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통닭집에서 밥 먹는 백치 아다다 501호

똑똑한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바보가 된다.

by 백오호

통닭집에 와서 김치에 밥만 먹고 가는 그녀


모텔 사람들이 바깥 세계에서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각에 모텔로 복귀하면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면 하루는 쉽게 끝난다. 하지만 조금 일찍 모텔에 돌아올 때면 아무리 TV를 보고 간단한 청소를 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결국, 늦은 밤이 되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바닥이 나고 수건을 챙기네, 생수를 챙기네 하며 꾸역꾸역 카운터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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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텔에 유입된 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인내의 역치가 낮아 카운터로 나오는 빈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102호가 큰 방이라고 하더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TV가 아무리 크고 채널이 다양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이 활동적이었던 102호는 결국 카운터에 죽치면서 공범을 모집한다. 사교성이 좋은 102호에게 무료함에 지친 장기투숙객을 공범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105호의 당직이 끝나자마자 방금 모집한 2명의 공범과 함께 105호를 납치한다.


“그때 통닭 맛있던데 다른 것도 잘한가 봐. 같이 먹으러 가자.”


정치판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그의 말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아니 타이밍이 좋았나?

야간 당직을 마친 105호도 뭔가 허전하던 참이다.


“102호가 쏜대. 뭐 인사도 할 겸 오늘 술 한잔하자는데. 105호도 가지 그래.”


이미 공범 하나가 바람잡이를 할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웨스트 가든 역사상 처음 있는 일 같네. 그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무심하긴 했잖아. 인사한다니까 같이 가자고.:”


마땅히 할 일도 없는 105호는 그들의 유혹에 능동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옛날 통닭집’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닭을 튀긴 유증기를 들이쉴 때면 평범한 사람들은 불쾌하겠지만, 모텔의 밋밋한 공기만 마시던 사람들에게 유증기는 설탕 섭취가 제한된 군인들에게 종교행사의 초코파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훅 들어오는 끈적하고 달콤한 공기는 오히려 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이제 한패가 된 무리는 평소에 앉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인기가 다한 거리의 통닭집이었지만 사람이 나름 많다. 단지 한 쪽 테이블에 눈에 익은 여성이 혼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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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501호 아닌가요?”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무표정한 얼굴로 카드를 내밀던 501호였다. 아직 모텔의 부속품이 되기 전이라 아직 호기심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102호는 통닭집 사장님께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본다. 그러자 501호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모집된 정보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에 관한 내용이 술술 나온다.


“저거 재수 없어. 늦은 시각에 눈치를 안 보고 밥을 먹을 곳이 딱히 없어 여기 온대. 뭐 그 시간에 연 식당 하나 없겠어? 입맛이나 성깔이 까다로운 거지. 통닭 하나 시키는데 그건 하나도 안 먹고 김치에 밥만 먹고 가. 기본 반찬에 밥을 먹고 싶어서 오긴 했는데 뭘 시켜야 할 것 같아 닭을 시킨다나 뭐나. 그러니 통닭은 손도 안 대지. 나는 손대지도 않고 가는 게 더 자존심 상해. 아니 어찌 됐든 싫어, 싫어.”


“그럼, 오늘도 남길까요?”


“음...다음 주 생맥주 내기할까. 나는 남긴다에 걸어. 어떻게 저걸 혼자 다 먹겠어.?”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공범인 하이에나들이 말을 꺼낸다.


“어허. 이미 정보를 줬으니 남기겠지. 그러지 말고 두 조각을 기준으로 하자. 두 조각도 안 먹고 남긴다. 두 조각은 먹는다. 이렇게 베팅 걸자.”


“콜. 그럼 난 두 조각도 안 먹는다. 그리고 오늘 안주는 김치찌개 하나만 시키고 남기는 거 기다려 봅시다.”


“그래도 맛있는 냄새가 코 앞에서 나는데 저걸 안 먹는다고? 두 조각은 먹겠지. 콜.”


501호는 푹 익은 김치와 된장국에 밥만 먹고 통닭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바삭한 튀김옷을 뚫고 올라오는 육즙 가득한 통닭 냄새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501호의 젓가락이 통닭을 향했을 때 먹는다에 걸었던 하이에나의 입가에 미소가 비친다.


“흐흐. 오늘은 공짜 통닭 먹고, 다음에는 공짜 술이다. 우헤헤.”


