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ro Oct 30. 2020

엄마는 돈을 밝힌다

어려서는 별 관심이 없어 몰랐다. 성인이 되고 어른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부터 나는 엄마의 성향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돈 많은 집에, 그것도 대충 아니고 확실하게 많은 집에 시집가길 바랐다. 그래서 내가 연애 할 때마다 가장 궁금해 했던 건 상대와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규모였다. 항상 멀리 살았던 엄마와 통화할 때 나는 늘 지금의 연인이 얼마나 비싼 음식과 선물을 사주는지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그것이 엄마를 만족 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돈이 많은 부모를 가진 남자와 연애 할 때 그녀는 마치 국가대표 코치같았다. 날마다 데이트의 모든 내용을 브리핑 받고 새로운 지침을 주었다. 몇 년이나 앞선 상상으로 그와의 결혼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낼 수 없어 조급해졌고 사정을 모르던 남자친구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미래가 번지르르하던 그와의 연애는 끝났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올림픽 경기에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선수가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일곱 살 쯤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들어온 새 엄마는 어린 엄마를 몹시 구박 했다고 했다. 엄마의 허벅지에는 새 엄마의 심술로 뜨거운 물에 데인 커다란 흉터가 있다. 그녀가 가끔  ‘너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라고 말할 때에 아쉬움과 그리움과 시샘을 본다. 나는 ‘엄마는 모르겠지만 그게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니야-’라고 못되게 대답하려다 만다.


크게 잘난 것 없는 둘째 딸인데도 엄마는 내게 사랑을 많이 주었다. 어려서 부터 감정 기복이 심하고 질투와 투정이 많던 나를 늘 챙기고 예뻐해 주었다. 지금도 중년에 다다른 딸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이 손으로 뭘 해 먹고 산다고..’ 라고 들리는 혼잣말로 안타까워하는 건 엄마뿐이다.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돈 많은 부모가 되어줄 수는 없었다. 엄마가 생각하는 여자의 최고 행복은 그저 돈을 덮고 자는 인생이었고, 내가 그 행복을 결혼과 동시에 거머쥐기를 너무나 원했을 것이다. 나 또한 엄마를 잴 수 없을 만큼 사랑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얼마나 더 경제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사람과 연애를 다시 시작했는지, 게다가 그가 얼마나 나에게 아낌이 없는지, 때때로 없는 말도 조금 보태 엄마의 사랑과 기대에 열심히 응답했다. 우리 모녀는 둘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말했고 가진 게 없었던 서로의 위로했다. 하나의 꿈을 이루려는 동지였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이해했다. 이제 와서 엄마를 비난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한때는 주춤 대기만 하는 인생이, 어딘가에 편히 앉지 못하는 마음이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만족을 모르는 끝 없는 욕심의 근원을 엄마가 만들어 준 것 이라고 원망한 적도 있다. 하지만 평생 받아 먹은 흉내도 못 낼 그 사랑을 배신하는 것 같아 이내 그만 두었다. 


나는 결혼했고 그 결혼이 남들과 다른 모양이 되었다. 두 번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엄마는 부잣집에 시집간 딸을 갖는 기회를 아주 잃었다. 그 대신 일곱 살의 손녀를 어떻게 키워 어떤 집에 시집 보내고 그로 인해 내 팔자가 어떤 식으로 바뀌는 지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여전히 돈 밝히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새로운 꿈을 응원하지만 또 다시 꿈의 동지가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딸은 돈보다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의 간절했던 소원을 이루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나의 행복 만을 절실하게 원했던 마음에 대한 고마움은 여기에 남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