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유리천장은 모텔에서도 존재한다.

102호는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방이 아니다.

by 백오호

두 번째로 큰 방은 낙하산의 것이었다.


102호는 101호 다음 두 번째로 큰 방이다. 1층에 사는 투숙객이라면 한 번쯤은 그곳에서 머무는 것을 꿈꾼다. 1층 다른 방들과 달리 하루 2시간이나 햇볕이 들어 창문만 열어두어도 습기로 인한 쿰쿰한 냄새를 날려버릴 수 있다. 침대에 누워 야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TV가 크고 선명하다. 냉동실이 따로 있는 냉장고가 있어 만두 같은 냉동식품을 얼려서 보관할 수도 있다.


가끔 냉동 피자를 카운터 앞 공용 전자레인지에서 돌릴 때면 생라면을 부숴 먹는 것이 전부인 1층 다른 투숙객은 상대적 빈곤감까지 느끼게 된다. 절대적 상류층의 삶을 영위하는 투숙객은 부러움을 넘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1층 투숙객들의 바람과 달리 102호는 대부분 낙하산에게 주어진다. 아무리 열심히 야간 당직을 서더라도 도달하기 힘든 자리이다. 오직 모텔 주인이 정한 사람들만이 머물 수 있다. 그래서 내부보다는 외부인이 차지한다. 모텔 주인이 필요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긴 시간 동안 109호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올라오면서 간절히 바랐던 자리인지도 모른 채 낙하산들은 소란스럽게 가치를 훼손시키며 그 방을 함부로 쓴다.


긴 시간 비어있는 102호가 최근에 체크인되었다.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 운동 지역 책임자의 숙소로 내어준 것이다.



선거하는 이들에게 최적의 아지트, 웨스트 가든 모텔


지방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하다 보면 관계자들은 서울과 지방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리고 출마자의 지역구에서 밤늦게까지 술자리나 회의가 있다 보니 숙소가 필요했다. 술자리와 숙소가 동시에 해결되는 곳은 이 지역에서는 서원 거리뿐이다.


한물간 구도심이기 때문에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식당은 번잡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면서 조금 소란스럽게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자리를 참여한 사람들에게 대리비를 준다고 하여도 증거가 될 CCTV도 없다. 스테인리스 식탁은 오랜 시간 긁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지만,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세련됨은 없지만, 여유를 가지고 포용해 줄 것 같은 안정감이었다.


유동인구가 적은 서원 거리는 포섭 대상들이 상대 후보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모이기도 편했다. 지역 사회에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 누구와 적이 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된다. 특정 후보자 회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후보자와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 운동 중 술자리가 있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자주 노출되다 보면 좋을 것이 없다. 상대 지지자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 선거 운동은 구도심 허름한 식당이 딱이다. 누가 적인줄도 알 수 없는 신도심에서 술자리를 하는 것은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이다.


누가 적인 줄도 모르는데 CCTV가 있는 식당에서
술자리를 하는 것은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이다.

이 철칙도 모르는 측근을 두면 2026년 4월 사건처럼 도지사도 날아갈 수 있다.



모텔 사장에게 최적의 끈, 정치인 보좌관


모텔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치하는 사람과 연결되는 끈을 만드는 것은 기회이다. 대부분 모텔에는 청소하는 직원의 숙소나 숙박 용품 창고로 사용되는 불법 건축물이 있다 객실 청소를 하는 데는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으로 고용한다. 나무를 심어야 하는 조경지역은 허가를 받은 다음에는 주차 공간으로 임의로 변경한다. 심지어 까다로운 소방법을 무시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불법적 또는 편법적인 일들이 조용히 넘어가거나 불법지속가능하게 하려면 권력을 통해 공무원들을 위에서 눌러 해결하는 것이 지방에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유력한 국회의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운다는 것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보험이다. 당선만 된다면 불법적인 것들은 다음 선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어 훌륭한 투자가 된다.


미래의 보좌관들은 숙박비를 지불하겠다 말은 하지만 숙박비를 받은 적은 없었다. 선거 운동 본부에서 출장비가 완벽하게 처리되지 않는 빠듯한 상황에서 그들은 호의적인 모텔에 염치보다 편함을 느꼈고 이 호의에 익숙해지면서 무엇인가 보답하겠다는 보증서로 숙박비를 대신하였다.


선거 운동에 편리한 식당 근처에 있으면서 법적으로 문제를 피하고자 하는 모텔 주인이 권력에 우호적이라면 그 모텔은 선거 운동에 최적의 아지트가 된다. 웨스트 가든 모텔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정치하는 진상들 빨리 들여보내는 게 나을 듯


새벽 1시가 지나면 모텔 카운터는 마감을 하게 된다. 야간 당직 알바를 마친 105호는 방으로 들어가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씻고 침대에 누워 과거를 반성하고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음을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건하게 술에 취한 소리여서인지 아니면 주변이 적막해서인지 모텔 전체가 세 사람의 대화로 가득 찼다.


“야, 김의원 있지? 전에 우리 영감님이 꽂아서 최고의원 된 거야. 이번 경선에 영감님이 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이번 경선 룰이 전과가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그게 찜찜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연락 왔어요. 그냥 이대로만 하면 경선 통과시켜 준대요.”


