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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Jul 13. 2021

거의 모든 아침

알람은 늘 같은 시간에 울린다. 갑자기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퍼뜩 눈이 떠진다. 아이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그 애는 언제나 팔다리를 사방으로 완전히 벌려 킹 사이즈 침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입도 벌어져 있다.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요란한 알람이 끄고 아이를 쳐다보았다가 그 애의 이마와 목덜미에서 어지러운 머리칼을 넘겨준 뒤 부드럽고 포동한 손을 잡은 채 잠시 다시 눈을 감는다.


한 시간쯤 더 연장된 잠은 밤 잠보다 몇 배의 달콤함이 있다. 맛있는 것의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처럼 만족스럽다. 그것을 마저 긁어먹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재빨리 움직일 수 없다. 다리가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려고 천천히 허리를 세우고 한 발씩 침대 밖으로 내려놓아본다. 아침에 통증이 없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매일 늘 방 한가운데에 배를 깔고 앞다리를 모아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구름이를 발견한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을까. 꼼짝없이 나를 주시하는 눈빛을 보면 오래 기다렸을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급해진다. 방문을 열면 구름이가 먼저 쏙 빠져나간다. 습식 사료를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듯 나를 부엌으로 안내한다. 그 애의 밥그릇에 냉장고에서 꺼낸 습식사료를 한 스푼 떠서 건식 사료와 섞어주고 깨끗한 미온수로 물도 갈아준다. 그리고 전기포트의 85도 버튼을 눌러 우엉차를 데운다.

삑 하고 온도가 맞춰지면 차를 유리컵에 담아 테이블에 앉는다. 아직 뜨거운 것을 호호 불어가며 몇 모금 마신다. 아마도 나는 그때 아무 생각이 없다. 전에는 잠에서 깨면 요란하게 나를 불러댔던 아이가 이제는 커서 조용히 제 발로 걸어 나온다. 그럴 시간이 지났지만 깨우지 않고 조금 더 둔다. 내 고요를 위한 일이다.


기운이 빠르게 채워졌다면 다이어리를 편다. 사실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게 별로 없는 날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오늘을 신중하게 예상하거나 계획한다. 삼일에 한 번은 어떤 책에서 읽은 ‘하루를 손님처럼 맞이하라.’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오늘의 손님이 왔다. 어제 읽다 만 책을 오늘 끝까지 읽거나, 혹은 며칠 전 완독 한 책을 기록하거나, 아이의 치과치료나 나의 피부과 진료 같은 일을 떠올리며 오늘 무얼 해야 할지 결정한다. 결국 대부분 무엇인가를 읽고 쓰는 날이 된다. 아침이 지나면 거의 혼자다.

어디선가 아침 일기를 한 줄이라도 기록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길래 한 달째 다이어리 구석에 아침 일기를 적는다. 그 시간이 내 머릿속이 가장 단순한 때이므로 일기의 내용도 초등학생 같다. 이를테면 기분을 다스리자, 작은 일을 오래 생각하지 말자, 하고 싶은 일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낭비 없이, 같은 말들이다. 그때그때 다른 말을 적고 곧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차가 식기 전에 부지런히 홀짝거리며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보이는 것은 건너편 아파트 동의 똑같이 생긴 창문 수십 . 그걸 그냥 보고 있다. 가끔은 그중 하나의 창이  열려 깜짝 놀란다. 아주머니 하나가 얇은 이불을  밖으로 늘어뜨리고 탕탕 턴다. 매번  창이다.

놀란 김에 그릇 자리에서 일어나 정해진 것처럼 부엌으로 간다. 어젯밤 아이가 잠들기 전에 팔베개 안에서 단호하게 결정해준 아침 메뉴를 떠올리며 냉장고를 연다. 파우치에  죽을 데우거나, 계란물에 식빵을 담가 놓거나, 샐러드를 씻거나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다.

간단한 아침이 거의 준비되면 아이는 어느 사이 세수까지 하고 거실로 나와있다. 조금 부어서 어쩐지 아기 때 같아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거의 매일 같은 순간에 나는 처음으로 웃게 된다. 아이는 씩 웃고는 피아노 앞으로 곧장 간다. 나는 그 애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식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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