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끼기 위해 도려내야 하는 것들

음침하고 습한 1층을 원하는 이유는 딱 하나

by 백오호

음침하고 습한 1층을 원하는 이유는 딱 하나

고인물들은 왜 제일 하층인 1층에 사는 것일까.


웨스트 가든 모텔 숙박비는 하룻밤 4만 원이지만 ‘달방’으로 한 달 치를 끊으면 하루 3만 원꼴인 90만 원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당연하겠지. 대량 구매가 단가를 낮추는 시장의 논리는 여기에서도 통한다. 그리고 뜨내기손님들이 선호하는 로열층들과 달리 사생활이 취약하고 습한 1층을 달방으로 쓴다면 15만 원이 할인되면서 75만 원 즉, 하루 2만 5천 원으로 더 저렴하게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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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 할인에 관심이 없는 가진 자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3층 이상의 쾌적한 방을 찾는다. 하지만 숙박비 할인이 간절한 사람은 다르다. 예를 들어,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일당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매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일할 수 있는 몸 상태나 날씨가 아니므로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1층을 차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경쟁이 치열하다.


109호가 이번에 비었다. 누군가 그 방으로 이동하면 연쇄적으로 방 이동이 일어난다. 더 좋은 조건의 방으로 이동을 할 때 자신의 방을 친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관례가 있어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굴해진다.

방 이동이 있을 때면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인사이동이 있을 때처럼 승진 예정자 주변에 모이게 된다.


“109호가 이번에 비어가 내가 가려고. 뭐 숙박비를 아끼려카는 건 아니고. 쓸데없이 돈 나가는 게 싫다 아이가. 지금 이 방이 나름 크고 좋아. 2층 중에는 햇볕도 잘 들어오고 환기도 잘 되는 편이지. 뭐 관심 있으면 말하고.”


109호로 이동하면서 현재 묵고 있는 207호를 넘겨주는 대신 일종의 뇌물을 받고 싶어 거드름을 피우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떠본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이동 축하 선물로 저는 사재 드라이어기를 드릴까 하는데. 모텔 드라이기는 모발이 상할 뿐만 아니라 스타일이 안 사니까. 그래도 1층 가셨는데 사제 드라이기 정도는 쓰셔야죠.”


“그치. 1층 정도 쓸라카믄 사제 드라이기는 써야 안켔나.”


이미 1층으로 이동한 것처럼 사제 드라이기를 써야 품위가 유지될 것 같았다. 마치 군인 이외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군복의 다리미 칼주름과 비슷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군복의 다리미 칼주름 같은 1층의 삶

“그것도 좋은디. 비빔고추장 어띠여? 입맛 없을 때 햇반에다 비빔고추장 발라먹으믄 좋은디. 제가 단지 하나 줄 수 있는디. 순창 껄로”


인생 막장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연고지를 떠나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여기저기 어디든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보니 웨스트 가든 모텔에서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전국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말의 특유한 억양이 섞인 사투리도 공존한다.


“응 니나 마니 쳐무라. 내는 앞 식당 가가 밥 사문다.”


그래도 1층에 사는데 남들에게 폼이 안 나는 것에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1층에 사는 사람들의 품위를 다른 층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싶었다.


‘드라이기보다 더 알릴 것이 없을까. 건조대도 좋을 것 같은데... 1층은 바로 문 열고 나오면 밖이고 이불을 햇볕에 소독하고 고슬고슬해진 이불에 잠을 자는 건 1층 만의 특권이지. 이불 말리면서 1층 사는 거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랑할 수도 있고. 내 방 물려받을 사람에게 이걸 하나 사달라고 할까.’


“행님이요! 우리가 남이가. 동향 아이가. 베트남 노래방 함 쏘게. 가입시다. 이번에 뉴페이스로 새 단장했다 아입니까. 목구멍에 때좀 치아뿝시다.”


“뉴페이스가 왔다고? 그라지, 그라지. 가봐야지.”


예나 지금이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늙었거나 젊거나 상관없이 청탁이 성공하는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는 다 허사였고 207호는 109호로 옮겼고 그 자리는 다시 303호가 물려받았다. 109호와 207호 그리고 303호의 라인은 이렇게 이어졌다.



5명의 주인을 지낸 최고 권력자 101호.


1층에 도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더 도려낼 것이 있다. 쾌적한 환경과 바꾼 숙박비 할인에 추가적 혜택이 더 있다. 안락한 수면의 일부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카운터 직원이 퇴근한 후 밤 중에 들어온 손님을 받는데 체크인을 해주는 당직 알바를 하면 추가 할인을 해주는 것이다.


과거 신림동 고시원의 ‘장수생’들이 방값을 아끼기 위해 고시원 관리하는 총무를 지원하였다. 고시원 총무는 자신의 시간을 도려내 청소하고 시설관리하면서 고시원비를 할인받았다.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모텔에도 있다.


쾌적한 공기를 1층 할인과 바꿨다.
아직 더 도려낼 것이 있다.
안락한 수면

카운터 직원이 퇴근한 후 한밤중 숙박을 찾는 손님의 체크인을 도와주거나 수건이나 물을 갖다 주는 잔심부름을 하면 25만 원이 추가 할인된다. 월 50만 원에 1층에서 살 수 있다. 하루 만 6천7백 원 꼴이다. 웨스트 가든 모텔에서 105호가 그 역할을 하며 숙박비를 할인받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101호에 비하면 허드렛일에 불과하다.


교도소에서도 모든 걸 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1층의 정점에 101호가 있었다. 카운터와 가장 가깝고 넓은 방을 차지한 그는 이 건물의 역사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사장조차 결정하기 힘든 중대사를 처리하는 그의 권위는 109호에서 시작해 101호까지 기어 올라온 수년간의 세월에서 나왔다.


기울어가는 서원시에서 모텔업 운영은 쉽지가 않다. 투숙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이자, 인건비, 세탁비, 전기세, 가스비 등 유지비는 올라가고. 결국 여러 번 경매에 나오면서 모텔 주인이 5번이나 바뀌었다. 오히려 주인이 바뀔수록 모텔 운영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101호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주인보다 101호의 입김이 운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01호는 숙박비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텔 운영비에서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었다.

방을 옮기려면 모텔 사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요즘 사장의 발길이 뜸하다. 상근 하는 101호에게 더 많은 권한이 집중되었다. 특히 장기투숙객들에게 얼마를 할인할지, 어떤 방을 배정할지 결정할 뿐만 아니라 달방 세가 밀렸을 때 내보낼지, 지불할 때까지 일일 숙박비를 받을지, 아니면 조금 여유를 주고 기다려 줄지는 101호가 결정했다.

그래서 장기투숙객들은 모텔 사장보다 101호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조심하였고 가끔 그를 주인으로 오인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그가 과거 모텔 첫 번째 주인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나름 고인물인 105호는 101호에 비교하면 이제 막 모텔 관리부의 말단에 불과하다. 카운터 직원 퇴근 후 밤에 카운터를 대신 봐주는 일 정도. 105호는 좁고 습한 1층 복도에서 방 번호 하나를 줄여가기 위해 과거 자신이 누구였는지 상관없이 모텔의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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