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Garden Motel
지구 최북단을 가로지르는 타이미르강(Taymyra River)은 비랑가 산맥(Byrranga Mountains)의 험준한 고지대에서 시작하여, 타이미르 호수에서 잠깐 머물다 북극해로 흘러 들어간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 해당하는 타이미르 호수는 일 년 대부분이 얼었다가 7월에서 8월, 단 두 달 정도만 녹는다.
강물이 잠깐 쉬었다 가는 타이미르 호수는 긴 시간 눌려있다 봄을 의미하는 스프링처럼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생명력을 폭발시킨다. 지지 않는 태양, 백야는 휴식도 잊은 채 대지를 달구며 죽어있던 검은 툰드라는 순식간에 부드러운 녹색 벨벳을 덮어 새 생명을 받을 준비를 한다.
밤낮없이 자라는 풀숲은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고, 대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곤충들은 어린 새들의 날개 근육을 키울 고단백 식단이 된다. 타이미르 호수는 철새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산란지이다. 이곳의 새끼들은 어미가 먹여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알에서 깨어난 지 단 하루, 젖은 솜털을 말리자마자 스스로 둥지를 박차고 나간다. 툰드라에서 둥지에 오래 남는 것은 북극여우와 같은 천적에 노출되기 쉽게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어린 새들은 둥지 밖에서 풀과 곤충을 흡입하며 위대한 비행을 준비한다.
세상에 나온 지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툰드라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철새들은 대이동을 준비해야 한다. 착륙과 균형잡기 뿐만 아니라 V자 대형으로 비행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
때가 되었다.
경험이 많은 철새들이 곧 출발할 것임을 알린다. 부화한 지 2달밖에 안 된 어린 새들은 잔인하고 혹독한 대이동에 줄을 서게 된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간단한 교육만 받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학도병들과 같다. 학도병의 비장한 얼굴과 달리 그들의 희생이 가혹했던 것처럼 어린 새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상상도 못 한 채 대열 속에서 공포에 얼었지만 강한 척 꽥, 꽥 소리를 내어본다.
시베리아의 북풍을 등지고 수천 킬로미터, 거대한 날갯짓은 약속된 남쪽을 향한다. 그러나 대륙을 건너는 철새의 여정은 아름다운 비행보다는 처절한 행군에 가깝다. 상승기류를 타며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야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첫 비행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몸속에 저장해 둔 지방이라는 연료가 바닥이 나면 놈들은 자신의 날개 근육을 태워 에너지를 짜낸다. 지친 어린 철새들의 날갯짓은 결국 점점 둔해진다. V자 대열에서 벗어나면서 공기의 저항을 홀로 이겨내야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결국, 대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뒤따르던 독수리의 발톱은 몸 깊숙이 박히게 된다. 그 벼랑 끝 행진에서 철새 무리의 절반은 허공에서 사라진다.
첫 비행에 나선 어린 철새들에게 하늘은 가혹한 시험대다. 60%에서 85%가 다시는 무리에 복귀하지 못한다. 전체로 봐도 생존해 돌아오는 철새는 반이 되질 못 한다. 중간 기착지의 낯선 갯벌과 숲은 지쳐버린 철새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다. 힘을 잃고 무리에서 떨어진 새들에게 중간 기착지에 적응하는 것은 사치다.
이 시기만 기다린 들개 무리는 숨이 턱에 찬 철새 주위를 유유히 맴돈다. 그것은 사냥이라기보다는 예정된 수확에 가깝다. 다시 정비한 거대한 비행대열은 낙오된 철새들을 뒤로한 채 그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창공으로 유유히 떠나간다. 낙오되고 잊힌 새는 두려움과 고독에 짓눌려 마지막 울음조차 삼킨 채 죽음을 기다린다. 소리를 내는 것은 그저 죽음을 조금 더 서두르는 것뿐이기에.
‘끄-억 꺽..꺽’
낙오된 철새 한 마리가 두려움을 못 이기고 자신도 데려가라고 말하듯 소리를 내어본다.
‘푸더덕’
들개다. 반도 채우지 못한 낙오된 철새의 여정은 끝이 난다.
작은 도시인 서원시는 조금 벗어나면 사방이 논밭이고 서쪽으로 좀 더 가면 바다와 접해 있어 한때 서원시의 삶은 풍족했다. 많은 돈을 벌어서라기보다는 지출이 적기 때문이다. 집값이 비싸지 않으니 대출로 묶인 금액이 적거나 월세를 낸다 한들 그 부담이 적다. 쌀은 친인척에게 얻을 수 있고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은 신선한데 저렴하기까지 하다. 서원시 사람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만큼은 풍요롭게 즐길 수 있었다. 가끔 지방 유지들은 소비할 곳을 찾지 못해 서울까지 원정을 가 명품이나 수입차에 잉여자본을 쏟아붓기도 하였다.
