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서 배우려니

by seoro


자전거포 막내딸과 친구를 한 덕에 나는 어쩌다 자전거를 배웠다. 친구가 맨날 헌 자전거를 빌려주고는 저는 새 자전거로 실력껏 앞서나갔기 때문에, 그 애를 따라가려면 어떻게든 페달을 굴려야 했다. 내가 넘어지면 친구는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엄살과 놀림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탔고, 한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온 동네의 모든 오르내리막길을 유연하게 달리고 엉덩이를 든 채 속력을 붙일 수도 있을 만큼 능숙한 자전거 운용자가 되었다.


한글은 여섯 살이 되던 해 울산의 이모 집에서 뗐다. 어린애 셋을 보살피기 버거웠던 엄마가 둘째인 나를 거기에 맡겼다. 국민학교 다니는 언니 둘과 농담과 술을 좋아하는 유쾌한 이모부와 세련되고 바지런한 이모가 사는 집이었다. 작은 언니는 갑자기 생긴 동생이 좋았는지 종일 나를 끼고 놀았다. 그러다 나중엔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한글과 구구단이 주요 과목이었다. 나는 언니가 좋아서, 언니에게 칭찬받는 게 좋아서 열심히 배웠다. 내가 서울 가족과 울산 가족들 이름까지 모조리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언니는 빨간 색연필로 커다랗게 100점이라고 써주며 박수를 쳤고 이모부는 날 무등에 태워 마당을 돌았다.


자전거도 한글도 배운다는 생각 없이 배웠다. 어린 내게는 친구랑 나란히 달리고 싶은 마음, 언니에게 빨간 동그라미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다였다.


다 자라서 배우는 일에는 다른 것이 많았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 말고도 시작할 결심에다 어색함을 이겨낼 용기에다 돈과 시간까지 필요했다. 나는 뭐든 쉽게 마음을 뺏기고 조급하게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 커서 배운 것들의 목록이 적지 않다. 영어와 일본어, 요가, 필라테스, 발레, 요리, 그림... 요즘에는 과목에 따라 온라인 수업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나는 늘 직접 가서 학생 동료들과 선생님을 만나서 배우는 걸 선호한다. 그러니 일단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미지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상상부터 하며 용기를 끌어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 적당한 곳을 알아보고 재빨리 수강 등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배움을 호기롭게 시작해 놓고도 나는 이상하게 모든 교실에서 가장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다. 처음 배울 땐 서툰 것이 당연한데도 내가 서툴다는 게 부끄러워 언제나 몸이 배배 꼬이고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그런 태도가 가르치는 사람도 답답하겠다 싶으니 강사의 작은 한숨이나 실소에도 눈치가 보였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때마다 나는 내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의 반쪽의 반쪽밖에 못 배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정지선처럼 언제나 발 앞에 놓여 걸음을 더디게 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된 나의 배움에는 언제나 부끄러움이라는 커다란 숙제가 있었다.


테니스는 다 커서 배운 목록 중에 이 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운동에 무지했던 나는 테니스가 그렇게 어려운 운동인지 미처 몰랐다. 이 년 전 어느 날 우연히 테니스 경기 영상을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나부끼는 플레어스커트, 허공을 가르는 연둣빛 공, 볕에 그을린 탄탄한 팔다리, 역동적인 움직임, 땀방울, 집요한 눈빛, 그 모든 대비와 조화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는 홀딱 반해 버렸다. 그렇게 테니스 클럽에 찾아가 등록해 내리 이 년을 배웠지만, 아직도 내가 꿈꾸던 테니스인의 모습에 나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팔다리의 힘은 빈약하고 스윙은 엉성하고 조금만 뛰어도 호흡에 차서 코트 위에 널브러지곤 한다.

그런데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닐까요, 나는 가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슬픈 눈으로 코치에게 묻는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하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있는 채로.


