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편의점 맥주 4캔 세트는 고수레

분실물로 모텔 경매가 열린다.

by 백오호

물림상은 퇴선간에서 나인들에게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조선시대 임금님이 수라상을 물리고 난 물림상에 식은 음식은 다시 데우고 부족한 것은 다시 채워 상궁과 일반 나인들의 소중한 식사가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투숙객들이 먹다 남긴 음식은 장기투숙객들의 훌륭한 식사가 된다.


주말이 지난 다음 날에는 청소할 것이 많아 태국 사람들이 청소하는 동안 장기투숙객들이 쓰레기를 치워주며 청소지원을 한다. 청소하다 보면 생각보다 분실물이 많이 발견된다.


“어! 이건 전자담배인데? 요즘 정수리에서 담배 냄새가 많이 나서 전자담배로 바꾸려고 했는데 잘됐네.”


순식간에 누군가의 손이 휙 지나간다. 그리곤 방금 손에 있던 전자담배는 사라진다.


“아이참. 누가 이걸 찾으러 온다고. 참 너네는 정이 없어. 이런 건 남이 썼다 내가 썼다 그러면서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여기 한국에서 살라면 좀 배워야 해. 참나. 전담 한번 써볼라고 했드만.”


기리 엄마에게 교육받은 청소 직원은 모든 분실물을 무조건 카운터에 제출한다. 과거 청소할 때는 청소 후 바로 확인하러 들어가도 분실물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여기에 있는 기리 엄마가 소개한 태국인들이 청소를 전담한 이후에는 분실물을 못 찾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기리 엄마는 모텔 청소 업계에서
일종의 브랜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예, 모텔입니다. 팔찌요? 몇 호에 묵으셨나요? 어떻게 생긴 것인가요?”


“예, 보관 중입니다. 편하실 때 찾으러 오세요.”


장기투숙객들에게 습득물로 허락되는 것은 오직 먹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장기투숙객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보다 남긴 술이 없는지부터 확인을 한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다는 말이 딱 여기에 쓰인다.


“아잇 뭐 다 마시지도 않을 거면서 캔을 다 따놓고 그래.”


젯밥을 찾는 장기투숙객들의 흔한 반응이다. 항상 허탕은 아니다. 나뒹구는 맥주캔이 4의 배수가 안 될 때는 냉장고를 열면 나머지가 들어가 있다. 편의점에서 4캔 맥주 세트를 판매하면서 남는 맥주가 더 많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두 명이서 3캔이면 충분한데 3캔과 4캔 가격이 비슷하니 여유 있게 4캔 세트를 사서 모텔에 들어왔다 1캔을 남기고 퇴실하는 것이다. 남은 맥주는 모두 모텔 경매품이 된다. 가끔 먹다가 남아 냉장고 넣어둔 피자가 발견될 때에는 그날 청소지원자들의 새참이 된다.


산이나 들 같은 야외에서 먹을 것을 조금 떼어 던져주는 고수레 같은 의미를 가진다. 모텔에서 액운을 막기 위해 맥주 한 캔 정도 남겨 주면 다음 날 장기 투숙객들은 스멀스멀 올라와 맥주나 음식을 먹는다.



짝수 달에 열리는 습득물 경매장.


‘땡, 땡, 땡 집중! 오늘의 경매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모텔 지하 보일러실에서 짝수 달마다 열리는 정기 경매가 있는 날이다.


장소는 지하 보일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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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보일러실에 있는 온수 탱크



객실을 따뜻하게 하는 지하 난방 보일러가 돌아가는 층이 시간마다 달라 7,8층이 먼저 돌리고 다음 아래층을 돌린다. 겨울에는 가끔 1,2층을 생략하고 바로 상류층 난방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햇볕도 안 들고 보일러가 제일 늦게 도는 1층에서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본의 힘이다. 하루 5천 원, 즉, 한 달에 15만 원을 아낄 수 있어 춥다 하더라도 버티는 것이다. 저렴하기 때문에 그 하층에서 버티는 것이다.


한겨울 보일러는 가끔 상류층만 돌고
하층민이 사는 1,2층은 생략한다.

보일러가 돌 때면 배관이 팽창하면서 ‘탕, 탕’ 쇠를 때리는 소리가 나고 거대한 보일러가 돌기 시작할 때는 코끼리 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시끄럽고 습하고 어둡다 하여도 작은 방으로 나눠진 모텔에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지하 보일러실뿐이다. 경매 장소에 대한 선택권은 없다. 오히려 지하 보일러실의 소음은 평소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던 투숙객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이 행사는 인력을 공짜로 쓰려는 101호의 머리에서 나온 운영 전략이다. 모텔 숙박객이 많은 요일과 적은 요일이 있다 보니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전날 손님이 많았던 날의 다음 날에 장기투숙객 지원을 받아 인력을 보충한다. 대신 객실에서 나온 장기 분실물을 전리품처럼 장기투숙객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맥주가 적게 모인 달에도 이상하게 경매 전 날에는 맥주가 냉장고에 가득 차있었다. 노동의 대가를 분실물과 맥주로 퉁치는 것이다. 101호는 모텔에서 나오는 청소 인건비를 챙기면서 노동자에게는 분실물과 맥주를 제공하는 대신 청소를 시켜 장기투숙객에 대한 지배 구조를 다질 수 있었다.


