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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모두의 이중 생활

내가 이중 생활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 집안 여자는 셋이다. 모두 자신을 속이거나 두 개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엄마는 남편으로서 사랑은커녕 존경이나 이해 하기 어려운 남자와 40여 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엄마로서 완벽에 가까운 그녀는 아빠 문제에 있어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녀는 평생 남편에 대한 미움과 연민 사이에 어정쩡한 위치에서 오락가락 했는데, 가정의 모양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 모든 어쩌지도 못하는 행동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인생은 내가 결혼을 재빨리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없는 파트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마지막까지 달려나가도 남는 것이 없다는 걸 그녀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언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기 어려운 남자와 아이를 키우며 잘 살고 있다. 그들은 공동 책임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대화하기 때문에 트러블이 적고 합리적이다. 표면상 별 문제 없어서 본인은 그 방식에 만족해 한다. 그야말로 거의 이상적인 모양을 갖춘 가족이다. 그러나 소곤대듯이 단지 사적인 행복만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외롭다며 한탄 하다가도 요란스럽게 짐을 챙겨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며 자리를 뜬다. 부지런히 해외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순방한다. 또한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야 여보야 하는 다정한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좀 우습고 어이없어 보이는 일들이 많지만 어쨌거나 가지런한 가정을 유지해나가는 그녀의 피 나는 노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정말로 웃기지는 않다. 그녀의 외부세계는 매일 유지, 발전하고 있다. 이제 외부와 내부의 세계, 두개의 자아를 완벽하게 분리 시키는 일에도 매우 능수능란해지고 있다.


나는 겉과 속을 일치할 수 없는 그녀들과는 또 다른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보다 명료하고 가시적이다. 매주 일요일에는 엄마와 아내로서 몇 시간을 살고 나머지는 엄마로서만 산다. 그녀들은 내가 결혼의 틀을 깨버린 것에 대하여 책임감과 참을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저녁 밥상의 밑반찬만큼 다양하고 사소한 일들로 마음이 다치고 허무할 때, 나의 이중 생활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인지에 대해 가끔은 그 가치를 높이며 부러워한다. 사실 내 결혼은 통째로 자아 분리의 생활이었지만 합의되고 드러난 지금이 가장 모범적이지 않은가 싶어 나 또한 근거 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세 모녀는 오늘도 전화와 카톡으로 가정안에서 끝도 없이 생산되는 고난과 기쁨의 순간을 서로에게 전한다. 셋 사이에 감추거나 보태는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제 것인양 너무 잘 알고 있는 서로의 이중생활을 위로하고 동시에 위안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비난하거나 충고를 던지고는 한다. 그러다 종종 서로를 보며 더욱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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