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을 버리고 통닭집 사장님의 길을 가다.
가장 맛있는 라면은 어떤 것일까.
신라면? 진라면? 안성탕면? 요즘 떠오르는 불닭볶음면?
정답은 브랜드가 아니다. 룸살롱에서 끓여주는 라면이다.
룸살롱에서 한 병에 수십 만 원 하는 양주를 소주처럼 마실 수는 없다. 그래서 서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1차 식당에서 이미 알딸딸하게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 룸살롱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청탁이라는 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다. 아직 거래가 성사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양주 각 1병을 마시고 나올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계산도 편하다. 세상에 공짜 술은 없다.
TC포함 두당(1인당) 백만 원이 넘는 술자리는 거래가 성사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다면 양쪽 다 부담이 된다. 접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접대받는 사람도 술자리 후 돌아오는 청구서가 부담된다.
접대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 양주병을 세기 시작하고 룸살롱 실장의 청구서를 기다린다. 접대를 받는 사람은 내일 돌아올 청탁이 들어간 청구서를 받을지 말지 계산기를 두들겨봐야 한다. 이 때, 적당한 술값이 나와야 무리한 청탁이라 결정을 내리면 자신이 받은 접대 비용을 N 분의 1을 보내서 거절하고 아니면 꿀꺽하고 청탁을 받아들여 추가로 양주를 더 시키게 된다.
꿀꺽했는데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 양아치는 정치인뿐이다. 몇 년 전, 무성시에서 큰 이슈가 된 젊은 정치인 룸살롱 접대 사건이 그것이다. 접대를 받는 것도 법적 문제가 되겠지만 접대를 받고 청탁을 받아주지 않은 것은 금기를 깨버린 것과 같다. 접대는 들어줄 수 있을 때만 받아야 하고 들어줄 수 없을 때는 돈을 돌려주는 것이 이 업계의 룰이다.
꿀꺽하고 청탁을 받지 않는 양아치는
정치인뿐이다.
시대가 많이 깨끗해지면서 청탁이 계획처럼 안 풀릴 때가 많다. 청탁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양주 한 병을 더 시키기에는 양쪽 다 시간과 돈이 아깝다. 계산서가 나올 때쯤 돈과 시간을 스탑 시키기 위해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면 룸살롱 실장들은 파장 분위기임을 눈치채고 서비스 라면이 준비된다.
“이 과장님 오늘 좋은 자리였어요. 전에 그 계좌로 150 보내면 되지요? 자, 라면 먹고 가십시다.”
거절의 뜻을 돌려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150만 원짜리 후식이다. 회사에서 나오는 기성품 스프는 반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 오징어, 숙주, 고추, 파 그리고 온갖 양념을 넣고 새로운 라면을 만든다. 개운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한 오징어, 고추, 파는 건져낸다. 그리고 라면 위에 달걀을 푼다. 떠 있는 달걀은 수란에 가깝다. 살짝 덜 익었지만, 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식도부터 위까지 양주에 긁혔던 상처를 메워준다.
이런 정도 라면을 끓일 수 있어야 룸살롱 사장이 될 수 있다. 주방 이모는 언제 퇴근할지 모르기 때문에 본인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골뱅이 소면, 짜장면, 볶음밥, 돈가스, 파스타 등 자정이 넘는 시간에도 모두 내놓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중식, 한식, 양식 식당, 심지어는 호프집 주방장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올라온 룸살롱 사장은 오래된 재료로도 신선함을 창조할 수 있는 만렙이다.
룸살롱 사장은 오래된 재료에서
신선함을 창조한다.
하지만 성매매특별법의 총구가 시범케이스로 서원시를 먼저 겨누었고 그 탄착점은 룸살롱 영빈관이 되었다. 세 번의 영업정지를 연속으로 받고 바로 나락으로 갔다. 30년의 세월 동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스무 살에 식당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호프집, 룸소주방, 노래방을 거쳐 마흔이 될 때까지 ‘저수지의 개들’처럼 살았다. 룸살롱 영빈관 사장으로 자리를 잡고서야 저수지 다리 밑 음지에도 햇볕이 들었다. 처음으로 연애할 여유가 생겼고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상대를 만났다.