하지만 501호는 통닭을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아래 깔리 누룽지만 조금 찢어 먹는다. 내기 결과는 뒷전이고 낙오된 철새들을 사냥하는 들개처럼 온전한 통닭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하루 대부분을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음식을 먹는 사람은 통닭보다 묵은 김치에 따뜻한 밥을 더 원할 수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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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 먹고 싶은 501호는 단지 자리를 얻기 위해 통닭을 시키고 식사를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였고 하이에나들은 501호가 남긴 통닭으로 영양 보충을 하였으니 이건 공생이라 할 수 있다. 아니 통닭집 사장님은 안주 매출이 하나 줄었고 그녀는 이득을 본 것이 없으니 기생이라고 해야 하나.

일방적으로 받아먹는 기생적인 상황을 끊기 위해 한 하이에나가 나서 본다.


“저렇게 머리를 처박고 먹으면 소화가 되겠어? 그래도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싱싱하니까 한번 말 좀 걸어볼게”


“안녕하세요... 저도 웨스트 삽니다. 몇 번 뵈었는데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냥 지나가다 인사드린 겁니다.”


평소 말이 많은 하이에나는 무반응에 지레 겁을 먹고 인사만 하고 온다. 솔직히 다들 이성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너무 오래였다. 사귀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바보냐? 뭐 그게 안 되냐? 뭐 나쁜 맘 없이 그냥 같은 곳에 머무니까 인사하자는 거지 그게 안 되냐? 나 하는 거 보고 배워”


호기롭게 다른 하이에나가 갔으나 오히려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하고 되돌아온다.


[앞집 꼴뚜기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만화가게 용팔이 그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선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501호를 위한 거래, 김치찌개와 통닭의 물물교환


102호가 팔팔 끓는 김치찌개를 작은 그릇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501호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이 집 김치찌개 안 먹어 봤죠?”

“...”


가까이 가기 전부터 예상했지만 501호는 마을 앞 장승처럼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 반응에 상관없이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묵은 김치 먹어 봤으니까! 이 집 김치찌개 맛있는 건 알 것이고! 그런데 혼자라서 못 시켜봤을 테고! 오늘 우리는 김치찌개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생맥주를 마시다 보니 김치찌개보다는 기름기 있는 통닭이 안주로 어울릴 것 같고! 그런데 양이 많아 더 시키기는 무리고!”

“...”


역시 고개를 처박고 흰 밥에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다.


“거래합시다. 김치찌개 한 그릇하고 통닭 3 조각하고 교환합시다. 한두 번 얼굴 본 사이니까 특별히 고기 더 많이 넣었고! 일단 국물 밥 위에 뿌려 비벼 먹어보세요. 먹으면 거래 성사된 거로 하고 통닭 가져갈 테니.”


102호는 그녀 앞에 그릇을 내려놓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501호의 숟가락이 잠시 멈춘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에 지쳐있는 위장을 김치와 밥은 더 이상 자극하지는 않지만 달래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별다를 것 없는 비주얼이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다. 사골 육수와 묵은 김치에서 나온 물이 어우러져 끓어갈 때 김치찌개의 점성이 높아진다. 이를 흰 밥에 올려놓으면 밥알 사이로 스며드는 시간이 느려진다. 천천히 스며드는 국물을 숟가락으로 긁듯이 비벼 입에 넣으면 뜨거운 덩어리는 입안에서 ‘호으후 호으후’ 소리를 내면서 불어 잠깐 식힌 다음 바로 삼키면 식도를 따라 내려간다. 뜨거운 한 입은 그 위치를 알려주며 위에 도착하면 메슥거렸던 속은 단숨에 개운해진다.


이를 몸이 기억한다. 그녀의 숟가락은 뇌의 제어와 상관없이 김치찌개는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몸의 기억에 따라 움직인다. 근데 이 김치찌개 낯익다.


“콜, 그럼 3조각 가져갑니다. 맛있게 드세요.”

“...”


“사장님 여기 계란 후라이 하나 해주세요. 우리 테이블에 달고.”

“...”


“계란 후라이 반숙으로 나올 겁니다. 김치찌개 국물 뜨거울 때 밥, 국물, 후라이 이 3가지 뒤적뒤적해서 드셔보세요. 별미입니다.”


501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가져온 통닭 3조각은 나눠주고 102호는 먹지 않는다. 102호는 처음부터 통닭에 관심이 없었고 단지 저주에 봉인된 것처럼 혼자 맨밥을 먹고 있는 501호를 구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그녀의 아들 케빈이 102호의 존재를 알 정도로 둘 사이는 진도가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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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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