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주문하고선 두리번거리다 테이블에 앉은 나를 발견한다. 여자가 다가와 우리는 반갑게 안부를 나눈다. 내게 뭘 하고 있는 중이냐고 물으며 여자는 테이블을 눈으로 훑는다. 수첩과 펜, 노트북, 책 두 권이 널려있다. 그냥 책 봐요. 나는 얼버무리며 그것들을 대충 정리하는 척한다.
여자가 기웃거리듯 묻는다.
근데, 아이는 직접 케어하고 있는 거죠?
앞뒤 없는 질문에 나는 당황한다. 네?
아니, 왠지 항상 여유로워 보여서.
아아...
그는 안 지 얼마 안 된 동네 이웃이고 우리 애의 친구 엄마다. 요 근래 몇 번 마주치는 일이 있었는데 볼 때마다 내가 한가해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채로 더듬더듬 말한다.
네, 뭐... 크게 바쁘지 않은데요. 저희는 주말부부예요.
아, 어쩐지!
그가 체기라도 가신 듯 속 시원한 얼굴이 된다.
맞아, 남편 저녁만 안 해도 얼마나 편해요.
네에... 하고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이 잘 보이지 않는 걸 의아해하는 얼굴에다 나는 늘 주말부부라고 말한다. 어쩔 땐 아직 안 궁금해해도 미리 말한다. 그러면 다들 비슷한 반응이다. 부럽다고. 나는 이상한 기분이 된다. 좋겠다 소리를 하도 듣다 보니 결혼 10년이 넘으면 여자들은 남편이 돈은 벌어다 주면서 집에는 없길 바라는가 싶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건 다들 그냥 하는 소리라고 했다. 남편 있으니 할 수 있는 엄살이라고. 남편은 울타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에게 나는 울타리 없는 헐거운 집이라, 엄마는 나를 보면 늘 슬프고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잠시라도 옆구리에서 떨어지지 않던 애가 이제 컸다고 엄마가 집에 늘 있으면 좀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 오후 에는 두세 시간쯤 밖에 있으려고 한다. 서점도 가고 카페도 간다. 볕이 좋으면 설렁설렁 긴 산책도 한다. 처음엔 꼭 쫓겨난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홀가분하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고, 나도 아이만 할 때는 엄마가 옆에 있으면 성가셨다. 내 어린 시절을 들춰 아이를 이해하는 방도로 자주 쓴다. 까탈스럽고 예민했던 나를 생각하면 그 애를 헤아리지 못할 일이 별로 없다. 매일 오후의 자유시간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지난 십여 년의 보상 같기도 하다. 비록 그때 원했던 걸 지금 얻지는 못하지만 늦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십여 년 간의 비슷한 일상과 비슷한 관계, 비슷한 풍경이 의도치 않게 나는 방부했다.
저녁을 만들어야 해서 오후 여섯 시면 집으로 돌아간다. 김치찌개나 된장국 같은 걸 한다. 계란 반찬은 되도록 빠뜨리지 않는다. 저녁 먹은 걸 치우고 대충 집안일을 끝내면 아홉 시가 넘는다. 아이와 나는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이따금 어울린다. 그 애의 수다 중에 요즘은 부쩍 짝남 얘기가 많아졌다. 짝사랑하는 남자애?라고 내가 줄인 걸 풀어 말하면 아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징그럽다고 말한다. 뭐가 징그러워? 그냥 짝남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 사랑이라고 하면 징그럽잖아. 나는 어이없어 입이 벙 벌어진다.
열 시 반이 되면 아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잠들기 전까지 나 모르는 짓을 할 것이다. 나는 얼음물을 큰 컵에 담아서 소파에 앉는다. 하루치 에너지의 대부분은 아이와 보내는 저녁 시간에 다 쓰인다. 가장 많은 애를 쓰니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몇 살이 되더라도 큰 품을 들여야 하는 존재다. 그런 사실이 막막했다가 점차 익숙해졌고, 이젠 소소하고 애틋한 만족이 되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간다. 영화 하나 골라볼까 하다 관두고 아이 방문을 살짝 열어본다. 어둠 속에 웅그린 몸으로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고, 그 보드라운 뺨에 마음껏 뽀뽀한다. 자는 새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누워 잠든 아이는 볼 때마다 자라 있다. 뿌듯하고 아쉽다. 나는 소파로 돌아와 앉는다. 느닷없이, 남편 있는 집들은 지금 뭘 할까. 생각한다. 낮에 만난 여자 때문이다. 그 여자는 늦은 밤 남편하고 뭘 할까. 상상해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오래전 남편과 살 때 어땠는지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다 관두고 대신 내게 혹시 남편이 있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얘기. 답은 금방 떠오른다. 다른 건 없고 그냥 난 얘기가 하고 싶을 것 같다.
별거를 시작하고 나는 마냥 편안했다. 피차 소통이 고통이었던 사람과 매일 반복하던 감정의 씨름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래도 아이를 보면, 조그마한 아이를 보면 미안한 마음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었기에 평온 사이에 죄책감이 끝없이 엉기었다. 내가 할 일은 웃다가 몰래 우는 거였다. 살 것 같았다가 한 번씩 못 살 것 같아지는 거였다.
그때 엄마가 그랬다. 남편 쫓아내니 좋아? 그렇게 사는 게 진짜 좋니? 나는 그때 내게 좋은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엄청난 죄라는 걸 깨달았다. 원하는 대로 한 대신 내게는 벌 받을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분위기는 냄새 같은 거겠지. 여자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낯선 냄새처럼 내게서 뭔가 다른 분위기가 풍겼던 모양이다. 그건 여유와 결여 중에 무엇에 가까웠을까. 어쩌면 우리 신랑이, 우리 오빠가, 누구 아빠가,라고 시작하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내가 그냥 이상했을지도. 나는 뭔가 실수한 기분이 든다.
한때는, 내가 서류상 남편이 없는 건 아닌데 십 년 동안 같이 살지는 않아서, 남편이 있다고 딱히 말할 수도 없고, 대신 우리는 일요일마다 만나고 철마다 여행 다닌다는 얘기를, 그게 퍽 평화롭고 익숙한 생활이 되었다는 얘기를, 나아가 애 아빠가 양육비를 넉넉하고 철저하게 보내줘 큰 어려움은 없다는 얘기를, 그렇지만 애는 이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그저 아빠가 바빠서 회사 근처에서 지낼 뿐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를, 우리에게 재결합 같은 건 없을 테지만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저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가끔 재결합을 생각하면 이제는 말도 안 되게 징그러운 생각이 든다는, 그 모든 얘기를 주절거린 적도 있었다. 기이한 소문을 듣는 듯 묘한 얼굴들 앞에서는 더 길게 설명했다. 그래야 오해받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말할수록 어쩐지 나는 더 오해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무 소리 안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별거해.라고 쉽게 말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지. 어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환하게 켜진 티브이 화면을 지켜보다가, 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는 않다는 걸 깨닫는다. 딴생각에서 빠져나오며 딴생각을 했다는 걸 안다. 어쩌면 많은 시간을 그런 식으로 쓴 것 같다. 여기 있으면서 저기를 생각하며. 지금을 놔두고 어제에 골몰하며. 그러는 동안 홀로 켜진 풍경은 무수히 지나갔을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새벽의 어스름을 삼키며 몸을 불린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무용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나는 가볍게 빈 컵을 들고 일어선다. 티브이와 거실 등을 끈다.
수많은 일 중 하나의 일, 지나간 사건들 중 겨우 하나인 그것이, 오늘은 더 나를 움키지 못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