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이야기

by seoro


얼마나 오랫동안 전해져 온 걸까, 청개구리 이야기는. 평생 엄마 말 안 듣고 그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가 있었다. 그는 엄마가 죽고 나자 뒤늦게 후회가 들어, 엄마의 유언만은 들어주고자 엄마를 물가에 묻는다. 엄마는 사실 산에 묻어달라는 청을 청개구리의 평소 소행을 생각해 반대로 한 것이었다. 청개구리는 그 뒤로 비 오는 날 만 되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슬피 운다. 그런 이야기다.


어릴 때 보았던 그 동화책의 삽화를 기억하고 있다. 물가에 위태롭게 세워진 무덤 옆에서 왕방울만 한 눈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초록 개구리의 모습이었다. 어린 나는 그림을 바라보며 한심했다. 왜 얘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나 이해할 수 없었다. 괜히 철이 드는 바람에 개구리는 딱한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온순한 아기였다. 엎어둬도 바로 둬도 잘 자고 주는 대로 잘 먹고 떼도 고집도 없었다. 이를테면 엄마의 뜻과 의지를 별로 거스르지 않는 아기. 이제 일흔을 넘긴 엄마는 지금도 종종 달콤한 눈으로 추억에 잠기지만, 나는 아무래도 내가 그저 발달이 더디고 게을렀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내내 순한 아이로 자랐다. 그러다 문득 세상은 내게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내게 사춘기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더 이상 순한 아이가 아니라 징그럽게 말 안 듣는 것, 이 되었다.

나는 충동적이고 반항적인 데다 감성적인 청소년이었다. 집안에는 나의 생각도 말도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뿐이라는 걸 열세 살에 깨달은 이후로 나는 줄곧 삶을 홀로 헤쳐나가는 심정이었다. 엄마와 오랜 다툼 끝에 나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사춘기는 어지간히 하면 끝난다던데 너는 왜 끝이 없니? 나는 사춘기를 겪었던 게 아니거나 사춘기에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진 퇴학 뒤 엄마가 내 학업을 일체 포기하자 그제야 공부해 대학엘 갔다. 탈 많고 말 많은 시절을 보내며 6년 만에 대학에 나와서는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했고, 돈이 좀 모이면 외국살이로 주머니를 다 비우고 돌아왔다. 엄마는 나의 모든 행보에 반대했다. 공부해라, 였던 주문은 취직해라, 돈 모아라, 선 봐라, 효도해라 로 변주되며 끝없이 이어졌다.

엄마가 하는 말은 내게 언제나 가장 갑갑하고 뻔한, 아무 색깔도 없는 말들이었다. 그때 나는 나에게 가장 특별했으므로, 나는 가장 특별한 색으로 빛나고 싶었는데 엄마의 말만 들으면 내 색깔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갈수록 반대를 무릅쓰는 일에 유능해졌다. 비단 엄마의 반대만을 대적했던 건 아니었다. 긴 머리의 여자가 인기가 많다기에 숏커트를 쳤고, 친구들이 애인의 자가용을 자랑하는 게 웃겨 나는 그냥 내 차를 사버렸고, 보는 사람마다 말리는 연애에 유독 안간힘을 썼고, 결혼마저도 수풀 같은 우려를 헤치며 결국 해버렸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아이를 낳았다. 갈등과 고난이 괴로운 냄새처럼 배어드는 결혼 생활이었다. ‘어차피 얼마 못 산다. 올해 안에 이혼한다.’는 유명 역술가의 말은 너무 이르긴 했어도 사실 신통한 예측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앞날에 대한 장담은 내 것이어야 했다. 관습이든 운명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남들 말의 일부가 되는 것은 싫었다. 그렇게 몇 년을 더 살고 결국 나는 남편과 헤어졌다. 별거하기로 한 것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이혼녀는 하나도 없는 집안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혼 아니라 별거라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그게 뭐든 엄마는 반대했고, 그 반대를 나는 전혀 어렵지 않게 거역했다.

그러나 엄마말보다 뿌리치기 쉽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그 나이에. 엄마가. 여자가. 돈이 최고야. 꿈이 다 뭐니. 남자는 다 똑같다. 애 때문에 살지. 어쩌면 세상은 그저 거대한 잔소리 같았다. 어느샌가 엄마를 벗어났는데 엄마보다 더한 엄마들이 하는 말들. 나는 어른이 되고도 더 많은 지침과 규율에 갇히게 될 줄 몰랐다. 때때로 참을 수 없는 반감이 일면 잠들기 어려웠다. 가슴에 작은 불꽃이 솟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어릴 적 엄마의 목소리를 방문으로 틀어막고 이불속에 모로 누워 느끼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작년부터 슬며시 이마 끝에 흰머리가 돋기 시작했다. 눈가에 잔주름도 하나둘 깊어졌다. 내가 낳은 아이는 열세 살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아직 내게는 죽어도 싫은 것들이 있다.

청개구리처럼 충고와 조언의 반대로만 선택한 뒤에 내게 온 상황은, 나쁘거나 또는 좋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어떤 선택은 기분 좋은 행운을 데려오기도 했고 어떤 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결론 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러니까 내가 모조리 반대의 반대를 선택했더라도 더하기 빼기 한 결과는 결국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언젠가부터 버릇처럼 중얼대는 나에게 엄마는 인제 철이 드는 모양, 이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그건 엄마가 그려 온 이상적인 딸의 모습에 내가 들어맞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이쪽으로 가라면 저쪽으로 내빼던 못된 고집. 두 마디도 더 안 들어주던 까탈스러움이 어느새 사그라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 의 그 남들 속으로 나는 소리 없이 수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남들이 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들을 이제 이해한다. 이해할 뿐이지 동의하지는 않지만.

엄마 근데 철이 들면 뭐가 되는 건데? 내가 물었다. 뭐가 되긴. 어른이 되는 거지. 엄마의 말에 내가 삐죽 댄다. 겨우? 엄마가 웃는다.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가끔 내가 나이 먹은 어린애 같고 늙지 않는 노인 같다. 아니면 피지도 지지도 않는 나무 이파리 같다. 그냥, 이대로도 좋을 것 같다.


봄비가 내리자 물가의 개구리들이 울어댄다. 아무리 들어도 개굴개굴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글자로는 쓸 수 없는 소리로 운다. 그렇지만 사실 개구리는 우는 게 아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좋아서 그러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살갗에 닿는 습기가 반가워 걔들은 노래를 부르는 거였다. 나는 그저 우는 줄로만 알았다.


어느 저녁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노래하는 물가를 걷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청개구리 얘기를 아느냐고 묻는다.

알지. 그 말 더럽게 안 듣는 개구리.

아이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한다.

엄마도 옛날엔 청개구리였는데.

지금은?

지금은 청개구리 엄마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근데 엄마말이라고 다 들을 거 없어. 내 말도 틀린 거 많아.

걱정 마, 이미 그러고 있어.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며 제 방으로 사라진다. 그 애는 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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