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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Jan 27. 2022

정확한 E의 실험

“자. 손가락을 이마에 대봐. 응, 그리고 알파벳 E를 거기에 그려봐.”

다들 해보세요.


늦은 밤에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진행자 셋이 청자가 되어줄 사람을 데려다 놓고 과거에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풀어 이야기해 주는 것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진행자들이 다짜고짜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말했다.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려봐. 다들 얼결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도 홀린 듯 따라 그렸다. 소파 위에서 얼음 아이스크림을 씹으며.


그날 방송은 오래전 끔찍한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는 이후 사이코패스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알파벳 E를 그리게 한 이유는 말미에 알려주었는데, 그게 사이코패스를, 그러니까 공감능력의 높고 낮음을 간단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 참가자 셋 중 둘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바라보는 방향을 염두하고 오른쪽으로 E를 그렸고, 한 명은 그 반대로 그렸다. 예상하겠지만 공감능력은 상대방이 알아보기 쉽게 E를 그린 사람들이 높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남이 아닌 내 방향으로 E를 그렸다.


방송은 끝났고 현란한 광고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공감능력에 대한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나는 이미 내가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사고의 비약을 진행하고 있었다. 뭐지, 존나 충격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려서부터 그 무엇보다 ‘공감’에 재능과 총기를 보여왔다. 늘 친구가 많았고 그들은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 대화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나의 탁월한 공감 능력과 어디서도 비교할 수 없는 적절하고 찰진 맞장구와 리액션 능력 때문이라고 나는 스스로 평가해왔다. 친구가 넘어진 얘기를 하면 나는 내 무릎을 쓰다듬었다. 나에게 공감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드라마 영화를 보다가도 잘 웃고 잘 울었다. 책은 읽는 책마다 너무 공감을 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쉽게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라고 다짐한 뒤 읽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난한 공감력으로 인해 캐릭터나 스토리에 완전히 빠졌다가도 다시 빠져나와 잊는 것도 잘해서 간신히 일상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내가, 별 재능 없이도, 오직 촉과 눈치와 공감과 반응력, 그것만 가지고 여기까지 살아낸 내가, 이마에 E를 반대로 쓰는 인간이라니.


다음 날, 눈을 뜬 나는 사실 그때는 너무 늦은 밤이고 졸리고 또 아이스크림도 먹고 있고 해서 집중을 못해 대충 하느라 그런 거라고, 내 편을 들어주며 한 껏 우울한 기분을 끌어올렸다. 뭐든지 맹신도 잘하는 나에게 테스트는 잘못이 없고 나의 테스트 결과만이 오류라는 결론이었다.


자 그렇다면, 내 생각에 제일 공감력이 떨어지므로 오류가 절대 날 일 없는 ‘너’에게 이 테스트를 해보겠어!


‘너’는 이미 얼마 전 나의 글 <밥 먹는 사이>에서 언급된 바 있는 그 친구다. 그는 어려서부터 특유의 무관심, 무표정, 무감각의 3무를 장착한 캐릭터로, 나는 그 애랑 무슨 얘기를 해도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답답함과 패배감을 느끼곤 했다. 어째서  리액션을 하지 않는가. 이 얘기엔 다들 눈물이 고이던데 어째서 이 인간은 하품을 하는가.


그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시간의 등을 타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재회한 뒤 조금씩, 얼음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처럼 감질나게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나는 그가 공감과 반응, 때로는 호들갑, 어떤 말은 두 번씩 해도 된다는 허용, 어떤 감정은 크게 표현할수록 친밀감에 유용하다는 실험의 기회 등이 부재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나 혼자) 판단하기에 이르렀고, 그런 그를 그저 품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와 다른 모양의 사람으로 인정하는 단계에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 테스트에 완벽한 대상이었다. 그는 반드시 E를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쓸 것이기 때문이다.


“자. 손가락을 이마에 대봐. 응, 그리고 알파벳 E를 거기에 그려봐.”

순순히 그는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면 시키는 대로 잘하는 편이다.

그가 서서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나는 침도 못 삼킨다.

그는 정확하게 내가 잘 볼 수 있게, 나 보란 듯이 선명한 E를 이마에 그린다.

정적이 흐른다.

나는 생각한다. 이시키 방송 봤나?


진짜 내가, 친구 흉을 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은 그 애가 기쁜 목소리로 전화한 적이 있다.

내가 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나는 그의 흔치 않은 흥분이 묻은 목소리에 놀랐고, 선물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라 어머나 이게 웬일?  대애박~뭔데 뭔데?? 물어보면서도 대체 그것이 뭘까 생각했다. 일단 급히 스쳐가는 것은 옷, 신발, 지갑, 가방 아니면 먹을 건가, 비싼 과일 망고 같은 거? 것도 아니면 책?이라고 행복 회로를 마음껏 돌리는데, 그가 꿈처럼 대답했다.

응~~~ 변기 클리너!!!!

그렇다.

나는 그때 좀 울었던 것 같다.


공감(共感)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거나 느끼는 기분이다. 일단 공감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해를 위해서는 관심과 집중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변기 클리너 사건이 다만 그것이 내가 짧은 시간 상상했던 선물들과 너무 갭 차이가 있어서 만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그동안 보인 관심과 집중, 이해의 부족과 그로 인한 공감 결여에 대한 감정적 폭발이었다. 그때 그 친구의 반론을 짧게 적자면 (이건 내 글이니까) 내가 워낙 깔끔한 사람이니 좋아할 줄 알았다나 뭐라나. 끝.


그러니까 지가 홈쇼핑으로 주문한 변기 클리너 중에 하나를 한달음에 달려와 안겨준 그 친구는, 내 얼굴의 그늘과 얼룩을 보지도 못하고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던 그 친구는, 변기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면 이내 너는 황홀해질 거야 라며 말갛게 웃던 나의 친구는,

빛나는 공감력을 인증하며 이마에 E를 나 잘 보이는 방향으로 그려낸 것이다.


나는 변기 클리너 대용량 한 통을 가슴에 안았던 어느 봄날과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때 무언가 거대한 혼란에 휩싸인 나를 용케 알아본 그가 물었다.

이거 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확신한 그가 집요하게 캐기 시작했다. 뭔데 이거 뭔데!

나는 이제 자포자기가 되었다.

공감력 테스 트래 (차마 사이코패스 테스트라고는 말 못 하고, 그럼 내가 지를 사이코패스라고 잠정 확신한 사실을 눈치 깔 것 같아서) 너 공감력 좋네. 상대방 잘 보이게 쓰는 게 좋은 거래..

어색하게 우물거리는 내가 의심스러웠을까. 그가 번뜩이는 눈으로 작은 창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넌.. 어떻게 했어?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다만 그 후로 내 앞에서 한 뼘쯤 어깨가 펼쳐지고 허리가 꼿꼿해지는 동시에 배를 조금 내미는 것만 같은 그가 있었다.

그 후 오랫동안 나는 종종 소소한 언쟁중에 아.. E의 실험이 참 용하구나..라는 짧은 탄식을 들어야 했다. 자발적으로 오른쪽 가슴에 달았던 ‘공감 요정’이라는 명찰을 반납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수년간 공감력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타박한 것에 대한 응징을 받고 있다. 이따금 변기 클리너 사건을 필두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 눈치, 모든 면에서 부족하니 더욱 학습과 훈련에 정진하여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었던 나에 대한 깊은 원한과 반발을 쏟아내며 내 친구 그는,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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