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내가 따돌려진 이유를 잘 모른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지워졌거나, 일부러 모조리 잊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그 일은 어떤 사건이나 계기 없이 모래바람처럼 그냥 스르륵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열세 살의 나는 반에서 가장 인기 좋은 애중에 하나였다. 선생님이 칠공주라고 비꼬곤 했던 같이 어울리던 무리 안에서 안락하고 즐겁게 지내면서도 반 아이들과 고루 친했다. 일곱 명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고 반장도 했어서 친구들 안에서 계획을 주도하고 의견을 관철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기분 좋은 봄 같은 날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인가 아침에 눈뜨면 마음에 모래알처럼 까끌거리는 것이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교실 안에서 친구들과 나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바람이 기분 나쁜 숨결처럼 이따금씩 지나갔다. 처음에는 한번, 그다음 두 번, 아이들은 내가 모르게 이야기를 했고, 방과 후에 나를 빼고 어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 들을 알게 되었다. 늘 같이 하던 우스갯소리가 갑자기 시빗거리가 되어 말다툼을 했고, 그럴 때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몰아세웠고, 나중에야 그것이 처음부터 의도적인 공격인가 생각되었다. 너무 쉬워서 당연했던 것들이 어려워졌다. 매일 하는 등교가, 제일 좋아했던 체육시간이, 모여서 하는 모둠 과제가 하나씩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이 되었다.
여섯 명의 친구들은 곧 싸늘하고 연민 없이 나를 대했다. 그 변화는 자연스럽고도 급격했다. 벽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교묘하고 빠르게 세워졌고, 감히 두드려 이유를 물을 수도 없는 사이 적대와 무시로 견고해졌다. 나는 고립되어 갔다. 반 아이들은 말없이도 재빠르게 제 역할을 찾았다. 매일 교실문을 들어서면 모두 처음 보는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쫓겨난 것처럼 나는 패배자, 이방인이 되었다.
비를 쫄딱 맞은 심정으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대문 옆 우편함에는 욕을 갈겨쓴 종이가 고이 접혀 꽂혀있었다. 나는 다른 가족이 보기 전에 얼른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한때는 제일 친했던 애가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해 불러낼 때, 불길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로 나가보면 아이들은 모두 팔짱을 끼고 모여 있다가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우르르 앞장섰다. 때리거나 욕하거나 놀리지도 않았다. 그저 두어 시간을 학교 운동장으로 골목길로 저들은 앞장서며 시시덕거리고 나는 고개도 못 들고 따라오게 만들었다. 굴욕감은 침묵 속에서 아주 아주 선명하게 뜨겁게 피어올랐다.
스물일곱 살이던 담임 선생님은 마치 아이들과 한 편처럼 굴었다. 도시락을 혼자 먹어도, 아프다는 핑계로 피구 경기에 빠지고 덩그러니 스탠드에 앉아 있어도 선생은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녀가 처음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가 되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불화를 왜 선생이 중재하지 않는지 이상했다. 나는 고작 어린아이였을 뿐이므로 어른이 필요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외로움과 비참함을 열세 살의 나는 어떻게 매일 씹어 삼켰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수백 번을 생각했다. 나의 지난 모든 말과 행동을 헤집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너무 커다란 잘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없다는 것은 너무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포기를 하느라 모든 밤을 뒤척였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무겁고 단단한 돌로 뱃속을 꾹 막아 누르며 하루를 시작했고 잠자리에 누울 때 돌을 꺼내 머리맡에 두었다가 아침에 다시 가슴속에 집어넣고 집을 나섰다.
느리더라도 멈추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어딘가에 닿을 수 있으므로 너무 고맙게도 계절이 지나고, 방학이 지나고, 마지막 날이 남았다. 졸업식이었다.
운동장에서 식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온 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한 명씩 불러내 졸업증을 주며 악수를 청했다. 축하하러 온 가족들은 교실 뒤에서 창문 밖까지 죽 둘러서있었다. 엄마는 창문밖에 서서 얼굴을 들이밀어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앞머리를 한껏 부풀리고 진한 색 립스틱을 칠했다. 나는 한 번 쑥스럽게 웃었을 뿐 더는 엄마 쪽을 보지 않았다. 저렇게 뚫어져라 본다면 어지러운 나의 표정을, 어쩌면 이곳에서 일어난 지난 모든 일들을 엄마가 알게 될 것만 같았다.
오늘만 지나면 된다. 오늘만 지나면 이 학교에서 이 교실에서 이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도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일렁였다. 구원이 코앞인 것 같았다. 나는 안도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쉬움에 울었다. 여섯 명의 무리도 서로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나는 외계인처럼 나 말고 모두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 이름은 서른 번이 한참 지나고 불려졌다. 선생이 내 이름을 말하자 나는 흠칫했다. 여태껏 그녀가 나를 그토록 다정히 불러 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낯설고 불안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분단 사이를 지나 교탁으로 걸었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긴장 탓인지 모든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은 졸업장이라고 시작해 이하동문이라고 읽고는 들고 있던 졸업장을 빙 돌려 내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걸 두 손으로 받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서 서둘러 고개를 드는데 그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말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보고 그렇게 다정히 웃을 줄은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놀랐다. 놀라서인지 별안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선생은 나를 잠시 안았다. 그 품에서 나는 또다시 놀라 눈물이 멎어버렸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같고, 얼어붙는 것도 같았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인지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린 것인지 몰랐다. 눈물이 나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나던 꽃 향기와, 정신없이 돌아설 때 스치던 엄마의 얼굴과, 구름처럼 뭉개지던 아이들의 모습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끝났다.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린 것은 내가, 그때 그 나이 스물일곱을 지날 때였다. 내가 선생의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면 어른의 마음도, 아이들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찢어진 조각들을 맞추어내도 안개 같은 기억은 안개 같을 뿐이고, 괴로운 장면은 그저 괴롭다.
단지 스물일곱이, 열세 살이 생각했던 스물일곱 과는 몹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그렇게 대단한 어른 같은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