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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Nov 09. 2020

열네 살의 아침

열네 살의 나는 시멘트 냄새가 풍기는 축축하고 차가운 복도를 걸었다. 주번이어서 가장 먼저 학교에 가야 했던 초가을의 아침이었다. 졸음을 미처  쫓지 못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을 보았다. 놀라는 몸짓에 내가  놀라 숨이 멎는  알았다.

그 애는 교실  뒷줄에 앉는, 담임에게 하루에 한 번은  쥐어 박히던,  키에 몹시 말라 헐렁한 교복 바지에  것이 없어 가방은  헐렁했던 아이, 얼굴이 하얗고 어딘가 타조를 닮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애가 거기 있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느라 교실에 들어서지 못했다. .. 하고 신음 같은 작은 소리를 내는 그 애 뒤로 그제야 칠판에 큼지막하게 쓰인 고백의 글자들이 보였다.
너를 좋아해

글자들을 완전히 이해하자 나는  교실로 들어설  없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목이 말랐다.  발이 그 자리에  붙었다.
그 애는, 이른 아침의 고백을 계획해 놓고도 당장 도망치고 싶은 얼굴이었다. 사방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처럼 동동거렸다. 그러다 피식, 하고 먼저 웃음이  것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뒤로도 그 애는 여전히  뒷자리에서 수업시간마다 졸다가 혼났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내가 주번인 날에는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왔다. 물을 채운  주전자를 옮겨 주었고 책걸상 줄을 같이 맞추었다. 대충 일을 마치고는 다른 아이들이  때까지 우리는 책상 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그 애의 발은 바닥에 닿았지만  발은 닿지 않아 대롱거렸다. 그 애와 나의 발을 내내 바라보았다. 그 애는 초콜릿 같은  건넸고  말이 없었다.

 번은 담임의 한문 숙제를 두고  나에게 웬일로 해온  숙제를 던져주다가 그걸  들켜서 얻어맞았고, 매점에서 종종 딸기 샌드위치 빵과 딸기 우유를 사 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피구 경기 때는 너무 완벽한 보호를 해주는 바람에 원치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조별 숙제 모임에 갑자기 명단을 바꿔 나타나기도 했다. 운동장 구석 등나무 벤치에 앉아 점심시간을 마저 보낼  멀지 않은 곳에  그 애가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나는 보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그런 것들 뿐이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칠판 위에 다섯 글자로 쓰인 뒤에 또다시 없었다.

열네   해에 운이 나쁜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나와 친구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오해들은 빗방울과 같았다가 물줄기가 되고 나중에는 강물처럼 불어났다. 범람하는 물살에 나는 홀로 떠내려갔다. 열네 살의 아이에게 친구들은 그야말로 전부였으므로 나는 세상에서 제외된 것만 같았다. 밀려난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강물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아침 교실 문을  때마다 물살은 나를 덮쳤다.
그래서 그즈음 나는   나를 속이는 애였다. 거짓인걸 진짜처럼,   바구니를 들고 가득  것처럼, 비를 맞고도 젖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괴로운 진짜에서  괴로운 가짜로 도망치기 위해 점점  많이 나를 속였다. 나중에는 내가 좋은지 슬픈지 괜찮은지도 알지 못했다.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몰아친 추운 바람이 서리가 되어 옅게 깔린 길을 밟으며 학교로 걸으면서 나는 그 애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는 눈과 웃는 입술을, 주머니에 넣은 떨리는 손을 그 애는 보았을 것이다. 숨기고도 싶었고 들키고도 싶었던 모든 마음까지 언제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던 그 애가 모를 리 없었다.
그 애가 오늘도 교실에 있기를,  당연한 것을 간절하게 바라면서 걸음이 빨라졌다. 교실문을 열자 그 애가  돌아본다. 기다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침 만은 강물을 뒤집어쓰지 않았다.

계절이 반드시 돌아오는 것처럼 견딜  없는 시절도 반복된다. 그때마다 능숙하게 나를 속인다. 아주 가끔 그 애처럼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속이는 일을 멈추게 하는 사람들. 진짜 좋은 거야? 진짜 하고 싶은 거야?  괜찮은 거야? 물어봐 주는 사람들. 여전히 생각과 다른 대답을 하는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대답 속의 대답을 찾고 있다.
나를 기다렸던 겨울 아침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애는 다른 사람으로  다른 사람으로 여전히 가까운 곳에 있다.

하나의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하나의 기억은 평생 위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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