내 첫 번째 코치는 키가 크고 다정했다. 처음 클럽에 찾아가 샘플 수업을 할 때 그의 남다른 예의와 성의에 감동해 수강 등록을 했다. 그는 가급적 신체 접촉을 하지 않고 대신 더 자세하고 열정적인 설명으로 테니스의 원리와 기본 동작을 내게 이해시키려 애썼고, 부득이하게 접촉이 필요할 때면 반드시 동의를 구했다. ‘제가 잠깐 잡아드려도 될까요?’ 나는 그런 교습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쩔 땐 송구한 기분마저 들었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퍽 좋은 거였다. 그 후로도 변함없이 그의 세심하고 열성적인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가르침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느꼈는데, 보답할 방법이란 게 그가 알려준 대로 해내는 것뿐인데도, 그게 정말이지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아무리 보은의 마음으로 열심을 부려도 실력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게 공을 칠 때마다 나는 울고 싶은 얼굴이 되었다. 수업 시간마다 땀과 함께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푹 젖곤 했다.

나의 첫 코치에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죄송해요, 였으므로 그가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괜찮아요, 였다. 무수히 많은 실수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 그를 조금씩 믿게 되면서, 그의 괜찮아요,라는 말이 꼭 등받이처럼 나를 받쳤다. 다시 한번, 또 한 번 오그라든 어깨를 펴주고 고개를 들게 했다. 점차 스스러움이 사그라들었다.


첫 코치와 느릿느릿 걸음마를 떼고 일 년 뒤 두 번째로 만난 코치는 수업 첫날부터 반말이었다. 라켓 빼고! 들어와! 기다려! 그렇지! 아니 아니! 더 빨리! 한겨울에도 땀방울을 뚝뚝 떨굴 만큼 강도 높은 수업에 나는 놀란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그거 기억하셔야 돼,라는 이상한 반존대의 말을 끝으로 수업이 끝나면 그는 늘 딴판이 되어 상냥하고 공손했으므로, 반말은 그만의 강습스타일임을 나는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실은 공을 쫓아다니는 동안 그가 반말을 하는지 욕을 하는지 나는 염두할 새도 없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와 체력이 박약하고 운동 신경 또한 형편없다는 핑계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개인의 신체적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야멸차게 몰아치는 그의 수업은 나를 그저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코트에 들어서면 나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게, 한낱 테니스 배우는 사람에 불과했다. 정신없이 공을 쫓는 나를 부끄러움 같은 건 따라올 수 없었다. 그는 부끄러움의 순간을 내주지 않는 방법으로 나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했다.


두 선생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나를 가르쳤다. 내가 그들에게 배운 건 어쩌면 공치는 방법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테니스는 내 배움의 목록 중 포기의 반대쪽에 적힌 유일한 목록이 되었다.


테니스는 언제나 같이 게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게임을 자주 해야 배운 걸 익히고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독 소극적인 나는 여태 연습 동료들을 찾지 못했다. 이따금 너그러운 누군가가 게임에 끼워주면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잘해야 한다는 각오와 부담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고 만다. 등받이도 질책도 성원도 없는 코트에 모르는 이들과 서 있을 때, 이제부터 날아들 그까짓 공 하나가 그렇게도 두렵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게임에서 어떤 서브는 받지도 못했고, 헛스윙도 하고 아웃도 여러 번 했다. 게임 내내 파트너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다가 두 시간을 채운 뒤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게임 내내 허둥대는 내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생각하면 몸을 접어 서랍 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부끄러움의 숙제는 아무래도 끝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나는 곧 작은 대회에 참가한다. 코치의 부추김을 우물쭈물하며 끝내 사양 못해 그렇게 됐다. 나는 매일 밤 혹독하게 연습하면서도 대회 날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날에 있을 창피를 미리 겪느라 벌써부터 시시로 목덜미가 달아오른다. 그러나 어떤 하루를 툭 건너뛸 수 있는 마법을 나는 아직 모르므로, 그렇다. 내가 당해내야 할 일이다.

마지막 벚꽃 잎이 바람에 휘날리다 내려앉은 아름다운 초록 코트에서 나는 흠뻑 젖어가며 갖은 애를 다 쓰고도 참담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배움에 이상하게 느린 사람이 있고 운동에 유독 서툰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바로 느리고 서툰 사람이므로. 그러나 잘되지 않는 일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이 있고 계속해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조금 더 해 보는 쪽도 어느새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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