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ro Oct 30. 2020

나의 가족


나의 첫 가족은 다섯 이었다. 삼 남매 중 하나로 부모님과 함께 유년을 보냈다. 누군가의 옆에서 눈 뜨고 잠들며 그 낮 밤을 따라 자랐다. 학교 갈 때 손 흔들어주는 엄마와 저녁마다 밥상에 모이는 가족들이 있었다. 언제나 집안이 가득 채워지던 시절이었다. 


열 일곱 살, IMF에 살던 집과 아빠의 직장을 잃었다. 엄마가 지방에서 모텔 운영을 시작했다. 언니는 대학에 진학 해 서울에 남고, 가게에서 숙식 하는 엄마를 뺀 세 식구는 엄마가 있는 도시의 낡은 집으로 이사했다. 아빠는 바빴고 남매는 사춘기였다. 집안은 먼지와 상한 음식, 그리고 침묵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곳에 적응할 수 없어서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와 검정고시 준비를 하며 고시원에서 지냈다. 돌아누우면 벽이고 다시 돌아누워도 벽을 만나는 작은 방이었다. 벽 앞에서 말하고 밥을 먹었다. 세상의 크기가 딱 그만해졌다. 너무 좁아서 혼자 일 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언니와 자취를 시작했다. 주차장 구석에 만들어진 월세 방은 누추하기만 했다. 두꺼운 책을 꺼내면 그자리에서 바퀴벌레들이 쏟아져 나왔고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하수구 구멍에 솟구쳤다. 집이 싫어 학교 동아리 방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아빠의 청약 당첨으로 새 아파트에 들어갔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넓고 깨끗한 집에는 자취방에서 추려온 낡은 집기들이 전부였으나 온 가족은 생의 목표를 이룬 사람들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좋은 집이 생겼어도 다시 가족이 모일 수는 없었다. 각자에게는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언니까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면서 나는 아파트에 다시 혼자 남았다.


곧 나도 결혼을 했다. 빠른 결정과 실행이었다. 텅 빈 집을 채우고 옆을 떠나지 않을 가족이 필요했다. 남편이 생겼고 곧 아이가 태어났다. 두 사람이 서로를 미처 알아가기도 전에, 흔들리는 균형을 잡아 보기도 전에 아이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추가되었다.

그와 나는 일어나고 잠드는 시각도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도 달랐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도,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화가 나는 이유도 모두 달랐다. 자주 충돌했다. 가까스로 대화가 시작되면 아기가 울고, 다시 이야기하기 전에 그가 잠들었다. 그렇게 수백 일이 지났다. 시간은 엉킨 문제들을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결혼으로 묶어진 가족은 너무 단단하고 끈끈하여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배웠다. 놓지 않는 손과 떠나지 않을 얼굴이 있을 것을 기대했다. 모든 것을 충분히 알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해지자면, 그 가족의 틀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서로가 버거웠던 그와 나에게, 부부는 반드시 함께 살며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약속과 강요는 막막하고 힘들었다. 그러므로 단지 그는 몇 가지 사실들을 먼저 깨달은 사람, 그리고 선택한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미울 것도 아플 것도 없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즐겁지도 않은 사람과 몇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묶여 산다는 것은 분명한 불행이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그토록 원했던 이름일지라도.

작가의 이전글 이제 상관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