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목요일 오후, 친구 셋과 카페에 모여 앉았다. 일상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던 중에 친구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다들 혹시,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게 있어?
뜬금없고 매력적인 물음에 모두의 눈동자가 일제히 동그래졌다.
진작에 대답을 준비한 것이 분명한 질문자가 난 있어,라고 서둘러 덧붙였다. 뭔데, 뭔데? 내가 묻자 그가 말했다. 근데 말은 못 해줘. 뭐야, 장난해? 나는 살짝 눈을 흘겼다. 아, 너무 사적인 거라. 그는 혼자 슬슬 웃었다. 늘 생각이 뚜렷하고 예상치 못한 발상을 하는 그의 답이 궁금했으나 사실 고집도 적지 않은 그가 말 못 한다면 못 들을 게 뻔했다. 그래도 힌트라도 좀 줘보라고 한 번 더 그를 다그치는 사이, 평소 성실함과 너그러움으로 정평이 난 다른 친구가 막 생각 속에서 빠져나온 듯 산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있어, 그거. 마음의 평화.
우리는 그의 말을 단박에 수긍했다. 모두가 지켜본 바, 그는 이미 그것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실에 출근해 일정 분량의 웹 소설을 어김없이 써내며, 감정과 태도의 동요 없이 자신과 일상을 작은 정원처럼 하루하루 정갈하게 꾸리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겉보기에 본인의 평화도 문제없어 보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평온하게 만드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나는 잠시, 모래알 같은 그의 무수한 평화가 마침내 작은 바닷가를 이루는 상상을 해보았다.
친구 셋 중 마지막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 입을 꼭 다물고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이였다. 그는 주로 말하기보다 듣는 쪽이고, 골똘한 끝에도 곧잘 머뭇대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내게 새로운 믿음을 주곤 했다. 이를테면 빠르고 단호한 시선보다 에두르는 느린 시선이 때로는 더 중요한 걸 본다는 것. 그는 대화의 화제가 바뀐 뒤에라도 생각했고, 그가 뒤늦은 말을 하면 우리는 놓친 것이 있는 이야기로 되돌아가곤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는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음 답변은 자연히 내 차례였다.
나는 사랑. 알잖아.
나는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탁자 위로 둥글게 실소가 퍼졌다. 나도 배시시 웃었다. 내가 사랑 운운할 때마다 진짜로 비웃는 이들은 거기에 없었으므로, 그들의 웃음은 나에 대한 다정한 알은척이었다.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랑을 말하는지 알았다. 나는 자칭 사랑주의자로, 로맨틱한 장면들을 간직하거나 지어내기를 즐기며 사랑이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다는 믿음을 꾸준히 설파해 왔다. 나이가 많아지고 신분이 바뀌었지만 나의 첫 번째 꿈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그것도 천국처럼 아름답고 사카린처럼 달디 단 사랑.
알지, 그래도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놀라. 마음의 평화가 말했다.
만약에 사랑에 계속 실패해도 계속 시도할 거야? 결국 자기 답은 안 내놓은 질문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사랑은 꼭... 신발 같아. 나는 신발 없이 걷기 싫어. 그게 내 대답이었다.
어려서는 멋지고 좋은 신발만 찾기도 했었는데 여러 번 발을 다치고 나서야 내게 잘 맞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았다. 편한 신발이어야 막 뛸 수도 있으니까. 내 건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신을 벗어줘야 할 때는 억울해 울기도 했고, 어떤 신은 이미 나달거려 더 이상 신을 수가 없을 때까지 신었다. 아낄 걸, 하고 나는 후회했다. 마법처럼 자꾸 미로로 빠져들게 하는 신발도 있었다. 신발 때문에 갈 길을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게 가자는 대로 가주고 싶어서 길을 잃기도 했다. 차차 좋은 신은 그런 식으로 내 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저 내 걸음을 함께 해줄 뿐. 그러다 어떤 날, 분명 이건 내 생애 가장 좋은 신발인 것 같은 신발을 만나 신이 나서 내달릴 때는, 그 길이 영원한 봄 길 같았다.
나는 여러 신을 다 신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제야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신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멍을 남기고 누군가 가는 길의 방향을 꺾은 기억이 있다. 나를 벗어버리고만 이가 이젠 추억도 없이 홀가분하게 걷고 있을지도, 아니면 미움 어린 채 한 번씩 나를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구들은 내 신발론에 오, 하고 흥미로운 소리를 내었다. 수첩을 끄적이는 친구의 손끝이 몇 개의 낱말들을 띄엄띄엄 새겼다.
사랑에 대한 소소하고 유치한 이야기 뒤에, 근데 너는 결혼했잖아?라고 말간 눈으로 묻는 이들은 이제 내 곁에 없다. 긴 얘기를 다 고백하지 않아도 짐작과 배려로 기다려주는 이들과만 나는 소곤소곤 얘기하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견디기 어려운 건 그래서, 모든 얘길 다 하지 않고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자리다. 아이들 성장과 학원, 시댁 일화, 남편의 험담 같은 자랑이 테이블 위를 정신없이 오가는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얼음만 남은 커피를 뒤적인다. 아직도 어리숙한 주부인 내게 어떤 정보들은 퍽 유익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의 남편과 아이보다 그들 자신이 궁금하다. 그들이 엄마와 아내가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그러나 그런 얘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알아서, 받아줄 이 없는 말들은 마냥 삼켜진다.
결혼으로서 사랑은 완성되거나 종료되었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사랑을 말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끝없이 사랑을 꿈꾸는 내 마음은 그렇게 이상한 걸까. 반드시 안으로만 머금고 내보이면 당장 추해지고 마는 걸까. 입 속의 침 같은 걸까. 내게 사랑은 단지 눈동자 같은데. 눈을 열면 한순간도 숨길 수 없고, 감으면 아무도 볼 수 없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도 영영 빛난다.
나는 그런 얘길 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새 신발을 기대한다고. 다음날 아파트단지 안에 연기처럼 퍼질, 그 엄마 되게 이상하더라는 소문이 겁나지 않았다면 웃으며 그런 얘길 하고 싶었다.
서로를 겁주지 않는 친구들과 모여 앉은자리에 해그림자가 느리게 지나간다. 오후가 깊어지고 있었다.
그럼 네가 평생 이루고 싶은 건 신발 찾기네. 끄적이던 연필을 멈춘 애가 말했다. 어떤 신발을 찾는데? 그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한다. 알맞은 신발. 장난꾸러기 애처럼 내가 빙글거리자, 찾으면 나 꼭 보여 줘. 하고 그도 비슷한 모양으로 웃는다. 우리는 마주치는 시선으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애들처럼.
친구들은 그날의 내 사랑 예찬도 언제나처럼 너그러이 들어주었지만, 사랑이 신발 같다는 건 어쩌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사랑에 관한 더 고유하고 멋진 비유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어느 날 사랑이 시작될 때 나란한 신발을 내려다보게 된다면, 그리고 문득 내가 떠오르기라도 한다면, 피식 웃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