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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그로부터 흐르는 것

엄마는 어려서 글 짓기를 잘 했단다.

한번은 도 대회에서 장원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엄마의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 엄마에게 무진장 구박 받을 때, 조카가 가여웠던 이모가 찾아와 장에 가서 새 신을 사주었던 일을 썼다고 했다.

그 글이 당선되자 담임 선생님은 너무 기뻐 엄마를 업고서 춤 추듯 운동장을 돌았다며, 엄마는 이 대목을 얘기할 때마다 코끝이 빨개졌고, 나는 꼭 내가 덩실 대는 등에 업힌 것처럼 어지럽고 행복했다.


처음으로 어린 딸의 감사 카드를 받았을 때,

‘뭔가 자동으로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어버이 날이에요’ 로 시작되어 놀랍고 사랑스러운 문장들로 채워진 그것을 보며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치마 저고리에 새 고무신을 신고 몽당 연필을 쥐고 글을 짓던 어린 엄마는 자라서 나를 낳았다. 나는 가끔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글을 쓰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종종 옆에 앉아 공책을 펴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말도 안되게 귀엽게 지어내는 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나에게 비슷한 얼굴과 무르고 예민한 성격과 함께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도 나누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다시 쪼개 나의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나 보다.


이제 엄마는 아무것도 쓰지 않지만 가끔 내 아이가 쓴 문장들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본다.

거기에 흐르는 엄마로부터 시작된 무엇을, 엄마는 느끼고 있는 것일까.

성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 세 여자는 그렇게 깊숙한 곳에서 서로에게 이어지는 물줄기 하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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