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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대답이 없어도 다시 묻지 않는다.

추석 날에 혼자 있다. 

지난 설날에도 그랬다.

그가 아침 일찍 와서 아이를 데리고 할아버지 댁에 갔다.


나는 잠이 잔뜩 묻은 아이의 얼굴을 씻겨주고, 지난 밤에 같이 고른 원피스를 입혔다. 긴 머리를 여러 번 빗어 묶어준 다음 옷걸이에 걸린 한복을 들려주며 현관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여전히 하품을 참지 못하면서도 한 손으로 아빠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내게 흔들며 문을 나섰다.


잠자리에 다시 누웠다가 거실에 나와 앉았다.

조용해지면 나타나는 우리 집 고양이가 소리 없이 다가와 한자리 건너 옆에 앉는다.

엄마가 보내준 말린 버섯을 뜨겁게 우린 차를 마신다.

책도 텔레비전도 음악도 별로라 조용히 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완전히 그런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


명절이라는, 결혼 후에 가장 분주했던 날에 가장 한가해지는 일은 여러 번 반복되어도 낯설다.

무엇에서 제외되고 탈락한 기분이 든다.

너무 홀가분하지도, 온전히 편하지도 않다.

깨끗하게 벗어나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죄책감만 남았다.


아이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엄마만 빠진 명절 밥상 앞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것 같다.

그 눈이 잠시 촉촉하게 깊어질 수도 있겠다. 잠시 골몰해질 수도 기운이 빠질 수 도 있겠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을 그려보며 전하지도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아침 나절을 보낸다.


오후에 아이가 냄새들을 입고 돌아온다. 

할아버지 집 냄새, 명절 음식 냄새.

나는 꼼꼼하게 씻기지만 그 냄새가 싫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른 집 냄새에 흠뻑 배어 오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보다 더 과장되게 놀라고, 궁금해 하고, 즐거워한다.

“할머니가 다음엔 엄마도 꼭 오래.”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눈으로 묻는다. 

다음엔 엄마도 갈 거야?


최대한 여유롭고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아이를 쓰다듬는다.

대답이 없어도 다시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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