국회의원 후보 나 영감님의 손발인 정 부장, 주 팀장, 천 대리이다. 특정 당의 경선만 통과하면 허수아비도 국회의원이 된다는 지역이니 경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KakaoTalk_20260403_221129139.png

“사장님, 사장니-임. 방 주세요.”


“여기요. 사장님!”


사장님을 부르는 소리는 그들의 대화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105호를 불편하게 했다. 적막한 모텔에 들어와 방을 주라는 소리는 105호의 숙면을 파괴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자고 있다. 이건 환청이다. 아무 소리가 안 들린다.’


여러 번 되뇌며 잠을 자려고 주문을 외웠지만 꿈도 환청도 아니었다. 빨리 체크인을 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낫겠다는 생각에 대충 겉옷을 걸쳐 입고 다시 카운터로 나선다.


“아이고 105호 동생 안 주무셨나?”


‘님께서 깨우셔서 나온 거 안 보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능글맞게 웃는 모습을 보니 ‘너도 정치하는 놈이구나’라는 생각에 방 3개를 주고 체크인 처리를 한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체크인해 줄 사람은 105호뿐이니 서로 안면을 트게 되었다.



102호가 되는 것은 105호에게 허황된 꿈이었나


며칠 후, 회의가 일찍 끝나 선거 관리자들은 모텔로 일찍 복귀하였다. 하지만 카운터 직원이 빨래방에 심부름을 하러 간 바람에 바로 체크인을 못 하게 되었다.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는 그 셋의 목소리는 늦은 시각이나 이른 시각이나 손끝 거스러미처럼 거슬렸다. 점점 예민해지는 상황을 누그러뜨리길 노력하고 있을 때 105호의 전화가 울린다. 101호다.


“오늘 대실이 많아서 급하게 침대 시트 세탁하러 카운터 직원이랑 와있어. 끝나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일단 102호 열려있으니까 거기서 쉬고 있어라 해.”


자신은 차지할 수 없는 방인 걸 알면서도 자신의 드림 룸인 102호를 다른 사람에게 안내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 청소가 덜 끝나서 우선 오늘만 102호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나머지 방도 드린답니다.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세요... 오늘만이요.”


미련이 남아서인지 ‘오늘만’이길 바라며 방을 안내해 준다. 들어가자마자 ‘오늘만’이길 바라는 105호의 바람은 틀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와, 여기는 왜 이리 넓어? 그래 TV가 이 정도는 돼야지. 여기 좋다. 좋아. 사장님한테 다음부터 여기 주라고 말해야겠네.”


그 후, 102호는 염치없는 낙하산의 차지가 되었다.

KakaoTalk_20260403_225333811.png


셋 중 주 팀장은 혼자 여성이다. 아무리 동료라고 하더라도 모텔 방에 남자와 있는 것은 어색하다. 모텔 방 조명은 일반 방의 색감과 다르고, 벽에 붙어 있는 시트지는 이성과 함께 보기에는 조금 민망하다. 주 팀장의 어색함을 눈치챘는지 셋은 나가 생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매번 새벽에 깨워서 미안한데 생맥주 먹으러 같이 갈겨?”


근처 ‘옛날 통닭’에서 생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105호는 엉겁결에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서원 거리 황금기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해 온 메뉴 누룽지 통닭이다.


KakaoTalk_20260403_222605978.png


뜨거운 돌판 위에 자글자글 튀긴 누룽지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통닭 한 마리가 올라간다. 뜨거운 돌판은 먹는 동안 좋은 식감의 온도를 유지하고 통닭의 기름은 아래로 빠지면서 누룽지를 더 부드럽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치킨무가 없다. 치킨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닭이다. 묵은지를 길게 찢어 고기와 누룽지 조금을 돌돌 말아 한입에 먹는 것이다. 얼마를 묵혔는지 알 수 없지만, 배추의 섬유질이 사라지고 새빨갰던 양념이 깊숙이 스며들어 더는 공격적이지 않은 것을 보니 긴 세월을 기다렸음을 알 수 있다. 이 통닭집에서 양손을 쓰지 않는 것은 가식일 뿐이다.

긴 세월에 공격적이던 적색이
묵은지에서 사라졌다.

성실하게 쌓아 올린 삶을 송두리째 무너트린 사기꾼에 대한 원망이

7년이라는 세월에 묵은지에서 적색이 사라지듯 105호의 마음에서도 사라졌다.


묵은지를 보니 7년 전 파산 후 라면과 먹은 쿰쿰한 김치가 떠올랐다.

새 김치처럼 세상 무서움을 모르고 활기찼던 약국장에서 쿰쿰한 냄새나는 김치처럼 바닥까지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잘 익은 묵은지처럼 분노와 원망도 105호의 감정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용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도지사 #선거 #제명 #선거법위반 #대리비 #정치인 #CCTV #현금살포 #사랑오리 #대리운전 #김관영 #지사

화, 금 연재
이전 07화7. 편의점 맥주 4캔 세트는 고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