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서 처음 사귄 친구, 83세 바비 할머니

by 웨스티버

우선 이 동네로 이사 오게 된 사연.


2019년 여름에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근처 신경정신과를 계속 다녔기에 당장 이사를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코딱지만한 혁신도시 내에서 오다가다 직장 사람들을 마주치는 건 썩 좋지 않은 기분이라, 사람들 만나는 게 신경쓰이긴 했다.

연구원에서 평가 등급도 상위권이었고 문제 하나 없었던 나의 갑작스런 사직에 사람들은 관둔 이유와 행보에 대해 궁금해했고, 다행히 믿음직스러운 우리 팀원들은 가뿐히 그들의 질문에 대해 "몰라요"로 씹어주었다.


일단 직장을 관두고 해외에 갈 일이 많아 인천에 자주 올라오다 보니, 그전엔 내려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던 전주가, 이젠 너무너무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렸다.

회사를 관두고 나니 가족들이 몇 년간 신경정신과를 다닌 이력과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동생과 올케가 회사도 관뒀는데 뭐 하러 거기 혼자 있냐며, 인천으로 올라오라 했다.

마음 깊은 동생 녀석, 내가 많이 걱정되었나 보다. 고맙다... 그러네....

부동산에 전세를 알아봐 달라고 하곤 그해 남은 달들도 여행만 다녔다.

그리곤 새해가 되자마자 세입자를 찾게 되어 1월에 나는 인천으로 올라왔다. 동생이 전에 살아 본 아파트가 살아보니 살기 좋다고 추천해주었다.

몇 달 살다 보니, 안전하고 조용한 신도시라 여기에 자리 잡고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네도 차로 5분 거리다.

전주집을 처분하고 여기에 집을 사자! 그런데 그때는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급등하고 있을 때라, 전주집을 처분해도 여기에 집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전주집 34평을 매매해도 이곳에 20평대를 사려면 또 대출을 껴야 한다. 만약 이 동네에 못 구할 경우의 대안까지도 고려해 집을 보고 다녔다.

결국 전주집을 처분하고 이 동네의 다른 아파트로 6개월 만에 이사했다. 이번엔 약간 사이드로 옮겼다. 집주변으로 공원과 산책로가 더 잘 갖춰졌고 더 조용해 내게는 여기가 딱이었다.

내가 친구들한테 늘 그런다. 우리 집은 집 빼고 다 좋다고. 집만 후졌지 살기는 너무 좋다고.

여기서 매일 아시아드 공원으로, 연희공원으로, 심곡천로로,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다닌다.


올라올 때 다니던 전주의 신경정신과에서는 한 달에 한번 내려올 수 있겠냐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의사가 소견서를 써줄 테니 이사가면 집 근처로 병원을 꼭 계속 다니라고 했다. 옮긴 병원이 마음에 안들면 한달에 한번 전주로 오라고 했다. 약도 두둑이 주셨다.

올라오고 난 뒤, 병원을 찾지 않았다. 매일 먹는 약에 의지하고 있는 거울 속의 초췌한 나를 발견하곤, 스스로 극복해보자 했다. 약 기운이 없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소견서가 있으니 정말 힘들 때면, 그때서야 병원을 가자!

근처에 동생도 살고 있어 주말마다 함께 나들이도 하고 가끔 부모님네 가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다보니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과 예약해 둔 여행이 코로나로 모두 취소되자, 당황스러웠고 또 내 계획과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들로 인해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왔을 때 잠시 멘탈이 흔들거리긴 했으나, 2023년 지금까지 난 병원에 가지 않고도 잘 지내고 있다.



매일 그렇게 난 루트를 바꿔가며 산책을 다닌다.

걷다보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뒤죽박죽이던 생각들이 정리되어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동생네가 키우는 강아지 호키를 우리 집에 맡겨, 호키를 데리고 연희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의자에 앉은 어떤 할머니가 저 멀리서부터 우리 호키가 가까이 걸어갈 때까지 바라보시며 빙긋 웃는다.

