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태국에서 온 기리 엄마 한국 사람 다 됐네.

태국에서 시집온 기리 엄마 참 옹골지다.

by 백오호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 듣기 평가


105호는 장기투숙객 숙박비 할인을 받기 위해 카운터에서 모텔 야간 당직 중이었다. 다음 날 대근 약사를 하러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비축하려면 억지로 꾸벅꾸벅 졸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뇌의 피로도가 90% 가까이 풀린다는 말을 신앙처럼 따르며 눈을 감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요. 여기요."

비몽사몽에 정확하지 않은 발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KakaoTalk_20260328_231407289.jpg 야간당직 카운터 내부


“아저시, 비겁해써요. 다 혼나요?”


밤늦게 당직 서는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혼나는 느낌이다. 처음 보는 여자가 카운터로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105호에게 비겁하다면서 혼난다고 말한다. 잠깐 졸다 깨서 잘못 들었을 수 있다. 상황을 다시 파악해 보려고 다시 물어본다.


"저, 여기 모텔인데 필요한 거 있으세요?"


새로 부임한 사장님인가?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혼낸다니. 아닐 것이다. 최근 모텔 경기가 안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모텔 사장이 바뀔 정도는 아닌데 누구인지 판단이 안 선다.


"아니 아니, 정소 끄엉나나요?"


여자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또박또박 이야기하지만 알아먹기는 힘들다.

듣기 평가 실패


두 번의 듣기 평가에서 그녀의 미안한 표정과 부정확한 발음을 통해 적어도 그녀가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장님은 아닌 것도 알 수 있었다. 긴장이 확 풀리면서 105호는 조금 거만한 자세가 되려고 한다. 결국 여성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글자를 써서 보여준다.


[ 아저씨, 픽업 왔어요. 다 끝났나요? 청소 끝났나요? ]

아저시, 비겁 해써요. 다 끄엉나나요? 정소 끄엉나나요?


세종대왕께서 소리를 다 표기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글로 조금이나마 표현이 가능하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전날 사용한 객실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청소가 끝나는데 금요일이나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이브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대실이 많아 저녁에 청소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일당으로 급하게 청소하는 사람을 투입해 객실을 청소한다면 손님을 더 받을 수 있다.

모텔에 필요한 긴급 인력을 제공하는 태국 아주머니가 바로 기리 엄마다. 그녀가 소개해 준 태국 인력들이 일을 마치면 픽업까지 해주면서 인력 풀도 관리하고 있다.

한 때, 모텔 청소를 하던 태국 기리 엄마는 이 시장의 구조를 일찍이 파악하여 이제는 청소 인력을 소개하고 픽업을 해주면서 돈을 벌고 있다.



엄마는 강하다 : 모성애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기리인지 길이인지 기니인지 알 수 없다. 장기투숙객뿐만 아니라 여기에 오는 사람까지도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기리 엄마는 7년 전 태국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다. 워낙 태국 시골에서 왔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나름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적어도 두 아이를 품 안에서 키울 때까지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기리가 아장아장 걷고 야외 활동을 서서히 시작할 무렵, 또래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노란 유치원 통학 차량을 타고 배꼽 손 인사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루 종일 한국말을 잘못하는 엄마와 같이 있어 기리는 말이 서툴고 또래보다 늦었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기리가 한국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끙끙대며 걱정을 하다 남편이 돌아오자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국말을 못 하는 엄마랑 있어
기리는 말이 또래보다 늦었다.

"기리 아빠, 다른 아이들 노란 차 타고 공부 간다. 우리 기리 공부 한다 좋겠다요."


"아 유치원, 보내야지. 국가 지원도 나오는데 보내야지. 걱정 마 얼마 안 들 거야. "


"나 우리 기리 잘 키우고 싶어.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다해."


아이가 집에만 있다 유치원에 가니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둘의 행복한 삶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다. 유치원에 대한 국가 지원이 나오기는 하나 그것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동화책, 교구, 옷, 가방, 신발 모든 것이 갖춰져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안에 거울이 생긴 것과 같았다.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보게 되면서 결핍을 하나씩 찾게 된다. 일반적으로 결핍이 마음을 파괴하는 것과 달리 기리 엄마는 이 결핍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보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안에 거울이 생겼다.
거울을 자꾸 보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인다.

청소 인력 관리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든 기리 엄마.


‘아이의 기세는 부모의 재력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 부족하지 않게 키울 거야. 다 해줄 거야.’


한국 엄마의 교육열은 기리 엄마가 인력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기리 엄마는 의사소통이 중요하지 않은 모텔 청소부터 시작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보다는 일하는 장소에 도착하는 것과 정확한 업무지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만 장소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거나 변경된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일감을 얻을 수 없었다.


