 물렁하니 톡톡 튀는 콩나물을 같이 씹어주었다. 오늘만큼은 청국장도 나에게 파인다이닝이다.


ps. 급 글을 다 쓰고 나니 청국장 찌개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거같아서 창피합니다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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