강아지가 멍멍 짖으니, "할머니가 이뻐서 쳐다보는 거야"하신다.

"네, 고마워요 할머니"하며 지나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 이번엔 아시아드공원으로 들어섰는데, 의자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시는 할머니. 아까 그 할머니다.

"어? 할머니? 아까 그 할머니죠?"

"아, 아이고 우리 또 만났네!"

그리고 그때부터 의자에 앉아 함께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강아지 바비와 둘이 살았는데, 23년을 키워 온 바비를 작년에 하늘나라에 보냈다 한다. 운동삼아 공원 나오면 강아지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하신다.

아시아드 공원에는 강아지들을 풀어놓고 뛰어놀게 하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근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나오다보니 그 시간대에 나오는 주인들과도 엄청 친한가보다. 얘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고 갔다.

성격도 좋고 건강한 할머니다.

"호키 산책 나올 때 전화해. 할머니가 호키 보러 오게"

그렇게 할머니와 전화번호를 나누게 되었다. 초면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할머니 핸드폰에 "호키 고모"로, 내 핸드폰에는 "바비 할머니"로 저장됐다.


이후로 저녁에 산책을 나가면 운이 좋으면 할머니를 만났다.

"호키고모, 저녁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나랑 먹자"

어차피 우리 둘 다 혼자 저녁을 해결해야 했기에, 그렇게 할머니께서 양평해장국을 사주셨다.

그리곤 내가 며칠 뒤 엄마네 텃밭에서 오이, 감자, 토마토, 고추를 따다 나눠드렸다.

"호키 고모, 오늘 산책 나올 거야? 나올 거면 5시쯤 공원에서 만나"

할머니는 내게 내가 드린 오이와 감자로 손수 만든 샐러드를 주셨다.

아, 이 할머니 감동 주시네.

이렇게 할머니와 가끔 만나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 사이가 되었다.

83세 바비 할머니가 이 동네서 처음 사귄 내 첫 친구다.


그 연배에도 불구하고 자기관리가 예전부터 철저해, 30년 전부터 수영과 댄스스포츠를 해왔고 지금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신다 한다. 그래서인지 허리도 꼿꼿하고 건강해 보인다.

아들을 '문교수'라 하시고, 누군가를 얘기할 때 어느 대학교 나온 아무개, 어디 회장 아무개라 하시는 걸 보면 '타이틀'을 선호하시는 그 시절 분인 것 맞다. 그래도 늘 자신감에 차 있는 말투와 젊은 감각을 가진 멋진 분이시다.

할머니는 오히려 내가 신기한가 보다.

젊은이가 늙은 자기랑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고 해서 고맙기도 하다고.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단다.

하긴, 막내아들이 쉰 셋이니 그보다도 어린 내가 얼마나 애들 같으랴.

난 어려서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할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거기다 바비 할머니는 멋지기까지 하잖아!

우리 할머니처럼 신식 할머니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예전 다니던 성당에도 버스 타고 다니시고, 친구들 만나 커피도 마시고 머리도 하러 다니고 하느라 늘 바쁘다. 보기 좋다.




호키를 예뻐해 주는 할머니가 있다 하니,

조카가 할머니께 드린다고 "BOBBIE"라는 글자를 넣어 팔찌를 만들어 선물해 드렸다.

할머니가 너무 감동하셔서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고마워"하며 조카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역시 우리네 할머니...


할머니가 삼계탕 사주신다 하셨는데 다리를 다쳐 산책을 못 다닐 때는 만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좀 이른 시간 산책 후 일찍 저녁을 드시고 주무시는데, 난 요즘 같은 더운 날 밤 산책을 나가다보니 잘 마주치질 못했다.

생각난 김에 안부전화를 드렸다. 더운데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신지.

"호키 고모, 어떻게 지냈어? 맛있는 밥 먹자!"

"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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