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은 늘 같은 시간에 울린다. 갑자기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퍼뜩 눈이 떠진다. 아이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그 애는 언제나 팔다리를 사방으로 완전히 벌려 킹 사이즈 침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입도 벌어져 있다.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요란한 알람이 끄고 아이를 쳐다보았다가 그 애의 이마와 목덜미에서 어지러운 머리칼을 넘겨준 뒤 부드럽고 포동한 손을 잡은 채 잠시 다시 눈을 감는다.
한 시간쯤 더 연장된 잠은 밤 잠보다 몇 배의 달콤함이 있다. 맛있는 것의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처럼 만족스럽다. 그것을 마저 긁어먹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재빨리 움직일 수 없다. 다리가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려고 천천히 허리를 세우고 한 발씩 침대 밖으로 내려놓아본다. 아침에 통증이 없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매일 늘 방 한가운데에 배를 깔고 앞다리를 모아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구름이를 발견한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을까. 꼼짝없이 나를 주시하는 눈빛을 보면 오래 기다렸을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급해진다. 방문을 열면 구름이가 먼저 쏙 빠져나간다. 습식 사료를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듯 나를 부엌으로 안내한다. 그 애의 밥그릇에 냉장고에서 꺼낸 습식사료를 한 스푼 떠서 건식 사료와 섞어주고 깨끗한 미온수로 물도 갈아준다. 그리고 전기포트의 85도 버튼을 눌러 우엉차를 데운다.
삑 하고 온도가 맞춰지면 차를 유리컵에 담아 테이블에 앉는다. 아직 뜨거운 것을 호호 불어가며 몇 모금 마신다. 아마도 나는 그때 아무 생각이 없다. 전에는 잠에서 깨면 요란하게 나를 불러댔던 아이가 이제는 커서 조용히 제 발로 걸어 나온다. 그럴 시간이 지났지만 깨우지 않고 조금 더 둔다. 내 고요를 위한 일이다.
기운이 빠르게 채워졌다면 다이어리를 편다. 사실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게 별로 없는 날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오늘을 신중하게 예상하거나 계획한다. 삼일에 한 번은 어떤 책에서 읽은 ‘하루를 손님처럼 맞이하라.’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오늘의 손님이 왔다. 어제 읽다 만 책을 오늘 끝까지 읽거나, 혹은 며칠 전 완독 한 책을 기록하거나, 아이의 치과치료나 나의 피부과 진료 같은 일을 떠올리며 오늘 무얼 해야 할지 결정한다. 결국 대부분 무엇인가를 읽고 쓰는 날이 된다. 아침이 지나면 거의 혼자다.
어디선가 아침 일기를 한 줄이라도 기록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길래 한 달째 다이어리 구석에 아침 일기를 적는다. 그 시간이 내 머릿속이 가장 단순한 때이므로 일기의 내용도 초등학생 같다. 이를테면 기분을 다스리자, 작은 일을 오래 생각하지 말자, 하고 싶은 일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낭비 없이, 같은 말들이다. 그때그때 다른 말을 적고 곧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차가 식기 전에 부지런히 홀짝거리며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보이는 것은 건너편 아파트 동의 똑같이 생긴 창문 수십 개. 그걸 그냥 보고 있다. 가끔은 그중 하나의 창이 홱 열려 깜짝 놀란다. 아주머니 하나가 얇은 이불을 창 밖으로 늘어뜨리고 탕탕 턴다. 매번 그 창이다.
놀란 김에 그릇 자리에서 일어나 정해진 것처럼 부엌으로 간다. 어젯밤 아이가 잠들기 전에 팔베개 안에서 단호하게 결정해준 아침 메뉴를 떠올리며 냉장고를 연다. 파우치에 든 죽을 데우거나, 계란물에 식빵을 담가 놓거나, 샐러드를 씻거나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다.
간단한 아침이 거의 준비되면 아이는 어느 사이 세수까지 하고 거실로 나와있다. 조금 부어서 어쩐지 아기 때 같아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거의 매일 같은 순간에 나는 처음으로 웃게 된다. 아이는 씩 웃고는 피아노 앞으로 곧장 간다. 나는 그 애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식탁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