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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멀어서 서로를 할퀼 수 없다

‘일요일에는 뭐할까?’ ‘날 좋은데 밖으로 놀러 갈까?’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어디든 괜찮지' '집에서 김밥을 쌀까?' '그래,샌드위치도 만들고.'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잔잔한 말들이 물음표를 달고 오간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대화는 물길처럼 이어진다.     

조심조심 서로에게 똑같이 빚을 진 사람들처럼 군다. 나는 그를 내쫓은 것 같고 그는 우리를 버려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사실이 아니지만 또 전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둘 사이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언제나 식탁 아래에 고여 있다.     


요즘 그는 아이와 부쩍 가까워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적어도 아이에게 집중하려는 의지로 꽉 차있다. 전에는 한두 시간도 곤혹스러워하더니 이제는 곧잘 둘이서 잘 지낸다. 아이가 몇 살만 더 먹어도 기회가 없을 거라 겁을 줘서 얼마 전엔 둘만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가 돌아와 가정을 이루는 한 꼭지점에 다시 선 뒤,  나는 그렇게도 원하던 편안을 느낀다. 시끄러운 마음과 잡초처럼 돋았던 걱정들이 잠잠해졌다. 넉넉한 양육비로 가장 큰 걱정을 덜어냈고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불안과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생일이나 유치원 발표회처럼 아빠의 빈자리가 훤히 보이는 날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다. 다른 것보다 아이와 둘이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마트에서도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단발로 해줄까 그냥 둘까, 원피스를 노랑으로 살까 보라로 살까 묻는 말들에 나만큼 진지하게 고민한다. 피아노 치는 아이 동영상에 나보다 더 감격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똑똑한 아이야 , 예쁜 아이야, 남들에게 못할 말도 그에게는 실컷 할 수 있다.      

그는 비워두었던 자신의 자리를 채운다. 함께 살지 않아도 아이의 옆에, 집 안의 한쪽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실의 모든 경험이 보다 너그러운 만족을 주었다.


어느새 부부라는 말이 어색해졌다. 마치 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동료 같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때로 내 일까지 덜어주는 동료에게, 나도 유능하고 배려심 있는 파트너가 되려고 한다. 일로 만나는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듯이 우리는 서로의 어떤 부분들은 알지 못한다. 사적인 부분은 침범하지 않은 채 오직 각자의 몫을 한다. 그런 모습에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감사를 느낀다.

 

엄마 아빠이자 동료로 지낸 몇 년의 시간은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다. 멀어진 그의 모습은 바짝 붙어있을 때보다 밉지 않다. 일에 쏟는 열정과 노력에도 섭섭할 이유가 없다. 설령 미운 일이 있다 해도, 멀어서 서로를 할퀼 수 없다. 거리는 두 사람을 편안하게도, 안전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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