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상이 악화되면 낙오된 개체가 증가한다.

201호 부부의 안타까운 선택

by 백오호

마지막 바람과 달리 저주받는 죽음


“201호가 퇴실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습니다.”


카운터 직원의 목소리엔 이미 불길한 예감으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전화를 받은 모텔 관리자는 눅진한 잠을 떨치지 못한 채 밭은기침을 뱉었다.


“으... 객실 전화는... 계속해봤고?”


24시간 돌아가는 모텔을 관리하는 것은 생활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낮이든 밤이든 모텔 관리자는 가수면 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두 시간 전부터요. 벨 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오는데 받지 않아요.”

“초인종도 눌러본 거지?”


“예...”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물을 삼키는 소리와 길게 숨을 고르는 소리뿐 정적이 이어졌다.


“알았어, 금방 나가지.”


카운터 바로 앞 101호의 문이 열렸다. 구김이 잔뜩 간 등산복 바지에 눌러쓴 모자. 그 복장으로 잠이 든 것인지 잠이 들었는데 그 복장이었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살았다거나 실소유주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 누구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냥 101호에 머문다는 이유로 그를 101호라고 부른다. 그는 모텔의 일부이고 모텔도 그의 일부다.

그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2층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 없는 문 앞에서 그는 마스터키를 꽂았다. 문틈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무거운 정적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손님이 키를 꽂아둔 채 퇴실했거나, 아니면 육신만 있거나. 두 경우 모두 201호 안에는 산 사람은 없다.


“후우…….”


101호가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침대 위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이미 안 좋은 예감이 확신으로 변했지만, 그는 몇 가지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카운터 직원의 공포를 뒤로하고, 101호는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목에 손을 갖다 댔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절대로 적응되지 않는 감각. 시신의 온도는 실내온도보다 낮을 리 없건만, 손끝에 닿는 감촉은 마치 얼음을 쥔 듯 찌릿하고 차가웠다. 시신에 남은 영혼의 서러움이 신경을 타고 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시신의 어깨를 흔들어 보았으나, 몸은 이미 딱딱한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무미건조하게 다이얼을 눌렀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웨스트 가든 모텔인데요, 객실 손님이 움직이지 않네요. 몸이 굳은 걸 보니 이미 간 것 같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 대신 귀찮음이 묻어났다. 침대 옆 협탁 위에는 안 봐도 내용을 뻔히 알 수 있는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유서 몇 장과 뒷정리를 부탁한다는 명목의 장례비 푼돈이 들어있을 터였다.


“이기적인 인간들. 남의 장삿집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지옥 불에 떨어질지어다. 쳇.”


불쌍한 자신을 잘 수습해 줄 거라 착각한 시체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분노를 뿜어낸다. 어쩜 이래야만 주검이 있는 객실 문을 열 때 오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고, 왜 그러세요, 얼른 나오세요!”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직원이 숨죽인 비명을 지르며 101호를 불렀다. 당장이라도 문을 닫고 도망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101호는 방을 나서며 툭 내뱉었다.


“곧 경찰이랑 구급차 올 거야. 안내 잘하고, 오늘 2층은 손님 받지 마. 2층 엘리베이터 입구는 탁자로 막아버려. 난 좀 더 잘 테니까 전화하지 말고.”


태풍의 눈에서처럼 잠시 고요해진 체 무관심을 유지하며 그는 다시 101호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이 스산한 복도에 목소리를 높였다.


“또야? 여기가 무슨 장례 맛집이야? 이 구석진 시골까지 와서 일을 만드네 만들어. 참 나, 집에서 죽으면 늦게 발견될까 봐 무서워서 남의 영업장을 장례식장으로 만드나? 이게 무슨 민폐야, 민폐. 썩더라도 지 집에서 죽어야지.”


반쯤 정신이 나간 직원의 공포를 쫓아주려 일부러 내지르는 고함이었다. 그제야 건물 전체를 짓누르던 검은 정적이 조금씩 걷히는 듯했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서원시에서 멈추는 시계들이 늘었다. 반복되는 사건은 처리를 신속하게 만들었다. 죽은 자들은 수개월을 고민하고 수만 번을 주저하며 이 모텔을 선택했을 테지만, 그들의 흔적이 지워지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영혼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아마 소름 끼치는 허무를 느꼈으리라. 이승에 남은 자들이 그들의 사후 세계에 저주를 퍼붓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사고 난 고속도로가 치워지자마자 다른 차들이 그 위를 질주하듯, 모텔 방 또한 소독과 환기를 마치면 다시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다만 비수기라는 핑계로 201호는 오늘 하루 손님을 받지 않는다. 얼굴 하나만 내놓을 수 있는 작은 창문을 열어두었다. 혹시 모를 병균을 씻어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구천을 떠돌 원한 맺힌 영혼에게 나갈 길을 터주는 자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김없이 다시 밤이 되었다. 기울어진 달 아래 모든 빛이 사라지고 모텔에 빈방이 있음을 알리는 노란색 간판만 켜있다. 야간이 되면 카운터 직원은 퇴근하고 장기투숙객의 근무가 시작된다. 105호가 오늘 당직이다. 201호에서의 두 부부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자정 무렵 모텔의 적막함은 105호에게 이명을 일으킬 정도로 두터웠다. 적막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엇에 이끌리듯, 105호는 신중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201호 앞에 섰다. 열려있는 문틈으로 비어있는 침대가 보인다. 그 부부가 마지막으로 어떤 대화를 했을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7년 전 서해안에서 일몰을 보며 삶을 정리하려고 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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