특히 수확이 끝나 목돈이 들어올 때면 서원의 밤거리는 화산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낮에는 한산한 먹자골목에 불과하였던 그곳은 해가 지기 무섭게 화려한 LED 조명을 뿜어내며 기지개를 켰다. 도시에서 뜯어 온 고가의 앰프에서 터져 나오는 비트는 나이트클럽의 두꺼운 벽을 뚫고 나와 길 가던 이들의 심장을 간지럽게 두드렸고, 거리에 흩뿌려진 전단지는 마치 도톰한 카펫처럼 깔려 행인들의 신발에 흙 한 점 묻지 않게 했다. 그동안 퇴비 섞인 흙과 질퍽이는 뻘에 혹사당한 육체를 위해 기꺼이 두툼한 돈뭉치를 풀었다. 욕망과 활기가 뒤섞여 끓어오르던, 그야말로 불야성의 시대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그 화려한 제국은 한 장의 법령에 의해 한 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이 서원의 숨통을 겨눴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강력한 단속이 몰아쳤으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칼날이 서원 거리를 밀어 넣은 곳은 정화가 아닌 폐허였다. 음식점과 술집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거리는 활기를 잃었다. 모여있어야 활활 탈 수 있었던 불길은 흩어지면서 쉽게 소멸하여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지는 더욱 깊고 세밀해졌다. 텔레그램과 만남 애플리케이션 속에서 자발적인 ‘알바’라는 이름으로, 혹은 일상의 평범함 뒤로 숨어들어 단속의 망을 비웃듯 불법성매매는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라는 명분은 퇴색되고, 오직 처벌이라는 건조한 법규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제 서원 거리는 진화된 화재현장처럼 대낮에도 축축하고 스산한 냉기가 감돈다. 밤이 되면 풍경은 더욱 처연해진다. 칠흑 같은 바다 위 외딴섬의 등대처럼, 듬성듬성 불을 밝힌 상가들만이 이곳이 아직 살아있음을 간신히 알려준다. 한때 패기 넘치던 젊은 사장들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채 굽은 등으로 자리를 지킨다. 생기를 잃어버린 그들의 얼굴 위로 서원의 시계는 세상의 속도와는 동떨어져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흘러간다.
그래서일까.
낙오된 철새가 풀숲으로 몸을 피해 숨는 것처럼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된 자들은 본능적으로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시공간을 찾는다. 시간이 느리게 가면 혹시라도 과거를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늦출 수 있더라도 후진을 못하는 것과 같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해도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 깜깜한 자신의 현실에서 표류하다 희미한 등대만을 보고 마지막 휴식을 위해 녹슬어버린 시곗바늘이 멈춘 서원으로 그들은 흘러들어오게 된다.
도시와 달리 지방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넓은 평야를 두고 있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멀리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대신 걸어도 걸어도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서원 거리의 불빛을 본 후 한 시간을 걸은 듯하지만 아직도 멀어 보인다. 멀리 낡아버린 등대처럼 서원의 위치를 알리는 불빛이 가물거린다.
‘West Garden Motel’
8층 건물의 모텔이 등대처럼 서원 거리의 위치를 알려준다. 아니 7층 건물일 것이다. 죽음을 의미하는 4층은 통째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8층이라지만 실제 7층 건물이다. 4층은 생과 사의 갈림길 같은 느낌을 준다. 4층 위층은 일반 투숙객이 머무는 객실이고 그 아래 볕이 들지 않아 지하 같은 1,2,3층은 주로 장기투숙객이 머무는 객실들이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가까이 갈수록 실체가 보인다. 조명은 반 이상 그 기능을 잃었고 간판 일부는 깜빡이며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건물의 높이는 상대적이다. 주변 단층 짜리 건물 사이 우뚝 선 모텔은 출입구 앞에 도착하니 하늘 끝까지 연결된 사다리처럼 보였다.
‘웨스트 가든’
어떤 의미로 모텔 이름을 지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서해안과 가까운 지방의 모텔 이름으로 어울리는 영어를 단순하게 조합해서 만들었겠지. 하지만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사후 세계인 서방정토, 흔히 말하는 극락이나 저승을 의미한다. 서쪽 정원은 서방정토를 가기 전에 들리는 정원쯤 될 것이다. 서방정토로 들어가기 전 7개의 보석으로 꾸며진 칠보(七寶) 연못에서 8개의 공덕을 갖춘 깨끗한 물인 팔공덕수(八功德水)로 과거의 잘못과 괴로운 기억을 씻어 극락으로 들어가는 것을 준비하는 곳이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원한 맺혀야만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니다. 부부나 자식의 연이 너무 애틋해 이를 끊지 못해 주변을 떠돌기도 한다. 이 모든 기억과 인연을 정리하고 지워야만 저승이든 서방정토든 갈 수 있는데 망각의 강이나 칠보 연못은 꼭 필요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죽지는 않았지만 세상과의 원한과 관계를 모두 잊게 해 줄 거라는 마지막 희망으로 웨스트 가든이라는 이름을 찾아오는 것일까. 오늘도 웨스트 가든에 가벼운 짐만 가지고 두 투숙객이 들어온다.
모텔의 희미한 불빛만 보고 질퍽이는 길을 한참 걸어온 듯하다. 바지 밑단에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꾸미지도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은 것을 보니 부부인 듯하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없는 무미건조한 표정과 지친 얼굴은 여행객도 아님을 알려준다. 뭐든 여기까지. 웨스트 가든 모텔에서 더 이상의 관심은 허락되지 않는다.
"어서 오세요. 웨스트 가든 모텔입니다."
카운터에서 201호를 받은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없이 객실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