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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이제 상관없다.

2019년 여름 일주일 간 친구와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를 남겨 두고서였다. 아이 아빠에게 집으로 와 등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원을 도와주실 분도 계시니 매일 등원시키고 잠만 재우면 되는 일이었다. 흔쾌히 그러마 하는 그에게 여러 번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안다.

별거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백 일 쯤 되었을 때, 친구들이 얼굴 좀 보자며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아기를 맡기고 두 시간을 얻었다. 그 전에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친구들을 만나 집 앞의 커피 가게로 가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가 왔다. 아기가 운다고. 그는 그 말만했다. “애기 울어.” 나는 집으로 달려 갔다. 


그는 사실 늘 그렇게만 말했다.

"애기 울어, 배고픈가 봐."

"애기 울어, 기저귀 봐야겠어."

"애기 울어, 졸린 거 같은데.."


그럼 나는 열일 제쳐두고 허둥지둥 뛰어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건 무슨 작동 원리였을까. 오빠가 좀 봐봐, 그 소리를 왜 하지 못했던 걸까. 그랬던 그보다 그랬던 나를 더 이해할 수 없다. 말 할 걸 그랬다. 같이 하자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모를 수도 있다는 걸 나야말로 몰랐다. 그가 계속 모를수록 나의 고단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은 쌓여갔다.


엄마이고 아내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나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면 죄를 지은 마음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과업은 오로지 내 몸에서 나온 작은 아이와 돈 버는 남편, 그들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떤 날은 몸과 마음이 고되었고, 몸이 편한 날도 마음은 고되었다. 저녁이 사라진 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이제는 일주일이나 아이와 떨어져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햇볕 아래 누워 책도 보고 밤늦도록 맥주를 마시고 하루 종일 잠을 자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헤어지기 전 호되게 싸운 일도 네 살 짜리 아이를 2박 3일 부탁하고 친구와 제주도를 갔을 때였다. 처음부터 그는 내키지 않아하는 얼굴이었다. 최대한 당신이 힘들지 않게 하원 이모님과 언니에게 부탁을 해 두었으니 잠만 재워 달라 애원하듯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떠난 두 번의 밤이 있는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이미 비행기 시간을 알렸는데도 언제 오느냐고 전화가 왔다. 짐을 챙기느라 바쁜데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일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듣다 못해 서울 가면 이야기 하자고 말했고, 그는 지금 회사 일이 걱정인데 여행이 다 뭐냐고, 그러고 다닐 만큼 한가하냐고 폭발하듯 화를 냈다.

가장으로서의 부담과 사업 스트레스가 짓누르는 그의 눈에는 한가하게 애 떼 놓고 여행이나 다니는 생각 없는 애 엄마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 그도 오죽 답답했을까.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었다. 생활비에서 여행 경비 쓰기가 미안해서 언니와 엄마에게 용돈을 받았고, 친구의 숙소에 얹혀 지냈지만, 그렇게 라도 하고 싶었다. 날지는 못해도 걷고 싶었다.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유모차 없이 가고 싶었다. 


우리가 그때는 못했던 서로에 대한 이해를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정작 필요 없어지고 난 다음에야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영영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이해하는지는 이제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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