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이제 그들일 뿐, 나 홀로 가는 것이 홀가분하다.
105호는 모텔 다른 고인물과 달리 유독 이질적인 존재였다. 뙤약볕에 그을렸거나 술독에 빠져 안색이 거무죽죽한 다른 투숙객들과 달리, 그의 얼굴은 어색할 정도로 희고 깨끗했다. 막노동꾼들의 훈장 같은 검버섯이나 기미 하나 없는 그 매끈한 얼굴은 매일 아침 정성 들여 마친 면도 덕분에 더욱 도드라졌다. 가끔 대화를 섞어보면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이 바닥의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욕설이 섞인 비속어 대신, 사투리가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표준어에 가까운 차분한 말투에는 상대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기묘한 권위가 있었다.
그는 웨스트 가든 모텔의 세월을 함께한 ‘고인물’ 중 하나였으나, 누구도 그의 과거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텔 주인이나 다른 투숙객들이 비상약을 찾을 때마다 그에게 손을 벌리는 것을 보고, 그저 약국이나 제약회사 정도에서 일했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가 한때 잘 나가던 약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 사람들은 타인의 과거를 캐묻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의 현재를 아는 것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타인의 사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에 엄살을 부리지만,
진짜 죽을 것 같은 고통에는 오히려 숨는다. 고양이처럼
사람은 감당할 만한 고통 앞에서는 엄살을 부리지만, 무너질 듯한 삶의 무게 앞에서는 오히려 투명 인간이 되기를 자처한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조차 버겁고 사치일 뿐이다. 마치 병든 고양이가 제 죽음을 직감하면 옷장 깊숙한 구석이나 책장 뒤로 기어들어 가 숨을 거두길 기다리는 것처럼. 시골의 낡은 웨스트 가든 모텔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세상이 나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해 주길 바라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스며드는 침묵의 은신처 말이다. 그런 곳으로 숨어 들어온 이상 남의 과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암묵적 금기였다.
그는 한때 약국장이었다.
그는 한때 지방 도시의 번듯한 약국장이었다. 성실함이 쌓아 올린 매출은 숫자가 되어 신용을 증명했고, 은행원들은 다투어 그에게 저금리 대출로의 ‘갈아타기’를 읍소했다.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보러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기표를 뽑기도 전에 지점장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고, 약국장님. 어떤 일로 오셨어요?”
“아. 입금 좀 하려고요.”
“일단 들어오시죠.”
대기석에서 기다리는 대신 지점장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는다. 상석은 항상 약국장의 것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그 앞에 놓인다. 그리고 통장과 현금은 같이 따라 들어온 직원이 처리해서 가져다준다. 금액만 확인하면 은행 업무는 끝이 나게 된다. 특별대우라는 달콤한 독은 서서히 그를 거만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했다.
돈은 은행에 있다.
'지금의 성공은 시작일 뿐이다. 더 큰 판을 짜야한다. 돈은 어디에 있다? 은행에 있다. 대출 확 땡겨서 큰 약국 해야지.‘
그런 오만이 싹을 틔울 무렵, 거부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역에서 통증 치료로 명성이 자자하던 박 원장이 대형 병원을 신축한다는 소식이었다. 제안받은 자리는 병원 예정지 바로 앞 2층 건물이었다. 법망을 피해 가족 명의로 건물을 미리 매입해 두는, 업계의 공공연한 ‘짬짜미’가 제안의 골자였다. 12평 남짓한 낡은 상가에 보증금 5억, 월세 600만 원. 신고 안 하는 조건. 시세대로라면 건물 전체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으나, 검증된 대형 병원의 독점 약국이라는 이름표는 그 불합리한 숫자를 황금빛 미래로 세탁해 주었다.
병원 부지는 아직 삽조차 뜨지 않은 황무지였지만, 약사는 서둘러 5억을 송금해야 했다. 약국과 병원은 철저한 갑을 관계였다.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그 생태계에서 '자격 박탈'을 의미했다.
“원장님 그래도 큰돈이 들어가는 건데 담보설정이라도 하고 송금하는 것이...”
“나는 복잡하고 귀찮은 거 질색입니다. 지금 당장 계약하고 입금하겠다는 약사들이 줄을 섰는데, 못 믿겠으면 관두세요.”
박 원장의 고압적인 한마디에 약사는 자존심을 굽히고 연신 허리를 숙여야 했다.
“아닙니다, 원장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워낙 큰 금액이다 보니 주변에서 걱정 섞인 소리를 해서 잠시 흔들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약사님, 이 좋은 기회를 잡으신 겁니다. 내가 이 지역에서 이름 석 자 걸고 진료하는 사람인데, 설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원장의 여유로운 미소 뒤에 숨은 칼날을 그는 보지 못했다. 설사 보았다 하더라도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약사는 자신의 전 재산과 은행에서 끌어온 빚을 허황된 장밋빛 미래와 함께 실체 없는 부지에 쏟아부었다.
그것이 웨스트 가든 모텔의 눅눅한 침대로 이어지는 추락의 시작임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평생 구경도 못 해본 거금 5억 원이 송금과 동시에 병원 공사 현장의 콘크리트 속으로 스며들었다. 약국의 보증금까지 끌어 써야 하는 병원 공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자금난으로 공사 기간은 속절없이 늘어졌고, 약사는 개국도 못 한 채 매달 생살을 깎아 먹는 이자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6개월 뒤, 건물이 제법 준종합병원의 위용을 갖추자 약사의 가슴은 다시 장밋빛 기대로 부풀었다.