장기투숙객들도 101호가 모텔 청소비를 챙기는 것을 알고 있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들에게는 남이야 어떻든 맥주를 공짜로 먹는 것만 중요했기 때문이다.


101호가 돈을 챙기는 것은 관심 없다.
버려진 몸, 맥주를 공짜로 먹는다면

귀중품의 경우 카운터에 분실물을 찾는 전화가 와 찾아가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물품들은 2주 정도 보관하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모텔 달방 사는 사람들에게 경매로 제공이 된다.


경매품은 2달 동안 모인 분실물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캔맥주이다. 편의점에서 4캔 맥주 세트가 생긴 이후에는 퇴실한 객실에서 1캔 정도 남기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한 캔, 한 캔을 한두 달 동안 모으면 꽤 많은 양이 되는데, 반 정도는 그날 경매장에서 나눠 마셔버리고, 나머지 반은 경매를 통해 과자 부스러기나 다른 안주를 사서 다 같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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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에서 가장 크고 목소리를 높여도 되는 유일한 공간 지하 보일러실


“자, 오늘은 수입 맥주 들어왔습니다. 카스만 먹던 분들 보세요. 유럽 맥주입니다. 500원부터 시작합니다.”

“1000원”


"더 없나요? 없으면 1000원 낙찰. 다음, 핸드크림 오래간만에 들어왔습니다. 록시땅 스타일입니다. 록시땅이라 생각하면 록시땅입니다. 요즘 날씨가 건조합니다. 거의 새것입니다. 바로 천 원 갑니다.”


“1500원, 나 필요해. 니들 경매 껴들지 마라 했다. 요즘 종이 박스 자주 만지니까 손이 갈라져”


“에라이. 천 원 해도 너가 받았겠는데 부족한 녀석. 너 가져라.”


일반적으로 천 원 내외에서 경매는 끝나게 된다. 내일이 없는 그들은 경매를 통해서 모인 돈을 바로 그날 안줏값으로 써버리는 게 편하다. 천원 경매에서 뭐 큰돈이 모일 가능성은 없으니 편의점에서 과자나 생라면 정도, 분식집에서 간, 허파를 포함한 순대 정도는 사 먹을 정도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서로 경계가 풀리면서 경매장에서는 서로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야. 105호 너 약사라면서? 나는 병원 했는데 우리 같은 계열이네. 필요한 거 있으면 서로 돕고 살자고. 남자에게 좋은 거 있음 줘봐. 그거 있잖아. 마름모 모양의 파란 약.”


105호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모텔에 의료계 출신의 같은 처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관심이 갔다.


“아이고 105호는 사람 상대하는 약사고 307호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 구두 병원이었지? 어디 끈이 풀리셔서 오셨나요? 그랬겠지. 노상에서 구두 수선하다 거리 정비한다, 디자인한다면서 쫓겨난 거지 뭐.”


'자발없는 귀신은 물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처럼 본전도 못 찾은 307호는 맥주를 크게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어간다.


“아이씨.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나 구두방 했어. 구두 손질은 내가 최고지. 사업장을 못 구해서 이리된 거지. 구두, 우산, 가방 뭐 이런 거 고칠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아주 새것처럼 해줄 테니.”


솔직히 서로의 과거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두 과거와 끈 떨어진 사람들이니까. 단지 비슷한 상황에 공감할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한 끈을 걸어보려는 무의미한 대화가 오가는 것뿐이었다.


이런 어수선한 자리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여성 투숙객이 둘이나 된다. 한 명은 셋이서 뭉쳐 다니는 무리 중 한 명인데 이 무리는 선거 준비한다며 최근 자주 모텔에 묵는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혼자 서원 거리를 배회하다 조용히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사라지는데 아무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두 번 체크인해 준 105호도 아직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목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501에 들어간 여성 고객


“방 드려요? 숙박이요 대실이요?”

“...”


“숙박드릴게요. 어떤 방 드릴까요?”

“...”


"조용하고 깨끗한 방으로 드릴게요. 501호 키 여기 있습니다."

"..."


체크인할 때 카드만 내밀뿐이다. 답답했던 카운터 직원과 야간 알바 105호는 비싸서 잘 안 나가는 501호 키를 내주었다. 한두 번 501호를 주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녀는 501호가 되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온 자리겠지만 경매에는 관심도 없고 할당받은 맥주만 말없이 홀짝홀짝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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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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