난생처음 거친 얼굴에 뭘 발라보기도 했고 찌푸린 인상으로 굳어버린 얼굴에 웃음이 번지게 되었다. 룸살롱에서 일하면서 들리던 짜증나는 노래를 입으로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 그에게 때늦은 봄이 왔다.
하지만 새싹이 돋아나기에는 볕은 너무 짧았다. 30년의 세월이 나락으로 사라지는데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은 룸살롱 사장은 의외로 의연하였다.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처벌은 당연하다 받아들이고 그냥 모든 것을 떠나보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었던 그녀까지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매몰차게 떠나보냈다.
내공이라는 것은 이때 쓰는 말일까? 안으로 단단한 사람은 어떤 시련에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룸살롱 사장님은 남은 돈을 모아 바로 ‘옛날 통닭’을 오픈한다. 처음에는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지금까지 20년 넘게 가게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속담처럼 지금도 뭐 손님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단골손님도 주인이 친절해서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감성이 음식에서 느껴져 그냥 가는 것이다. 150만 원짜리 양주를 먹지 않아도 룸살롱 라면의 감성이 녹아 있기에. 물론 단가에 맞춰 재료와 육수를 간소화했지만, 그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다. 탱탱한 면발과 수년을 묵은 김치는 새벽 라면을 완성해 준다.
이제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 눈동자는 선명하지만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과거가 화려하고 좋지 않았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통닭집 사장은 옛날 통닭을 들고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서빙을 한다. 자발없는 오랜 단골이 가운데 앉아있다. 기분이 싸하다.
“야야, 니들 여기 사장님이 뉘신지 알아?”
“예? 무섭게 생겼는데 아시는 분이세요? 하하.”
“서원시 1등 룸살롱 영빈관 사장님이셨어. 아가씨가 20명은 됐을걸. 안 그래요 형님?”
통닭집 사장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어색한 분위기에 일행 중 한 명이 기계적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아... 그래요? 그런데 왜... 지금은...여기서...”
같이 온 일행은 ‘관심 없는데’. ‘왜 지금은 통닭집을 하지?’라고 비웃는 듯하다. 통닭집 사장은 음식을 서둘러 내려놓고 그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자발없는 손님은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아 그때 은경이랑 결혼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은경이는 망했어도 형님이라면 같이 살 수 있다고 막 그랬는데 형이 매몰차게 밀어냈었지 아마. 그런 여자 없었는데. 형님 후회하시쥬?”
후회는 생존에 도움이 안되는 사치일 뿐
후회나 아쉬움은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화자만 바뀌지 매번 반복되는 질문에 이제는 영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룸살롱 계속했으면 칼 맞고 죽거나 아니면 병신이 되었을 거야. 자네도 조경식이 알지? 나랑 같이 일했던 조 부장. 저번 겨울에 저기 식당 앞에서 노래방 영업권 때문에 칼부림 나서 경식이 죽었잖아. 그 바닥에 있으면 결과가 꼭 안 좋더라고. 난 가늘고 길게 살 거야. 난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좋아.
그리고 은경이는 내가 바란 대로 좋은 사람 만났어. 잘 사는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고 은경이 은경이 하지 말어. 자. 식기 전에 처먹고 반찬은 셀프여. 주방 들어와서 퍼먹어.”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실속 없던 과거 생활.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통닭집 사장은 과거에 미련도 없다. 최근 통닭집 사장은 오래전에 짝 잃은 주방 이모와 썸을 타는 중이다. 가게를 일찍 닫으면서까지 주방 이모를 차로 데려다주는 그 정성에서 눈치를 챌 수 있다. 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상처가 있어서인지 예전보다 뜨거움은 없지만 따뜻함은 있다. 감각의 자극은 무디지만, 감성의 공유가 있다.
예전보다 뜨거움은 없지만 따뜻함은 있다.
감각의 자극은 무디지만, 감성의 공유가 있다.
너무 늦어버린 그의 인생에 마지막 로맨스가 해피앤딩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일찍 닫힌 통닭집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단골은 전혀 투덜거리지 않는다.
“어허. 이 형님이 바람이 났나? 문 닫고 어디 간겨!”
투덜거리는 단골이 가끔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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