‘대형 병원 앞의 독점 약국이라니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구나.’
그때, 박 원장에게 전화가 온다. 은밀한 제안이 다시 날아들었다.
“약사님, 건물 보셨지요? 내가 뭐라 했습니까. 멋질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여기에 검진센터까지 들어오면 약국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당연하죠, 원장님. 처방전 규모가 달라질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센터 장비 도입에 3억만 더 보태시죠. 병원이 빨리 궤도에 올라야 서로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처방전이 많이 나와서 약사님 빨리 돈 벌게 해 드려야죠. 나는 약사님 같은 사업적 마인드를 가진 분과 일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대화는 일방적으로 끌려갔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5억이라는 거대한 인질이 잡힌 상태였다. 병원이 살아야 내 돈도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약사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혀 마지막 남은 3억을 사막의 모래바닥에 쏟아부었다.
드디어 병원이 문을 열던 날, 약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간판을 확인하는 순간, 폐부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질식감을 느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백세건강 요양병원
그것은 통증 수술 병원이 아닌, 입원 중심의 요양병원이었다. 외래 처방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요양병원 앞 약국은 말라죽기 딱 좋은 자리이다. 약국은 병원에서 나오는 처방전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기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의 수와는 상관이 없다. 병원이 잘되더라도 약국은 말라죽는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으나 원장의 대답은 서늘했다.
“요양병원이 나라 지원도 많고 안정적이라 바꿨습니다. 외래 처방도 곧 늘어날 테니 엄살 피우지 마세요. 이 약사님 사업 마인드, 지금은 투자일 뿐입니다.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쫄리세요?”
쫄리냐는 말에 오히려 쫄려도 쫄리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퉁명스러운 통화 뒤에 찾아온 현실은 잔혹했다. 하루 처방전 12건, 10건, 15건…….
직원의 인건비는커녕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숫자들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파국은 약국이 아닌 병원에서 먼저 터졌다. 무리한 채무로 세운 성은 모래성보다 허약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설립한 병원은 늦어진 공사로 불어난 사채에 대한 이자에 자금난을 겪었고 대표 원장은 결국 사기로 구속되었고, 병원장 없는 병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었고 결국 병원 운영은 중단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병원은 작은 배와 같았다. 전복되어 바닷속으로 처박듯 병원은 파산했고, 가족 명의였던 약국 건물마저 압류의 파도에 휩쓸렸다. 검진센터 장비에 들어간 3억은 이미 날아갔고 애초에 깡통이나 다름없던 시골 건물에서 5억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가망은 전무했다.
평생을 일구어온 재산과 안식처였던 집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등 뒤를 무겁게 짓누르는 빚의 잔해뿐이었다. 텅 빈 약국 창가에 앉아 약사는 스스로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의 성실함이 욕심의 먹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좋은 약국을 해보겠다는 그 작은 허영이 나를 이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일까.’
식어버린 라면 같은 존재가 되다.
거처를 잃은 약사가 마지막으로 몸을 의탁한 곳은 노부모의 낡은 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하던 책상이 그대로 놓인 좁은 방, 그 익숙한 사방의 벽이 이제는 창살처럼 그를 가두었다. 낯선 환경에 겁을 먹은 어린 딸아이는 밤새 칭얼거렸고, 아이를 달래는 아내의 낮은 울음소리엔 수습하지 못한 슬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었다. 약사는 벽을 향해 돌아누워 자는 척을 했다. 비겁하다는 자책보다, 이 상황을 마주할 용기가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사한 몸뚱이는 시간이 지나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지독한 숙취와 함께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떴다. 방 안에는 적막만이 고여 있었다. 아내와 딸의 온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속을 달래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 하나를 뜯었다.
“달걀이 어디 있더라. 달걀은 항상 안 떨어지고 있었는데.”
달걀이라도 있을까 싶어 뒤져본 냉장고 안에는 여러 번 열고 닫아 말라비틀어지고 어중간하게 익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김치뿐이었다. 이미 부모님의 노후자금까지 끌어 썼던 것이 기억난다.
덜 익은 면발에 김치를 감싸 입에 넣었지만, 평소 입맛을 돋우던 그 맛이 아니었다. 자신의 추락이 아직 몸에 익숙하지 않은지 맛 타령을 하고 있었다. 씹히지 않는 면을 입에 문 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온 것은 아내의 목소리가 아닌, 장인의 실망과 분노가 섞인 호통이었다.
“이러자고 내 귀한 딸자식 자네에게 준 거 아니야. 당장 갈라서게!”
그 불호령에 당황하는 것은 잠시, 약사는 역설적이게도 안도했다. 스스로도 답을 낼 수 없는 이 진흙탕 같은 삶에서, 남겨진 이들이라도 다른 그늘로 옮겨갈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홀가분하게 생을 정리할 명분이 생겼다는 비극적인 위안이었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그들의 잘못은 없다. 내 잘못이니 나 혼자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홀가분하다.
가는 길에 나 혼자라 홀가분하다.
그는 역한 냄새가 나는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밀어 넣고 젓가락으로 라면 국물을 휘저었다. 하지만 이미 불어버린 면발은 좀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냄비 속의 라면은 주검처럼 온기를 잃고 비릿한 밀가루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불어 터진 면발 위로 뜨거운 눈물과 콧물이 뚝뚝 떨어져 섞였다.
‘도대체 왜? 남에게 피해 준 적이 없는데 왜 세상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그는 불어 식어버린 라면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와 같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쓸데없고 돌이킬 수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