KakaoTalk_20260329_105007724.png 전날 사용된 객실을 청소하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


기리를 생각하며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를 때면 한 시간 일찍 출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 해, 두 해를 지나다 보니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당한 일에는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텔 청소업계에서 기리 엄마는 성실하고 일 마무리가 깔끔하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평소와 같이 기리 엄마는 모텔 정리를 하고 있었다. 거의 마무리할 즈음, 자주 일하던 모텔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리 엄마. 일 잘하는 태국 사람으로 내일 3명 도와줄 수 있나?”


“나 내일 애들 봐야 해서 다른 사람 3명 보낼게요.”


“아... 말 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대신 기리 엄마가 전화로 통역 좀 해주고.”


“예, 나는 데려다주고 통역하고 집에서 애 보다가 다시 데리러 갈게요.”


이 일을 계기로 기리 엄마는 직업을 업그레이드하게 된다. 모텔 사장과 투입된 직원 사이 서로에게 불편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 수수료를 받는 소개업으로 전향한 것이다.

새로 한국에 일하러 온 태국 사람들에게 안전한 일자리를 소개하고 픽업과 통역을 제공해 주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먼 타국 땅에서 새로온 태국 사람들은 수수료를 내더라도 안전한 일자리를 얻는데 기리 엄마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모텔이나 식당 사장님들도 기리 엄마를 원했다. 기리 엄마처럼 성실한 인력을 제공해 주고 업무상 양쪽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조율해 주기 때문에 주변 사장님들도 꾸준한 일감을 제공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기리 엄마는 지속가능한 수입원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는 충분한 수입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추가 수익으로는 만족스러웠다.


모텔 청소계 태국 인력 중개인
기리 엄마

이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이 나면서 확장되었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꾸준한 수익도 생기게 된다. 성실했던 기리 엄마는 이제 모텔 청소계 태국 인력 브로커의 길을 가게 된다.


오늘도 기리 엄마는 태국 여성들의 모텔 청소를 소개해주고 픽업하러 왔는데 평소처럼 카운터 직원이 있었다면 그녀를 보고 바로 청소일을 하는 태국 여성을 불러줬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도 모르고 얼굴을 모르는 105호가 카운터에 있었으니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된 것이었다.


청소하는 태국 여성들을 보낸 후 말로만 듣던 기리 엄마를 직접 보니 105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어린 20대에 말도 안 통하는 먼 타국 땅에 온 것도 대단하지만 앳된 얼굴에 30대 초반의 여성이 자식을 위해 돈을 벌겠다고 겁이 나는 세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105호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리 엄마를 보니 자신의 무책임함을 깨닫는다.


105호는 기리 엄마를 보고 뭔가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적어도 오늘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비웃을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고 초라한 첫 결심한다.


‘저 여인도 먼 이국땅에 와서 자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비겁하게 여기서 뭘 하는 것일까. 우리 소연이에게 아빠가 있긴 한 건가.’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그 아이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긴 하였지만, 현재 상황을 견뎌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커져갔다. 이 마음을 오늘 표현하지 않으면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그날 아내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아이만 아니었으면 내가 먼저 죽었어.
오빠만 힘든 줄 알아!

105호는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의 말 못 하는 고통을 그때는 몰랐다.



통장 잔고는 ₩ 377,512


얼마 전, 7년 동안 갚아 온 주변 빚들을 마지막으로 탈탈 털어 정리해 오늘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 37만 원 남짓. 적은 돈일 수 있지만 105호에게는 다른 의미가 있다. 빚에서 벗어나 7년 만에 처음으로 갚을 돈이 아닌 내 돈 37만 원이 생긴 것이다. 빚이 정리되면서 삶의 희망은 가족에 대한 욕심으로 바뀌는 것일까? 희망이 생기니 가족이 더 그립다.


삶에 대한 희망이
이제 가족에 대한 욕심과 그리움으로 번진다.

37만 원을 보내면 가진 돈이 얼마인지 들킬 것 같다. 일용직 약사로 돈에 치어 사는 무능함을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20만 원을 보낸다면 105호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너무 적은 것 같았다. 통장에 돈이 남은 것을 보게 된다면 더 부끄러울 것 같았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고민 끝에 105호는 아내에게 결국 30만 원을 송금하기로 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후부터 찌질해진 105호는 다시 어느 통장으로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느 계좌로 보내냐고 물어볼까? 아냐 그냥 보낼까. 그냥 송금하면 모를 수 있으니 그래도 보낸 걸 확인할 수 있도록 카톡으로 보낼까? 뜬금없이 송금하면 이상하려나.’


송금 하나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건 아직 아내와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다시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어서일까.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내의 거절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뭐든 상관이 없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한 것으로 만족하리라. 7년 동안 얼굴도 못 본 딸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아내에게 전화하지 못한 건
거절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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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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