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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Mar 27. 2022

오늘 내가 본 것은

얼마 전 집 앞에 S커피점이 생긴 후로 나는 거의 매일 그곳에 간다. 익명성이 매력인 공간이지만 자주 가다 보니 직원들의 얼굴과 닉네임에 익숙해졌고,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지 친근한 눈인사나 한 마디의 안부 정도를 더 얹어주고는 한다. 나는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데, 거기에서는 카운터와 제조 공간과 직원 창고의 출입문이 모두 잘 보인다. 가끔 멍해지면 직원들의 바쁜 움직임을 그저 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은 늘 무의식에 가까웠지만 언젠가부터 그들 중 하나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는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크다. 그의 업무는 사람들이 쌓아 둔 식기와 쓰레기를 정리하고 해가 드는 시간에 블라인드를 전부 내렸다가 해가 지면 다시 올리고 테이블과 의자를 수시로 닦고 재활용을 밖으로 가져가 버리는 일 등이다. 가끔은 점포 앞길에 웅크리고 앉아 바닥에 늘어 붙은 검은 껌 자국을 긁어내는 일도 한다.     


그는 행동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대신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직원 교육에서 배웠을 법한 몇 가지의 정해진 문장으로 오가는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누군가와 동선이 겹치면 사과하고, 블라인드를 조작해야 할 때 양해를 구한다. 그의 말은 아주 공손하지만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내 멘트와 비슷하다. 그는 부지런히 말하면서도 정작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는 않는다. 백색 소음을 깨고 울리는 외침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에 나는 

종종 고개를 번쩍 들게 된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목소리 때문에 몇 번 고개를 치켜들었고, 익숙한 그의 몸짓을 보고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저녁이 다 되어서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그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이거 버릴까요?”라고 말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을 보았다. 이번에는 대답을 구하는 말이었다. 그는 한 직원을 향해 몸을 돌리고 서 있었다. 손에는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동료 직원은 분명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음에도,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대답도 눈짓도 고갯짓도 하지 않았다. 잠자코 있다가 그대로 돌아서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무안하기보다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고, 당황한 듯 우로 좌로 주춤대다가 이내 직원 공간으로 들어갔다. 밀고 들어간 나무 문이 여러 번 그네처럼 흔들렸다. 그 잠시 동안 내가 되려 조바심이 나고 얼굴이 붉어져서 뭐라도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곳을 나와 신호등 앞에 서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람이 유난히 거센 내천 다리를 건널 때쯤에는 동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애를 떠올리는 일이 아주 오랜만이라는 사실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동생 J는 내가 네 살 되던 해 겨울에 태어났다. 7개월도 채우지 못한 미숙아여서 오랫동안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집으로 왔다. 그 애는 이른 탄생으로 인해 잔병치레가 잦고 발육이 더뎌서 부모의 속을 태우다가, 돌이 지나자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병원 대신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애는 더디긴 해도 영유아기의 발달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갔다. 돌이 지나 목을 가누었고, 세 살이 되자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진단과 처방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린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에 열성이면서도 숱하게 찾아간 역술인들 또한 그 애가 단지 속도가 느릴 뿐 결국은 정상인과 도착점은 같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엄마는 뇌성마비 판정이 오진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J는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자랐다. 나와 언니는 그냥 놔두어도 알아서 잘 컸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어려서 자주 친척집에 보내졌고 집에서도 언니만 따르던 아이였기 때문에 동생과 별로 가깝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애는 우리 자매 사이에 끼고 싶어 언니라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녔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가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다. 나는 자아와 환경에 대한 불안과 불만으로 예민하고 사나운 청소년이었다. 늘 보호와 관심 속에 있는 J의 눈에 나는 자유롭고 강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 애가 학교에다 ‘우리 누나는 힘이 세고 친구들도 많은데 그중에는 깡패 같은 형들도 있다’는 소문을 낸다고, 엄마가 전해주었다. 나는 걔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동생과 내가 같이 등교하던 날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걷던 우리는 사거리에서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인사도 없이 가다가 그날따라 괜히 힐끔 뒤돌아보았는데, 그때 남자애 두 명이 나타나 동생의 뒤통수를 탁 때리고 팔로 목을 조르듯 감는 것이었다. 목이 잡힌 동생은 연약하게 휘청거렸다. 나는 순간 눈에 튀어 오르는 수 십 개의 불티를 느꼈다. 냅다 달려가 그 녀석의 뒤통수를 딱 소리 나게 올려붙이고 동생을 휘감은 팔을 뜯어냈다.

“너 뭐야 이 새끼야, 왜 애를 때려!”

두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가, 이제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내 눈과 중학교 교복을 보고는 약간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아 장난이에요, 장난”

서둘러 내빼려는 녀석을 홱 잡아채고 나는 이가는 소리를 내려고 말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니네 한 번만 더 내 눈에 걸리면 뒤져”     


동생은 저녁 밥상에서 몇 번씩이나 그날 얘기를 들먹이며 그 후로 아무도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나가 오토바이 타는 형들이랑도 친구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며 활짝 웃었다. 엄마가 끙하고 신음하며 나를 흘겨봐서 그 애를 줘 패 버리고 싶었다가 나는 궁금해졌다. 그럼 얘는 여태 그 꼴로 학교를 다닌 건가. 기분이 나빴다. “야, 나 쪽팔리게 하고 다니지 마”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J는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나와 상의하고 싶어 한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볼지, 무슨 옷을 사야 할지,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었는지와 같은 모든 일 말이다. 나는 매번 성가셔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하지만, 그 애는 여전히 결정이 필요한 일에 ‘작은 누나한테 물어보고’라는 말을 앞세운다.     


동생에게 나는 어쩌면 가장 믿음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 애를 그저 지켜보려 하는 다른 가족들과 비교해 나서서 관여한다는 점에서 나 또한 스스로 가족 중에 가장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애에게 더 먼저 더 많이 제공되는 모든 것들에 평생에 걸쳐 분노했다. 화 나 있지 않으면 그 애를 부끄러워했다. 어째서 너는 늘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 한 건지, 그런 네가 왜 하필 내 동생인 건지. 그 애가 나를 소문낼 때 나는 그 애를 숨겼다. 친구들은 한참이나 내게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나는 J에게 상관하고 결정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주는 나쁘지 않은 누나였을지 몰라도, 나에게 J는 단지 잡아채서 바로 잡고 싶은 잘못된 무엇이었다. 손발톱을 깎게 하고 날씨에 맞는 옷을 골라주고 짝이 맞는 양말을 골라주어야 하는. 동시에 그 애는 영영 내 마음에 들게 고쳐놓을 수 없어 골치 아픈 문제였고, 그래서 신경질이 나는 사람이었다. 돌아서면 은근한 통증으로 짠해지는 자였고 뒤이어 밀물처럼 미안해졌다가 스르르 쓸어내 잊고 마는 아이였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본 것은 나의 얼굴이었다. 조용하고 단호하게 외면하는 사람과 그 서늘한 마음을 향해 서 있는 또 한 사람은, 수 십 년 동안의 우리 남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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